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민수 사건’을 기억하는지? 알려진 대로라면 배우 최민수는 70대 노인을 폭행하고 칼로 위협한 것도 모자라 그를 차에 매달고 수십 미터를 질주했다. 그것도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말이다. 최민수는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고, 기자회견을 열어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산에 들어가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터프가이 최민수는 그렇게 패륜범이 됐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사건 발생 두달여 후 최민수가 법원으로부터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론조사 결과 68.5%가 최민수의 무혐의 사실을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고 응답했다. 조사가 끝나기 전에 그는 이미 패륜범이 됐고, 무혐의 판정을 받은 최민수는 9개월째 산에서 지내고 있다.
과연 소문은 어떻게 퍼질까? 제작진과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팀이 소개한 소문의 전달과정은 대략 이렇다. 사람들은 여러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부분만 단순화시켜 소문으로 퍼뜨리고, 이 가운데 관심이 쏠리는 특정 부분을 집중적으로 재생산하며, 여기에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더해 소문을 부풀리고, 이를 접한 사람들은 소문에 동화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나쁜 소문이 좋은 소문보다 전달력이 빠르다는 점이다. 실험 결과 ‘연예인 누가 자살했다’는 소문은 ‘연예인 누가 아이를 입양했다’는 소문보다 훨씬 빠르게 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불안감이 커지면 소문에 참여하거나 전달할 확률이 높아진다. 지금 우리사회의 문제는 믿을 만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약속했던 이명박 정부는 한 치 앞의 경제위기도 예측하지 못한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불신을 자초했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나 공적 기관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을 때 루머는 방어기제로 돌아다닐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의 발달로 소문은 훨씬 빠른 속도로 전달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문의 진위여부보다 화제성이다. 자극적인 ‘카더라’식의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고 나중에 ‘사실은 그게 아니다’라고 밝혀져도 대중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최민수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9개월여 만에 TV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무혐의 확정 후) 다시 기자회견을 열어 진실은 이랬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관심 갖고 즐겼던 것은 ‘터프가이 최민수의 패륜행위’였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MBC 스페셜>을 보고 우리 사회에서 인터넷을 통한 소문 유포는 하나의 ‘일상문화’가 돼버린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겼다. 한 때 조성민의 재혼녀로 소문이 나면서 인터넷에서 마녀사냥식의 비난을 들은 배우 우연희 씨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뜻밖에도 유포자들은 학생이나 주부가 대부분이었고, 그들에게 돌아온 답변은 “한참 이슈가 되는 사건이어서 별 생각 없이 복사해서 글을 올렸다”는 것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악성루머로 피해를 본 우연희 씨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유포자들을 확인했고, 현행 법률로 그들을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사이버모욕죄가 왜 필요한지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식상한 얘기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퍼뜨린 허위 사실이 누군가의 삶을 망칠 수도 있다’는 인식이다. 법 개정만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이번 <MBC 스페셜>은 그런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