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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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애 이야기
[풀뿌리 닷컴]
  • 김순규 목포MBC PD
  • 승인 2009.02.11 14: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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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에는 유독 음식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보존되고 새롭게 해석되는 일은 참으로 재미난 일이다. 남도지방에선 겨울의 참맛들이 적지 않다. 보리싹이 돋아날 때 잡은 숭어, 간재미의 감칠맛 나는 회, 추운 겨울바다에서 시린 손 녹여가며 캐거나 뜯어 낸 석화, 매생이, 감태 등 음식들이 무진장 많다. 들녘의 풋나물이나 시래기거리는 여느 지방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갯가에서 작업한 것은 남도 이외의 지방에선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어린시절 김(해우)은 비싸서 먹기 힘들었고, 어쩌다 한번 씩 올라온 파래김을 한 장씩 나눠주면 조금씩 찟어가며 아껴먹었던 일이며, 겨울밥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것이 신건지(동치미)와 감태지였다. 감태는 할머니가 항상 밥그릇 가깝게 놓고 드셨다. 또 하나의 기억은 어머니께서 싱싱한 것이 드시고 싶다고 홍어대신 간재미(간자미라고도 함)를 구해 무침을 만들고 간재미 내장에서 꺼낸 누런 것을 ‘니도 묵어봐라’며 참기름소금에 찍어주시던 일이다. 그것이 간재미 애인 줄은 잘 몰랐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값나가는 큰 홍어는 살수 없어 홍어대신 두세 점 먹으면 금방 바닥나버린 간재미 애를 그토록 아껴 드셨던 것이다.

▲ 홍어회

어류의 간에 해당하는 애(전라도 사람들은 사투리로 ‘외’라고도 부른다.)는 모든 생선에 다 들어있다. 하지만 생으로 애를 먹는 것은 홍어, 간재미, 상어가 전부다. 그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것이 홍어 애인데, 겨울철 잡은 흑산 홍어의 배를 따면 연어색깔의 손바닥 크기만한 넓이에 길이는 두 뼘 정도 되는 애가 나온다. 8kg이상 나가는 암컷홍어의 애가 크고 수컷은 무게나 크기가 암컷에 비해 훨씬 작다. 알이 꽉 찬 꽃게에 비해 수컷이 천대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숫홍어도 애꿎은 운명을 타고 났다. 숫홍어는 꼬리 양쪽에 3분의 2정도 되는 길이의 성기 2개가 돌출돼 있는데, 암컷에 비해 값이 적게나가고 어차피 성기는 못 먹는 부분이기 때문에 어부가 양쪽 성기를 낫으로 잘라버린다. 그러면 암컷과 잘 구분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나온 말이 “만만한게 홍어×”이다.

좌우지간 겨울에 잡은 싱싱한 홍어애를 바로 꺼내서 기름소금에 조금씩 찍어먹으면 입안에 고스름한 맛이 돈다. 그야말로 애간장 녹이는 맛이다.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요즘도 흑산홍어를 주문할 때 상자 속에 애가 들어 있는지 꼭 확인한다. 칠레 등지에서 수입하는 홍어는 애가 상해버리기 때문에 생으로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코와 입안을 톡 쏘는 삭힌 홍어를 더 맛있어하는 사람들이 많듯이 조금 삭힌 홍어애로 홍어애국을 끓여 먹으면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된장을 푼 다음 보리싹이 막 돋아나면 그걸 캐다가 함께 넣어 푹 끓여낸 홍어보리애국은 약간 텁텁하지만 구수한 맛이 난다.

▲ 홍어애를 맛있게 먹는 사람들

겨울철이 되면 목포의 몇몇 식당에는 많은 손님들이 홍어애국을 찾는다. 대부분의 홍어가 수입산인 까닭에 생으로 먹기 위해선 흑산홍어를 주문해야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분들은 수입산 애가 들어간 홍어애국도 그런데로 만족해한다. 그리고 옛날 어머님이 끓여주시던 기억을 찾아서건 아니면 새로운 맛에 대한 도전이건 홍어애국은 그 맛과 함께 여러 이야기 꽃을 피우게 만든다.

▲ 김순규 목포MBC PD

먼바다에서 잡히는 생선 홍어를 영산포까지 운반하려면 일주일도 걸리고 날씨가 궂을라치면 보름도 걸리면서 자연스럽게 삭힌 홍어를 먹었고,(왜구 침탈이 잦았던 섬사람들의 피난이야기도 있다) 홍어를 실었던 돛배 어창 바닥에 고인 홍어 꼽(비늘없는 생선의 점액질 액체)을 체면가리지 않고 양반네들도 호르륵 마셨다는 이야기, 시골영감들이 이가 안좋다는 핑계로 전복창자 먹듯이 보들보들한 애를 독차지했다는 이야기 등등. 요즘 홍어가 서울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돼지고기, 김치와 함께 먹는 삼합이나 막걸리와 같이 먹는 홍탁을 아는 사람은 많으나 홍어애나 홍어에 얽힌 삶의 이야기를 아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동네 혼인식, 회갑잔치, 상갓집음식에서 빠지면 시체라는 홍어, 동네사람들이 됐건 친구들이 됐건 함께 어울려 먹었던 홍어와 같이 이야기 꽃을 피우는 음식이 전국의 여러 지역에 더욱 많아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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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규 2009-03-21 23:36:39
내용이 전반적으로 감칠맛이 납니다. 그리고 한번 기회가 되면 목포에서 홍어 맛과 홍어애를 맛보고 싶습니다. 좋은기사에 잘 읽고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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