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 -분장실의 강선생님’ 웃음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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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려고 저승사자랑 1촌도 맺었어, 이것들아~

우리 땐 상상도 못할 개그였어요~

요즘 개그 프로그램에서 가장 ‘핫’한 캐릭터는 뭘까. 수없이 패러디되는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아내의 유혹〉의 민소희? 아니다. 요즘, 이 캐릭터 모르면 말이 안 통한다. 유행어 “이것들아~”의 주인공, KBS 〈개그콘서트〉(일요일 오후 9시 5분, 연출 김석현·박성재)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안영미다.
신인 연기자들이 분장실에서 선배들에게 연기를 배우는 과정을 그린 ‘분장실의 강선생님’이 지난달 22일 첫 전파를 탔다. 방송이 끝난 뒤, 〈개그콘서트〉 시청자 게시판은 물론 포털 사이트까지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배를 잡고 뒹굴었고, “똑바로 해 이것들아”, “우리 땐 상상도 못할 일이야” 같은 유행어들을 따라 하기 바빴다. 소위 ‘대박’이 난 것이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웃음코드는 크게 두 가지다. 군대나 직장생활에서 볼 수 있는 살벌한 위계질서와 여성 개그맨들의 엽기적인 분장이다. 강유미, 안영미, 정경미, 김경아 등 4인방의 수직적 관계가 웃음을 자아내고, 그녀들의 더없이 망가지는 모습에 폭소가 터진다.
그동안 개그 프로그램은 대개 남성 개그맨들에 의해 장악돼 왔다. 〈개그콘서트〉 역시 그랬다. 유세윤, 이수근, 변기수, 윤형빈 등 남자 스타들이 탄생했고, 반면 강유미나 신봉선 같은 개그맨들은 가뭄에 콩 나듯 ‘발견’될 뿐이었다. 여자 4인방의 활약이 돋보이는 ‘분장실의 강선생님’이 더욱 반가운 건 그래서다. 매주 일요일 밤, 우리를 행복한 웃음에 빠져들게 하는 그녀들의 활약을 살펴본다.

“연기로 웃길 생각을 안 하고 분장으로 웃기려 들잖아요.”

KBS 〈개그콘서트〉 ‘분장실의 강선생님’(이하 ‘분장실’)의 1차적인 재미는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자 개그맨들의 활약에 있다. 강유미, 안영미, 정경미, 김경아 등 4인방은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분장과 몸개그로 폭소를 자아낸다. 이는 불황 속에서 좀 더 쉬운 개그를 찾는 시청자들의 욕구와 맞아떨어지면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코너가 시작되고 무대 위에 앉아있던 정경미, 김경아가 몸을 돌리면 시청자들은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낸다. 그러다 그녀들의 입에서 대사가 시작되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어 ‘골룸’ 분장을 한 안영미가 “수고했어, 얘들아~” 하며 등장하면 방청석은 물론, TV를 보는 시청자들까지 뒤집어진다. 온갖 엽기적인 분장을 한 채 뜨개질과 독서를 즐기는 강유미의 모습도 폭소가 터지게 한다.

이들의 분장은 파격적이다 못해 충격적이다. 기존에 남자 개그맨들조차 온몸에 랩이나 테이프를 감고, 코 밑에 하얀 콧물 분장을 그리는 수준에 그쳤지만, 그녀들은 골룸을 비롯해 처키, 프랑켄슈타인, 헬보이 분장 등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녹화에 앞서 분장에만 한 시간씩 걸릴 정도다. 안영미가 가끔씩 하고 나오는 코털이나, 닭발 같은 소품들 역시 웃음을 더하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처음 정경미는 “〈개그콘서트〉 분장실에서 웃긴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재미있겠다 싶어” 코너를 착안해냈다. 그러나 이전까지만 해도 여성 개그맨들의 분장이나 몸개그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웃기다’는 반응보다는 ‘안쓰럽다’, ‘불쌍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여기에 한 마디가 덧붙는다. “시집은 어떻게 가려고 그럴까?” 안영미의 어머니 역시 하나뿐인 딸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단순히 “분장으로만 웃기려 드는” 게 아니라 훌륭한 연기로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그녀들의 시도는 박수받기에 충분하다.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들의 노력이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난 3년차 될 때 간신히 콧물 그렸어. 이것들아~”

‘분장실’의 웃음 포인트는 개그맨들의 분장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우스운 분장을 하고 진지한 대화를 이어가는 그녀들의 대화가 더 재미있다. 특히 그녀들이 보여주는 살벌한 위계질서가 우스운 분장과 부조화를 일으키며 더욱 큰 웃음을 유발한다.

