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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태인 경제평론가

‘그린뉴딜’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입길에 오르내린다. 회수를 건넌 귤은 탱자가 되지만 태평양을 건넌 귤은 폭탄이 된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엉뚱하게도 그린뉴딜을 원자력 발전과 대운하, 그리고 물 민영화로, 즉 '잿빛 삽질'로 해석했다. 시민단체들이 “온통 잿빛에 녹색 점 하나”로 평가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UNEP(유엔환경계획)이나 영국의 그린뉴딜그룹, 그리고 오바마 정부의 그린뉴딜은 그야말로 임박한 지구온난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한 절박한 반응이다. 또한 경제위기를 맞아 형편없이 축소된 총수요와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키기 위한 대책이기도 하다.

▲ 디지털타임스 3월11일자 4면.
그린뉴딜은 시스템 변혁을 꿈꾼다. 석유 등 화석연료에 중독된 사회경제체제를 뒤바꾸기 위한 수많은 사업이 포함돼 있지만 변혁적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똘똘한 연결망’(smart grid)사업이다. 산업혁명시대의 철도, 프런티어시대의 고속도로, 그리고 1990년대의 정보고속도로(인터넷)에 이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에너지 고속도로를 건설하자는 얘기다. 물건과 정보의 속도전을 넘어서, 어디서 가장 생태적인 에너지(예컨대 소규모 태양광발전)를 생산하여 도중에 단 한톨(?)의 에너지도 허비하지 않고 고스란히 소비지(집이나 산업)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특히 전기에너지는 보관이 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니기에 에너지의 적정량-적기조달(just in time)은 매우 중요하다. 지난 10년 동안 인터넷의 보급을 통해 생활이 확 바뀐 것을 되돌아보면 이런 전환이 경제에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인가도 능히 상상할 수 있다. ‘전국의 삽질’과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르다.

‘그린뉴딜’을 제대로 하자면 정신혁명이 필수적이다. 재화와 서비스를 가능한 많이 누리는 것, 즉 성장이 곧 행복(welfare)이라는 주류경제학의 기본 사고를 뒤집어야만 인류는 생존할 수 있다. 기실 사회주의의 이론적 기초였던 마르크스주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현대의 마르크스주의는 주류경제학의 환경경제학(environmental economics, 예컨대 탄소배출권 같은 해법)을 뛰어넘는 생태이론을 모색하고 중앙 계획이라는 수단이 그린뉴딜과 같은 정책을 단숨에 실행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과거의 실천이 보여준 것은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대위기를 맞아 1930년대의 경험을 들춰 보던 나는 폴라니에게서 희망을 찾았다. 굳이 얘기하자면 케인즈 역시 이성의 힘이 가져오는 생산력 발전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사람이었다. 시장의 자동조절이 이뤄지는 “장기에는 우리 모두 죽는다”며 위기 시의 정부 역할을 강조했지만 적절한 조정이 이뤄지기만 하면 모든 사람들이 블룸즈베리의 ‘선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굳게 믿을 만큼 그는 낙관적이었다. 그에게 시장은 적절히 다룰 수만 있다면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인 것이다.

그러나 폴라니는 시장이라는 제도가 인간의 천성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리라는 사실을 30년대에 이미 꿰뚫었다. 그의 이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재생에너지와 안전한 먹을거리가 그다지 넓지 않은 범위에서 호혜적으로 배분되는 지역공동체를 능히 그려낼 수 있다. 호혜성(reciprocity)이야말로 우리가 내면 깊숙이 원하고 있는 생명 복지(lifare, 내가 만든 말이다)의 원리일 것이다.

전기, 가스, 철도, 우편 등 근거리를 넘어서는 전국적 네트워크, 그리고 교육, 의료, 주거 등 필수재는 국가가 재분배(redistribution)의 원리에 입각해서 최대한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도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녹색가치는 철두철미 관철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녹색공공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 정태인 경제평론가
시장은 이런 기초위에 사회의 일부로 착근되어야(embedded) 한다. 이 부문은 경쟁의 원리가 지배할테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공정성(fairness)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폴라니의 미완의 꿈을 지금 이루지 못하면 우리 모두의 끔찍한 공멸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어느 나라가, 누가 이런 사회를 먼저 만들 것인가? 우리 아이들의 생명이 달려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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