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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눈] 최근영 〈KBS스페셜〉 PD

아이고, 아이고…

영화의 모든 현장음은 ‘아이고’로부터 시작됩니다. 제게는 그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할머니가 입을 열면 한숨부터 나오고 자동으로 지청구가 됩니다. 무뚝뚝한 할아버지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이 아파…’입니다. 감독은 이 영화를 ‘유년의 우리를 위해 헌신한 이 땅의 모든 아버지와 소에게 바친다’고 했지만 저는 영화를 보고 아버지와 소의 희생적인 사랑을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겨를 없이 저에게 압도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바로 아이고… 아이 아파…였습니다.

▲ 독립다큐멘터리 〈워낭소리〉
낭만적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탄생과 함께 예약되어 있는 늙음과 병과 죽음을 전혀 내 것으로 체감할 수 없었고, 터무니없게도 나만은 예외일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가정이 있었습니다. 나는 젊음과 무병과 불사의 이쪽에 있고 저기 이미 늙어버린, 그리고 병들어버린, 그리하여 죽음에 임박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내가 이쪽에 있고 그들이 저쪽에 있는 지형에서는 저쪽의 상황을 바라보며 감동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자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부모의 사랑이 아름답고 그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뎌준 말없는 짐승의 헌신 또한 눈물겹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할 때도 있지만 영화관의 불이 켜지고 모든 것이 그대로인 휘황한 거리로 나오면 “이 영화 참 좋았어!”라고 쿨하게 말하고는 맛있는 저녁과 칵테일을 먹으러 갈 수 있습니다.

아이고, 아이 아파…
나는 노인들을 봅니다. 몸을 이루고 있던 딱딱한 것, 흐르는 것, 뜨거운 것, 움직이는 것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덧없이 스러져가는 폐허의 환영. 노인과 말없는 짐승의 업을 봅니다.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는 것 외에는 자신을 구원하는 방법을 알 길 없는 유구한 업의 흐름을 봅니다. 인간의 호사스런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육질이 가장 좋아지는 나이만큼 3,4년을 살고 도축당하는 동료들의 운명에서 비껴나 마흔을 살아온 소의 힘겹고 느린 걸음을 봅니다. 어느 날 축사의 벽을 뚫고 삐져나온 늙디 늙은 소의 머리를 봅니다. 소는 왜 죽음에 임박하여 자신의 머리로 축사의 벽을 뚫어버렸을까요.

몸은 축사 안에 두고 머리는 축사 밖으로 돌출된 채 죽어가는 소의 모습은 충격적입니다. 좋은 곳에 가거라. 할아버지가 코뚜레와 워낭을 풀어주며 말합니다. 사는 것이 힘겹고 고달프니 죽어서라도 좋은 곳에 가는 것이 뭇중생들의 희망이라면 희망입니다. 남에게 큰 빚을 진 사람은 소로 태어나 평생 일만 하며 그 빚을 갚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흔 된 소는 그처럼 열심히 일했으니 모든 업을 갚고 다음 생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요?

▲ 최근영 〈KBS스페셜〉 PD

“자신이 늙는 것을 싫어하는 자는 과일과 곡식을 먹을 자격이 없다”는 아잔차 스님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태어나서 자라나 변하고 움직이고 끝내는 사라집니다. 우리가 늙지 않는다면 과일도 익지 않을 것이고 곡식도 여물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진눈깨비가 내리지만 곧 따뜻한 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아이고, 아이고… 계절이 순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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