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TV 선정성 시비에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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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TV 선정성 시비에 생각한다
  • 승인 2000.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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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문광부 장관의 "돌출" 발언으로 시작된 TV의 선정성·폭력성 시비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PD연합회의 적절한 지적처럼 "장관직을 걸겠다"는 박장관의 오만함은 협박에 다름 아니지만 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그런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본 그의 치기다.오비이락인지 모르겠으나 장관 말 한마디에 방송위원회와 방송사 사장단이 줄을 서는 모양새는 한심하기도 하려니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 하나 없는 풍경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이것이 서기 2000년 대한민국의 실상이다.지난해 파업까지 하면서 제정한 통합방송법의 핵심은 "권력으로부터 방송을 떼어내기"였다.정권의 시녀이자 나팔수였던 지난 날의 오욕을 씻고자 했던 방송현업인의 지난(至難)한 노력은 방송위원회의 인적 구성이나 검증장치에서 혹은 공영방송사 사장선임의 독립성과 민주성 확보에서 권력의 완강한 고착에 막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었다.게다가 방송정책에 관한 권한을 문광부가 아닌 방송위원회에 두어야 한다는 마지노선조차도 "영상산업에 관한 것은 문광부와 합의한다"는 따위의 교묘한 샅바걸기에 걸렸었다.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 부분이 박장관의 발언에 관한 알랑한 논거가 된 셈이다.법적 근거야 어찌됐든 박장관의 발언은 방송위원회에 대한 월권이다. 심지어 그는 방송위원회를 "동원"하겠다는 표현까지 해 방송위원회 노조의 격분을 사기도 했다.우리 방송을 걱정하는 그의 충정이 얼마나 깊고 거룩한지 모르겠으나 방송독립에 관한 현장의 강고하고 고단한 십수년간의 투쟁역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최근 등 일부 시사프로그램에서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는 등 현 정권의 심기를 거스리는 내용이 수시로 출몰하고 이에 대한 통제가 여의치 않자 방송길들이기를 겸해 방송의 약점인 선정성·폭력성 문제를 성동격서격으로 들추어냈다는 음모론적 분석을 하고 있기도 하다.공중파 방송의 선정성과 폭력성 문제가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방송위원회의 권위와 방송사의 자율로 풀어가야 한다.그만한 법적 장치나 규제 방안은 현행 시스템에도 있다.한정된 재원을 둘러싸고 치열한 이해관계의 대립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방송계다.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견을 조정하고 필요하면 방송법을 재개정해서라도 풀어가야 한다(여담이지만 지금이라도 방송법의 문제조항을 보완하기 위한 "2차 방개위" 같은 것을 운용한다면 각 방송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잠수할 것이다). 방송위원회의 역할을 부정하고 방송의 독립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그의 발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는 단순한 실언이 아니라 사고의 틀 자체에 그런 인식부터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만약 그것이 DJ 정권의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은 아닌지 더욱 염려스럽다. 그가 현 정권의 실세라니 하는 말이다.다만 권력에 그런 빌미를 제공한 우리 방송의 무철학과 가벼움에는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그런 점에서 이 글이 문제 많은 우리 방송을 비호하는 것으로 읽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또 그동안 방송의 선정성을 지면에 도배하며 상업적으로 팔아먹고 심지어 한술 더 떠다가 안면몰수하는 일부 신문들의 작태에도 울분을 금할 수 없다.그리고 출범 이래 독립성과 권위를 지키지 못하고 외풍에 끌려다닌 약체 방송위원회의 자업자득은 논평할 가치조차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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