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압박’하고, 전여옥으로 ‘물타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도비평] 조중동과 KBS의 ‘언론관계법’ 보도를 중심으로

‘압박’과 ‘물타기’ 그리고 ‘본질 흐리기’. 고흥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이 언론관계법을 상임위에 직권상정하면서 언론관계법 처리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을 때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그리고 KBS가 보여준 보도 태도다.

조중동은 전국언론노조가 총파업에 나서고, 여야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언론관계법 강행처리를 계속 부추겼고, 김형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압박’했다. 또 그 사이 터진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 피습 논란에 대해 대서특필함으로써 국회 폭력 사태를 부각, ‘물타기’를 시도했다.

KBS는 처음부터 끝까지 언론관계법을 단순히 여야 간 ‘정치싸움’으로 끌고 갔다. 조중동을 제외한 다수의 언론, 그리고 언론·시민사회단체가 우려하는 법안의 문제점은 외면했다. 사안의 ‘본질’을 흐린 셈이다.

▲ <조선일보> 2월 27일 4면
김형오 직권상정 압박

조선은 김형오 의장이 언론관계법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자 곧바로 ‘압박’에 나섰다. 지난 달 27일 조선은 1면에 <또…‘김형오 벽’에 부딪힌 여권>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 “언론관련법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상정으로 기세를 올렸던 여권이 하루만에 ‘김형오 벽’에 부딪혀 동력을 상실할 조짐”이라고 우려했다. 4면에서는 <여 주류 “김형오 자기정치 하나” 탄핵론 들먹>이란 상당히 ‘센’ 제목까지 뽑았다.

중앙 역시 지난 달 27일 3면 보도를 통해 “3일이면 2월 임시국회가 막을 내리지만 법안은 단 14건을 처리했을 뿐”이라며 “결국 남은 건 김형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카드 하나”라고 강조했다.

중앙은 또 한나라당의 교묘한 ‘언론플레이’를 그대로 이용했다. 지난 2일 중앙은 1면 톱기사를 통해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지상파에 대기업 지분 참여율을 20%에서 0%로 낮출 수 있다고 밝힌 점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이어 4면 <재벌방송 막겠다던 민주당 “대기업 지분 0%” 제안도 거부> 기사를 통해 한나라당이 ‘양보안’까지 내놓았음에도 민주당이 이를 거부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여야 협상 실패의 책임을 민주당에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기사는 “직권상정으로 가는 초침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로 마무리됐다. 직권상정에 대한 당위성 부여다.

▲ <중앙일보> 2월 28일 5면
전여옥 의원 피습 논란 대서특필 ‘물타기’ 시도

‘물타기’도 시도됐다. 언론관계법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던 지난 달 27일. 전여옥 의원 피습 논란이 터졌다. 전 의원이 국회 안에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소속 회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조중동은 이 사건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해당 내용은 지난 달 28일 일제히 조중동 1면에 등장했다. 특히 조선과 동아는 관련 사실을 1면 톱으로 대서특필하며 “이 씨가 전 의원을 폭행하는 과정에서 손가락을 전 의원의 눈에 후벼 넣었다”는 전 의원 측 주장을 그대로 기사화했다. 전 의원이 병실에 누워 있는 사진도 1면에 실렸다. 전 의원 피습 논란에 대해 <한겨레>가 8면에 <경향신문>이 6면에 짧게 보도한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제목 역시 ‘끔찍’했다. <전 의원 측 “욕설 퍼붓고 눈 빼버리겠다며 10분간 위협·폭행”>(조선 2월 27일 4면), <피습당시 상황-“네가 뭔데, 너 같은 X은 눈을 뽑아버려야돼”>(동아 2월 27일 3면).

조중동은 또 전 의원 피습 논란을 국회 폭력 문제로 엮어 적극적으로 이슈화했다. 그리고 언론관계법을 두고 국회에서 대치하고 있는 정치권 상황이 여기에 살짝 얹혀졌다. 대표적으로 중앙은 지난 달 28일 언론관계법과 관련한 국회 대치 상황을 전하면서 그 안에 상자 기사로 전 의원이 병실에 누워 있는 사진과 기사를 실었다.

조중동은 언론관계법을 두고 대립하는 과정에서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이 부상당하자 국회 폭력 문제를 더욱 이슈화했다. 그리고 조선은 사설에서 드디어 국회 폭력 사태를 부각한 ‘속내’를 드러냈다. 결국 언론관계법 처리였다.

<국회, 1분이라도 아껴 폭력 피할 방법 찾아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조선은 “(언론관계법과 관련) 당장 합의에 이르거나 법안 내용을 조정하기는 힘들다 해도 법안 처리에 관한 일정을 잡을 수는 있다”며 “어떤 내용을 언제까지 처리한다는 시간표라도 분명하게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 KBS <뉴스9> 2월 26일 보도
KBS, 처음부터 끝까지 여야간 ‘정치싸움’으로

언론노조가 총파업에 나서는 등 언론·시민사회의 반발이 큰 언론관계법에 대해 이른바 공영방송인 KBS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야간 ‘정치싸움’으로 끌고 갔다.

특히 지난 달 26일 KBS 〈뉴스9〉는 언론관계법 논란에 대해 “쟁점 법안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팽팽하다”며 “2월 임시국회 남은 기간 5일, 깊어가는 여권의 고민”을 짚는 데까지 이른다. 언론관계법 기습 상정을 동아와 마찬가지로 “승부수를 던졌다”고 표현했고, 법안을 기습 상정할 수밖에 없었던 한나라당의 입장을 ‘해명’하는 데 치중했다. 또 여당이 쓸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지난 달 27일에는 국회 충돌 상황을 전하다 바로 다음 리포트를 통해 “다음 달 정부가 제출할 추가경정 예산 처리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보도했다. KBS는 “유례없는 경제위기”를 들먹이며 “야당은 미디어법 등 쟁점법안이 이번 국회에서 직권 상정돼 처리될 경우 국회 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추경도 아예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고 전했다. 오로지 민주당 때문에 예산 처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후에도 KBS는 시종일관 여야 대치 상황을 전달하는 데 그쳤고, 언론관계법이 통과됐을 경우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선 철저히 외면했다.

여야 합의는 끝났다. 결국 100일의 시한이 주어졌고, 사회적 논의기구가 얼마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가 중요해졌다. 벌써부터 조중동은 사회적 논의기구의 역할과 의미를 축소시키려 한다.

KBS는 2일 보도에서도 “한나라당은 6월로 미디어법 처리 시점을 확정했고, 민주당은 사회적 논의기구를 설치한다는 수확을 얻었다”고 이번 사안 자체를 정치싸움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견지했다. 조중동은 그렇다 쳐도, KBS가 언론관계법 처리 시한인 100일 동안에도 이 같은 태도를 견지한다면? 정말 KBS 수신료 거부 운동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