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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인권] 김진웅(선문대학교 교수/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장)

▲ 김진웅 선문대학교 교수,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장
언론소비자운동 차원에서 조중동 신문의 광고불매운동을 벌인 네티즌들에 대해 지난 2월19일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판결문은 전문가들을 제외한 일반시민들이 보아서는 잘 판단이 안될 만큼 복잡하다. 개요는 사건에 관련된 주요집단이 조중동 신문(사) 광고주 네티즌이고, 법원은 이들 중에서 네티즌에게 유죄를 내렸다.

이 판결은 몇 가지 생각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선 사건에서 핵심은 언론 또는 표현의 자유(언론의 자유)와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판결문에서도 언론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표현 및 의견표명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음을 세세하게 명시하였다. 그런데 정작 광고불매운동을 주도한 네티즌들에 대해서는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그것도 표현(언론)의 자유와는 거리가 있는 죄목 및 법리를 적용해서. 사건을 언론기본권 차원 보다는 단순 범죄 차원으로 전락시킨 느낌도 든다.    

그리고 설령 판결논리를 전제로 한다 하더라도 '업무방해'나, '공모공동정범이론'을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다. 익명의 수많은 소비자들이 '도를 넘는 수준'에서 광고주에게 전화했다는 것이 요지인데, 여기에 앞서 언급한 죄명을 적용시키는 것은 지나친 법리적 비약이다. 24명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실제 수많은 시민들이 업무방해(?)를 행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사건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유죄판결이나 다름없다.          

이번 판결과 같이, 사법부 또는 국가기관이 언론의 자유에 관련된 사건에 개입하여 통제하는 문제는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국가(권력)로부터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가 이를 심판한다? 언론소비자의 권리가 어디까지인지 모호한 상태에서 사법부가 이를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의구심은 더하다.  

▲ 경향신문 2월20일자 10면.
더구나 표현의 자유를 대변하는 공론장은 기존의 신문 방송 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 급속히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는 '인터넷공론장'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보여 주었다. 결국 송․수신자 구분이 없는 디지털시대에서도 대다수 국민은 소비자로서의 위상에만 머물러야 한다. 대신 제도권 언론들만이 공론장을 독점하도록 인정받은 셈이다. 조중동의 언론권력은 사법부의 보호 속에서 더 강화된다.   

한편 미국을 위시한 외국사례를 통해서는 광고불매운동이 유죄판결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확인시키곤 한다. 언론에 대한 광고불매운동은 언론소비자로서 법에 보장된 권리행사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소비자는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한편, 언론으로 하여금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포용하여 여론형성의 역할을 수행토록 한다.
  
법은 단순히 이해당사자의 시비를 가려주는 역할에 그쳐서는 안된다. 오히려 다양한 이해갈등을 초월한 사회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비전을 담아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법적용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사회가 너무 법치 만능주의에 의존하지 않나 우려스럽다.

역설적이지만 이번 판결은 우리의 현실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특히 판결을 통해서 법의 한계성을 인식케 하거나, 한국 지배언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민토록 만든다. 또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언론권이 실제 현실에서는 어느 정도 구현될 수 있는지도 가늠케 한다. 아울러 기본권이 보장된다는 막연한 환상에서 깨어나 스스로 땅에 발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점을 자각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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