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개그 프로에서 사라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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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의 미디어리터러시(45)]

▲ 고승우 박사
이명박 정부 등장이후 TV 코미디, 개그 프로에서 달라진 것이 있다. 대통령이 코미디, 개그 소재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TV 코미디, 개그 프로에서는 현직 대통령 패러디물이 고정메뉴로 방영되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 집권이후 대통령들이 코미디, 개그 프로에서 사라졌다. 왜 그럴까?

이 대통령이 코미디 프로에 등장하지 않는 것은 그의 정치적 인기가 바닥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방송사 차원에서 알아서 외면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가?
 
코미디, 개그 프로가 정치적 민주주의와 무관치 않다는 것은 언론 교과서에 나오는 말이다. 민주주의가 활짝 꽃 핀 국가에서는 대통령, 수상 등 정치인이 코미디, 개그 프로에서 웃음을 선사하는 소재로 활용된다. 각종 미디어가 정치 권력자를 갖가지 형식으로 웃음꺼리의 소재로 활용한다. 정치와 일반인의 거리가 그만큼 가깝다는 의미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거나 그것이 위축된 사회에서 최고 정치인을 코미디 대상으로 삼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정치권력은 자신이 웃음꺼리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국민들은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상파 TV 코미디, 개그 프로에서 대통령이 자취를 감춘 것은 오늘의 정치, 언론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래 국민 표현의 자유 위축, 방송장악 시도 등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끊임없이 되풀이 된 현실의 영향이 컸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청와대에서 면직되고 낙하산 사장들이 KBS, YTN 등에 나래를 접으면서 이들 방송사의 프로에 부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뉴스의 권력 비판 수위가 낮아지고 시사프로 등이 변질되거나 자취를 감췄다. 그런 과정에서 코미디, 개그 프로에서 대통령이 실종된 것이다. 청와대가 언론악법 강행처리를 주문하는 태도를 멈추지 않고 있어 향후 상당기간 코미디, 개그 프로에서 대통령이 소재로 등장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정치는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다. 국민의 큰 머슴인 대통령 등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무한 봉사의 책무가 있다는 점에서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 의사 표현은 다양한 형식으로 이뤄진다. 대중 미디어의 대표 선수격인 TV가 정치인을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TV가 정치를 담아내는 방식의 하나가 코미디와 개그 프로다.

▲ KBS '개그콘서트'의 코너 '봉숭아학당'의 한 장면 ⓒKBS
TV의 정치 코미디, 개그 프로의 목적은 웃음을 선사하는 것이다. 정치관련 코미디, 개그 프로의 소재는 정치권에서 발견되는 놀라움, 모순, 갈등, 반복이나 상반된 기대 효과 등 다양하다. 정치인 풍자는 특정 개인이나 정치 단체 등을 우스꽝스럽거나 상식을 매우 파괴하는 방식으로 묘사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TV 시청자들은 풍자의 대상이 된 정치인 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면서 새로운 눈높이에서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정치인을 일상적인 웃음의 소재로 삼거나 그것을 소개한 TV 프로는 코미디, 개그 프로뿐 아니다. 지금은 중단된 YTN 돌발영상이 정치인과 정치 현장을 웃음의 소재로 활용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우리나라 지상파 TV에서 정치인, 특히 대통령이 코미디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87년 6월 항쟁 이후다. 6월 항쟁이전의 대통령은 절대적 권력의 상징이었다. 독재 정권 대통령이 TV 코미디 소재가 된 사례는 거의 없다. 박정희, 전두환 등의 독재자들은 미디어를 통해 대중의 웃음 소재가 되는 것을 싫어했다. 군사 정부 시절 TV의 모든 프로는 물론 신문의 한 칸과 네 칸짜리 그림판에 대통령이 정치 풍자나 해학의 대상이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진보적 신문들이 대통령을 풍자하거나 해학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고 지상파 TV에서도 정치인들이 코미디 소재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거치면서 풍자 수위 등이 상당히 높아졌다. 두 대통령을 패러디 하는 전문 개그맨이 등장해 인기를 끌만큼 TV 코미디, 개그 프로에서 대통령을 웃음꺼리로 삼거나 풍자하는 일이 흔해졌다.

