[기고]소송을 당한 PD에게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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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시사고발 프로그램의 pd는 괴롭다.
|contsmark1|아이템이 잡히고 취재가 시작되면 pd와 취재원과의 숨바꼭질은 시작된다. 특히 비리나 문제점이 제기된 취재당사자의 경우 아예 잠적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 어쨌든 객관적으로 공정한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당사자의 항변 내용을 들어봐야 하기 때문에 pd는 전화나 공문, 심지어는 집 앞에서의 잠복(?) 등 방법을 불사하며 그를 만나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인터뷰에 응하든 응하지 않든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었다며 소송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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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소송의 첫 신호탄은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으로부터 시작된다. 예전에는 거의 없었던 이 소송 방법은 최근 2년 전부터 방송을 막아보려는 이해당사자들이 애용하고 있다. 특히 비리가 고발된 종교단체 지도자의 경우에는 예외 없이 가처분 신청이 들어온다.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은 대부분 방송을 3∼4일 앞두고, 심지어는 하루 전에 들어오게 된다.
|contsmark5|며칠째 편집에 밤을 새우던 pd는 법원의 요청에 따라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편집분과 대본을 정리해 법원에서 검열(?)받는다. 이를 토대로 판단된 가처분결정에 따라 때로는 일부가 뭉텅이로 삭제되어 방송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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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8|방송이 끝나면 본격적인 소송의 러시가 된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신청을 필두로 반론보도, 정정보도,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배상, 때로는 담당 pd를 명예훼손으로 형사고발하기도 한다. 담당 pd가 한꺼번에 4∼5가지 소송의 피고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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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1|막상 소송에 들어가면 pd는 외로워진다. 회사에서 선임해준 변호사가 있기는 하지만 취재와 제작과정은 pd가 모두 이끌어 왔기 때문에 소송서류 등을 세부적으로 작성하는 일은 대부분 pd가 한다. 걸핏하면 10억이니, 20억이니 하는 천문학적인 배상요구액 앞에서 pd는 전전긍긍하게 된다. 선후배 pd동료들이 지나가면서 툭툭 던지는 위로의 말 외에는 철저히 혼자의 싸움이 되고 만다. 최근에는 회사에서 패소한 경우 담당 pd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괴담(怪談)까지 떠돌고 있다. 결국에는 이런 생각이 든다. "다시는 이런 골치 아픈 아이템을 하나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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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4|이상은 몇 번의 소송을 거치며 내가 느낀 점들을 자조적으로 표현해본 것이긴 하나, 실제 현실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사프로그램은 그 성격상 당사자들의 이해다툼이 생길 여지가 많다. 최근 들어 이런 이해당사자들이 pd를 상대로 각종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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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7|개인의 명예를 중시하고 프로그램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를 방지한다는 측면에서 법의 취지를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언론에 대한 소송이 과연 법의 취지를 잘 살려 운용이 되는가 하는 점에 있어서는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contsmark18|우선 최근 언론 상대 소송의 당사자를 살펴보자. 법에서 보호하려는 대상은 아마도 막강한 권력과 전횡(?)을 휘두를 우려가 있는 언론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연약한 "개인"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소송을 제기하는 쪽은 거의 검사, 종교단체 지도자, 정부 기관 등 말 그대로 "공인(公人)"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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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1|물론 이들도 개인적으로 명예를 보호받아야 할 대상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언론에서 이들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은 개인적인 것들이 아니다. 이들의 공적인 행위나 공적인 지위를 이용한 비리사실을 보도할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런 고발마저 언론에서 할 수 없다면 언론으로서의 기능은 마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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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4|그런데 공인의 잦은 언론상대 소송행위는 언론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일련의 소송에서 보여진 바는 새로운 "언론 길들이기"가 아닐까 하는 의혹을 갖기에 충분하다. 정작 법의 보호를 받아야할 힘없고 돈 없는 "서민"들은 비싼 소송비용과 변호사 선임 비용, 복잡한 절차 때문에 소송에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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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7|또 한 가지, 소송과정에서 법원은 pd에게 완벽한 물적 증거를 요구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제보자들은 일단 경찰이나 검찰 등 법에 호소해보고, 진정도 해 본 다음 그래도 안되니 언론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수사권도 없는 pd가 첨예한 사안에 대한 물증을 확보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런 경우 법원에서는 "그렇기에 그런 내용은 함부로 방송할 게 아니라 법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언론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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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0|법이 존재하는 한 그 법을 이용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실제로 법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그 법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게 중요하다.|contsmark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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