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지상파 방송사로는 처음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SBS에 대해 최근 지주회사 도입 취지가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3일 지주회사인 SBS 미디어홀딩스(이하 홀딩스)가 출범 1년을 맞았지만 경영 투명성 강화, 소유·경영 분리 등 지주회사 도입 목적에 어긋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SBS는 지난해 방송사업 부문을 담당할 SBS와 투자사업 부문을 담당할 SBS 홀딩스로 회사를 분할한 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바 있다.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SBS의 최대주주는 (주) 태영건설에서 홀딩스로 바뀌었고, 태영은 홀딩스의 최대주주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태영에 대한 견제 장치가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특히 지난 달 27일 홀딩스 주총을 통해 윤세영 SBS 회장의 장남인 윤석민 태영 부회장이 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윤 부회장이 SBS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주회사가 SBS를 포함한 자회사들의 전반적인 경영 평가를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SBS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윤 부회장이 사실상 SBS 경영 일선에 복귀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윤 부회장은 지난 2004년 SBS 상무급 비상임 경영위원으로 선임됐으나 ‘방송 세습’ 논란 등 비판이 일어 물러난 바 있다.
윤 부회장 취임에 대해 홀딩스 관계자는 “최대주주로서 급변하는 미디어환경 속에서 경영의 책임성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로 삼으려는 뜻”이라고 밝혔다.
2004년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고 소유·경영 분리에 대해 사회적으로 한 약속을 어긴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서는 “약속을 어겼다고 볼 만한 사실이 없다”며 “법적으로 최대주주가 홀딩스 대표이사로 취임하는 것에 문제가 없고, 앞으로 어떻게 경영을 하는지 지켜본 뒤 지주회사 도입 취지와 맞는지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부의 시선은 다르다. 이재국 〈경향신문〉 미디어팀장은 “(윤 부회장의 복귀는) 2004년 재허가 국면 당시 시청자를 포함한 국민, 시민사회, 무엇보다 SBS 구성원들에게 했던 약속을 사실상 파기한 것”이라며 “태영의, 윤세영의 세습방송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요구한 것이 전문경영체제였고, 소유·경영 분리였다”고 지적했다.
이 팀장은 특히 윤 부회장이 복귀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없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기존 전문 경영인 체제나 과거 노사합의 정신, 국민에게 한 약속 등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거나 (사회적)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며 “SBS에 대해 영향력을 미칠 생각이 없다면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해선 안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해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요구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SBS 노조를 비롯해 지주회사 도입을 찬성했던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등은 지난해 1월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감사위원으로 선임되도록 노력한다는 노사 간 ‘특별합의’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달 27일 열린 주총에서 SBS는 노조 추천 사외이사를 감사위원으로 선임하도록 노력한다는 노사 합의를 지키지 않아 노조의 반발을 사고 있다. SBS 감사위원회는 현재 사측이 추천한 세 명의 인사로 구성돼 있다.
최상재 위원장은 “(윤 부회장이 지주회사 대표이사기 때문에) SBS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형식적 부분”이라고 잘라 말한 뒤 “그 부분이 실질적으로 담보되려면 노사 합의를 정확하게 지켜야 하고 그것이 지주회사 전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노조주장을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하면 SBS 경영, 나아가 편성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에 대해 신뢰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SBS의 한 조합원 역시 “홀딩스는 SBS 지분의 30%를 갖는 대주주로 사실상 SBS를 지배하고 있고 특히 이명박 정권 하에서 정치권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며 “최소한 노조 추천 사외이사를 감사위원으로 선임한다는 약속이 지켜져야 하는데 그것마저 안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소유와 경영을 완벽하게 분리하고 SBS는 방송 콘텐츠 제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지주회사”라며 “현재 상황으로 볼 땐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우려했다.
지난 달 주총 전후로 두 번의 성명서를 발표하며 노사 합의 이행을 촉구한 SBS 노조는 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치들을 모색 중이다.
심석태 SBS 노조위원장은 “내부적으로 기존의 상향평가제도를 개선해 방송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보직에 대해 실효성 있는 임면동의제를 시행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심 위원장은 또 “대주주는 방송의 공적 책임이나 권력·자본으로부터의 독립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지주회사 출범 1년에 (윤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들어오는 시점에서 방송을 단순히 투자, 경영,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지금이라도 경영 투명성이나 방송의 사회적 책임 등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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