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고’ 사생활 침해 고발 기사 돌연 삭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거대 자본이 언론사를 소유하는 것이 쉬워질수록 시민들의 알권리는 침해될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교통카드에 관한 기사 하나가 거대 자본의 언론 검열 문제를 다시 상기시켰다.

문제의 발단은 나비고(Navigo)라는 교통카드 전면 도입에 관한 기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본래 파리에서는 오항쥬(Orange)라는, 전철표 크기의 티켓이 1975년부터 사용되어 왔다. 1개월 정액권인 오항쥬 티켓은 도입 34년만인 이번 달 1일부터 판매가 중단되었고 신용카드 크기의 나비고 카드로 전면 대체되었다. 나비고 카드는 우선 카드를 구매한 후 이 카드에 매월 또는 매주 정액 요금을 충전해서 사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오항쥬 폐지 3일 전인 지난달 28일, 르몽드는 나비고로 인한 사생활 침해 우려를 기사에 담았다. 이 기사에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사생활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빅브라더 어워드(Big Brother Award)의 공동 조직위원 장-마크 마나슈(Jean-Marc Manach)는 “파리 지하철 공사가 나비고 안에 어떤 정보를 넣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개인 정보 침해 우려를 제기했다.

이 기사는 Cnil(정보와 자유 전국 위원회)이란 단체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Cnil은 “자유롭게 자신의 개인정보가 알려짐 없이 왕래하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자유에 필요하다”라는 전제 아래, 나비고 제도에 대한 여러 제한 조치를 요구해 왔다. 애초에 나비고 도입 시에는 한 종류밖에 없었으나 이 단체의 요구에 의해 2007년 9월부터 무기명 나비고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실 무기명 나비고라고는 하지만, 무기명인 것은 전철역에서 구입할 때만이고, 실제 사용할 때에는 이용자의 사진을 부착하고 이름을 기입하는 카드 주머니를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검표 시에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파리 지하철 측이 무기명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원래 계획부터 준비되었던 나비고 클래식에 비해서다. 나비코 클래식의 경우 발급을 위해 주소와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의 개인정보를 나비고 사이트에 기입해야 신청자의 주소지로 배달된다.

만약 언론의 자유가 자본으로부터 침해받지 않았다면, 이 기사는 다음날 아침 지하철에서 배포되는 디렉트 마탱 플뤼스(Direct matin plus)를 통해 재인쇄되었을 것이다.

디렉트 마탱 플뤼스는 아침에 배포되는 무료신문으로 족벌 대기업인 볼로레(Bollore) 그룹의 계열사이다. 볼로레 그룹은 디렉트 마탱과 함께 디렉트 수와(Direct soir)라는 저녁 무료신문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디렉트 마탱 플뤼스는 대부분의 기사를 르몽드로부터 제휴받아 사용한다. 그러므로 나비고 관련 기사는, 다음날인 1월 29일자 신문에 게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디렉트 마탱 플뤼스는 문제의 나비고 기사를 전면광고로 대체했다.

볼로레 그룹의 행태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미 같은 사례가 2007월 6월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르몽드의 계열사인 꾸리에 앵테나쇼날(Courrier international)은 프랑스 경찰이 헝가리 집시 음악단을 테러리스트로 오인해 공항에 억류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때에도 볼로레 그룹은 기사를 제외했었던 것이다. 볼로레 그룹 측은 “프랑스 경찰의 명예에 흠이 가는 내용의 기사를 제외한 것이었다”는 상식 이하의 해명을 했었다.

르몽드 지는 지난 2일 해당 지면 삭제에 대해 항의했고 다음호에 기사를 게재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볼로레 그룹은 확답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기사 삭제 이유 역시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볼로레 그룹이 지하철 공사를 위해 이 기사를 제외한 것은 자명해 보인다. 현재 여러 무료신문 가운데 디렉트 마탱 플뤼스와 디렉트 수와 두 무료신문만이 지하철 내부에 배포대를 설치할 수 있다. 이 권리를 위해 볼로레 그룹은 매년 6백만 유로를 파리 지하철 공사에 지급한다.

프랑스=표광민 통신원/ 프랑스 고등교육원(EPHE) 제 5분과 정치철학 박사과정, ppiokm@hotmail.com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