오늘날 지상파 TV에서 코미디, 개그 프로가 넘쳐나지만 그 소재는 매우 제한적이다. 출연진의 말장난, 과장된 몸짓에 주로 의지해 웃음을 끌어내려 한다. 연륜 있는 희극배우는 무대에서 거의 사라졌고, 중년층 이상에게 낯선 언어와 국적 불명의 의상, 분장들이 설친다. 웃음을 선사하는 TV 프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형식은 출연진이 탁월한 말솜씨나 행동으로 시청자를 즐겁게 하거나 상대를 괴롭히는 가학적인 것이다.

▲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SBS
TV 코미디 프로의 소재가 다양해지고 표현의 수위가 제약을 받지 않으려면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촛불’이후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법적 제약을 가하려는 시도가 집권층에 의해 다각도로 시도되고 있는데 이는 TV 코미디, 개그 프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외부의 구체적인 압력이 TV에 여러 가지 형식으로 미칠  가능성이 크고 외부의 노골적인 주문이나 압력이 없다 해도 자기 검열이 행해질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누리꾼들의 인터넷을 통한 정치 행위에 대해 여러 형태의 제약을 가하면서 TV 등 모든 매체가 그 영향을 받고 있다. TV의 경우 뉴스에서 정치 비판 수위가 낮아지거나 시사프로가 폐지되었다. 이런 변화는 TV 코미디, 개그 프로에서 정치인에 대한 패러디, 풍자 등이 자취를 감춘 것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촛불’ 이래 시위 현장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해학, 풍자가 넘쳐난다. 이런 현실이 대통령의 TV 코미디, 개그 프로 등장을 막고 있는 직접적인 요인인지 모른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통령에 대한 해학, 풍자가 아직 문제된 일은 없으나 김. 노 대통령 집권 당시 미디어의 정치풍자나 해학으로 논란이 발생했다. KBS 2TV '생방송 시사투나잇'은 지난 2005년 3월 한나라당 의원 두 사람의 얼굴을 누드 그림에 합성한 패러디를 방영한 뒤 정치문제화 되기도 했다. 당시 KBS 사장이 해당 프로를 개편토록 하는 등 후유증이 컸다. 또한 지난 2005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을 저격하는 내용의 패러디가 인터넷 매체에 등장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등 파문이 일었다.

미국처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도 대통령 풍자를 둘러싼 소란이 일어난다. 뉴욕포스트는 지난 20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침팬지로 묘사해 인종차별 논란을 빚은 풍자만화와 관련해 사과하고 해명했다. 지난 2005년 부시 당시 대통령의 머리에 총을 겨눈 가짜 우표가 미술인들의 전시회에 등장하자 백악관에서 조사를 벌이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치 패러디를 둘러싼 논쟁은 공인에 대한 비판과 공인의 인권존중이라는 두 개의 잣대가  충돌하면서 발생한다. 한편에서는, 공인은 일반인과 달리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차원에서 일정부분 그에 대한 비판과 사생활 폭로 등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성역 없는 상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쪽은 견해가 다르다. 즉 아무리 그렇다 해도 소중한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풍자도 좋고 비판도 좋은데 모욕적이거나 명예훼손에 해당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두 개의 잣대가 어느 선에서 만나야 적절한 것인지 분명치는 않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어떤 수위냐에 따라서 그 선의 높이도 변화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TV 코미디와 개그 등에서 대통령이 사라진 것은 불행한 일이다. 우리의 민주주의 영역이 확대되려면 최고 권력자를 상대로 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권력층이나 공인의 반열에 오르면 대중의 요구에 응해 그 대가를 치른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더 넓어져야 한다. 권위주의의 보호막 속에서 안주한다는 특권의식을 버려야 한다. 코미디와 개그의 대상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적극적인 자세를 스스로 갖춰야 한다. 유권자의 웃음꺼리가 될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공인의 자격이 부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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