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파문’ 언론은 책임없나
상태바
‘장자연 파문’ 언론은 책임없나
연예계 구조적 비리는 외면 … 호기심 위주 보도만 양산
  • 김도영 기자
  • 승인 2009.03.17 2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7일 자살한 채 발견된 고 장자연 씨가 술 접대, 성 상납을 강요받았다고 적은 자필문건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문건에는 언론사 유력인사, 기획사 대표, 드라마 PD 등 10여명의 실명이 거론돼 있어 후폭풍이 예상된다.

‘장자연 문건’을 최초 보도한 KBS는 지난 13일 <뉴스9>에서 “숨진 장씨의 명예와 불법행위 사이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이 문건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은창 KBS 보도국 사회팀장은 “입수한 문건이 진짜라고 봤고, 당시는 경찰이 장씨 사건을 종결한 시점이었다”며 “술자리 접대강요, 폭행 등 문건에 드러난 내용은 틀림없는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공개해야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장자연 문건'을 최초 보도한 13일 KBS <뉴스9> ⓒKBS 화면캡처
정 팀장은 또 “이번 사건은 고질적인 연예계 비리가 드러난 만큼, KBS는 구조적인 문제를 밝혀내기 위해 문건을 공개한 것”이라면서 “언론이 한 개인의 죽음을 선정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건 공개 이후 쏟아져 나오고 있는 보도들은 연예계의 구조적 비리를 밝혀내는 것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스포츠신문 등 대부분의 연예지들은 ‘연예인 성상납은 고질적 관행’이라고 치부하며 익명의 취재원을 통해 이를 들춰내는 자극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또 장 씨의 죽음을 둘러싼 추측성 보도도 다수를 차지했다.

문건 공개 직후 고 장자연 씨의 오빠는 “소속사 측에서 가지고 있던 문서를 유서인 냥 보도하며 ‘스폰서’, ‘보이지 않는 힘’ 등 입에 담기도 힘든 선정적인 단어로 가족들의 마음을 더욱 더 아프게 하고 있다”며 “각종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 스포츠월드 3월 16일자 23면.
‘연예인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선정적 보도를 일삼는 언론들의 행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은 그동안 연예계의 화려한 면을 부각시키며 연예산업의 거품을 키우는데 일조해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언론은 평소 ‘고질적 관행’으로 치부해 버리는 어두운 이면에는 관심을 갖지 않다가 ‘장자연 사건’과 같은 일이 터지면 흥미 위주의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이런 식의 접근은 문제의 본질적 해결보다 일회성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유사한 사례로 2002년 대대적인 ‘성상납 수사’ 등이 있었지만, 연예계의 구조적 문제가 제대로 부각된 적은 없었고 수사가 흐지부지되면 언론의 보도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

▲ 스포츠칸 3월 16일자 2면.
17일 ‘장자연 문건’의 필적을 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고인의 필적과 문건의 필적은 동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나 자필 문건 여부는 사본이므로 판단이 곤란하다”고 밝혔다. 같은날 인터넷에는 확인되지 않은 ‘장자연 리스트’가 떠돌아 논란이 일었고, 경찰은 이를 두고 ‘찌라시(증권사 사설정보지)’라며 사실 가능성을 일축했다.

경찰 조사가 가시화됨에 따라 이제 여론의 이목은 ‘장자연 리스트에 누가 있냐’로 쏠리고 있다. 언론의 촉각이 어디를 향할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김정대 언론개혁시민연대 기획실장은 “언론이 취재윤리와 ‘알 권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호기심 위주의 보도를 내보낸다면 일부 인사에 대한 ‘마녀사냥’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이번에도 선정적 보도로 일관한다면, 언론 또한 ‘연예계 비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