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에서 생각해 본 지역문화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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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닷컴]

한반도 육지에서 가장 빨리 봄을 맞이한다는 땅끝, 3월초면 이미 흐드러지게 핀 매화의 향기와 어디서나 쑥~쑥 잘 자란다는 쑥 냄새가 땅끝의 봄을 알린다. 땅끝하면 대체적으로 전남 해남군 송지면 일대를 가리킨데, 그 곳엔 땅끝탑, 땅끝전망대, 갈두산과 갈두항, 송호해수욕장, 달마산과 미황사가 있다. 누군가는 땅끝이 여행의 종착지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국토순례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완도 보길도나 노화도에 가기 위해 거쳐가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주말(3월 7일~8일) ‘봄향따라 떠나는 땅끝마을 여행’이란 프로그램이 있어 취재차 땅 끝에 갔다. 프로그램은 지역민이 중심이 된 ‘땅끝 추억여행 운영위원회’에서 준비했는데, 수도권지역의 전통술 동호회 회원을 비롯해 100여명이 참가했다. 여행 운영위는 ‘땅끝 주민들과 관광객이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고, 땅끝에서 함께 느낄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으로 이번 행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변덕이 심한 초봄 날씨치고는 따스했던 이날 행사는 나물캐기부터 시작됐다. 해풍 맞고 자라 약이 된다는 쑥을 캐고, 땅끝 탑까지 700m정도 숲길산책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나무와 산길, 주변의 섬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지역의 아주머니들이 직접 만든 성찬에 출출해진 뱃속을 달랬다. 세발나물, 물김전, 모자반튀김, 쑥버무리까지 그야말로 땅끝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이른 봄 냉이로 빚은 냉이술(쌀과 누룩으로 빚은 곡주에 냉이향을 더한 전통주)이 반주로 더해져 맛, 멋, 감흥이 어우러진 시간이었다.

냉이술을 협찬한  배영호 사장은 “술시장에서 여전히 非主流로 통하는 전통주업계가 눈여겨 볼 곳은 바로 지역의 문화와 농업이라며, 내년에는 해남의 공장에서 직접 빚은 술을 가지고 참가하겠다”고 했다.
저녁이 되자 줄다리기를 하기 위해 마을주민과 참가자들이 직접 ‘줄드리기’를 하며 가닥줄을 꼬고, 해남군고(풍물굿)에 맞춰 風燈(임진왜란시기 남해안에서 軍과 軍사이에 신호연락용으로 사용했는데, 한지로 만든 등을 육지에서 바닷가로 날리는 일.

최근에는 청계천 촛불집회에도 등장)을 띄워 소망을 빌었으며, 우수영 강강술래 노랫가락에 맞춰 한바탕 신나게 춤을 췄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뛰는 자연스러운 어울림과 축제였다. 이곳에선 외부로부터 초청된 연예인이 주도하고 정작 지역주민은 객이 되는 이벤트나 이름만 팔도장터지 판박이 음식난장을 펼치는 전국적으로 흔한 지역축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6시37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갈두산 정상에서 바라 본 일출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해를 맞이하며 몸을 풀어야 기를 받는 국선도에다 해뜰 때 전해주는 섬 이야기는 더욱 재미났다. 땅끝 앞바다에는 백일도(순우리말로 흰날섬)와 흑일도(검은날섬)가 있는데, 해가 뜨는 동쪽에 가까운 섬은 하얗게 보여 백일도이고, 백일도에 가린 섬은 상대적으로 검게 보여 흑일도라고 한단다.

 “그냥 멋진 광경으로도 좋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이어주는 이야기가 있어야 또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된다”는 멋드러진 해설을 뒤로 하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달마산과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 동백숲을 거닐며 절에서 내준 차 한 잔을 마시며 1박2일의 여행을 마쳤다. 참가자나 주민들이나 모두가 대 만족이었다.

‘추억여행운영위’는 앞으로 마을로 들어가 ‘배고픈 시절에 만들어 먹었던 시골음식이야기’ 미황사에서 땅끝까지 트레킹 등 생태, 지역민의 삶, 남도음식, 스토리텔링 등 땅끝이라는 아름다운 공간에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채우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당장 돈벌이가 되지 않더라도 지역민이 중심이 되는 바닥 채우기 정신을 놓지 않겠다고 한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김순규 목포MBC PD

최근에 광주에선 ‘씨네웍스’라는 지역영화사가 제작한 80년 5월 광주에 대한 영화<순지>의시사회를 연다고 한다. 전라도 진도 소포리에선 매립했던 간척지를 갯벌로 바꾸는 역간척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 자연, 생태, 친환경농업, 문화를 채워 넣는다고 한다. 이곳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자치단체가 아니라 주민이 직접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민이 중심이 된 지역의 다양한 문화의 힘은 어느덧 세상을 조금씩이나마 바꿔가고 있다. 다만 시절이 하수상해서 지역의 꿈틀거림이 중앙의 큰 싸움이 묻혀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는데 그저 기우에 지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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