수직적 서열의 중심축은 안영미다. 안영미는 후배 정경미와 김경아에게 늘 “똑바로 해 이것들아~”,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하며 핀잔을 준다. 그리고는 ‘강선생님’ 강유미에게는 간, 쓸개 다 내줄 것처럼 군다. 강유미가 연기를 마치고 돌아오면 연신 머리를 빗겨주거나 몸을 닦아주고, 강유미가 죽는 연기를 하면 진짜 죽은 것처럼 통곡을 하다 “놀랐잖아요, 선배님~” 하며 갖은 아양을 떤다.

반면 정경미와 김경아를 대하는 태도는 마치 군대에서 이등병을 대하는 상병의 태도와도 같다. 도너츠를 먹다 걸린 정경미에게 “우리 땐 상상도 못할 일이야”라며 “난 5년차 때 선배님들 떡볶이 드실 때 겨우 파 한 조각 얻어먹었다”며 꾸짖고, 남자친구를 소개하는 김경아에게 “헤어져”라고 대뜸 충고하면서 “완전 어이없다. 우리 땐 남자 만나는 거 꿈도 못 꿨어. 우리 땐 남자 만나지 말라 그래서 개도 암컷만 키웠어”라고 구박한다.

또 이들이 커피를 갖다 주면 “나 마끼아또 아니면 안 먹는 거 몰라?”라며, 향수를 뿌려주면 “나 넘버 파이브(No.5) 아니면 안 뿌리는 거 몰라?”라며 정색을 한다. 하나하나 트집을 잡고 억지를 부리는 ‘선배 안영미’의 모습이 내 주변 선배나 직장 상사의 모습과 닮은 것 같아 더 우습다.

게다가 “우리 때는~”으로 시작하는 설교는 또 어떤가. 후배들에게 연기를 가르치며 강유미는 “요즘 애들이 뭘 해봤겠어. 술주정뱅이 남편 뒷바라지를 해봤겠어. 노름빚에 팔려가길 해봤겠어”라며 일장 연설을 한고, ‘2인자’ 안영미는 “야, 우리 땐 한 번씩 다 팔려갔어, 이것들아”라며 맞장구를 친다. 처키가 무덤에서 나오는 연기를 가르치며 강유미가 “요즘 애들이 뭘 알겠니. 나처럼 처녀귀신을 보고 오줌을 지려봤겠니, 저승사자 따라 황천길을 한번 갔다 왔겠니”라고 하면, 안영미가 “우리 땐 저승사자랑 1촌도 맺었어, 이것들아”라고 훈계하는 식이다.

이런 장면은 비단 분장실 속 모습도, 군대 안의 모습도 아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만나는 꼴불견 선배와 상사들이 꼭 이렇지 않은가. “우리 때는 선배가 시키면 군말 없이 했다”,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라며 충고를 늘어놓는 ‘선배’들은 주위에서, 혹은 내 안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요즘 주위에서 ‘선배’로서의 권위를 좀처럼 볼 수 없기에, 억지를 부리는 안영미의 말투와 행동이 더 웃기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이 말을 중얼거리게 된다. “똑바로 해, 이것들아~”

‘분장실의 강선생님’ 속 웃음의 핵은 안영미다. 정경미가 아이디어를 냈고, 코너 제목은 강유미의 이름을 따서 지었지만, 10여분 남짓 하는 코너를 볼 동안 시청자들이 가장 집중하고 웃어대기 바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안영미다.

2004년 KBS 19기 공채로 데뷔해 올해로 데뷔 6년차 개그맨 안영미. 하지만 그녀는 ‘스타’였던 적이 없다. 절친한 동기이자 라이벌인 강유미와 반대로 그녀는 대중의 주목을 받은 적이 별로 없었다. 강유미에 가려져 ‘2인자’로 불렸고, 그나마도 신봉선과 박지선 등의 출연으로 그녀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그런 안영미가 최근 ‘분장실의 강선생님’ 속 후배들을 꾸짖는 선배 ‘골룸’으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데뷔 5년 만에 제대로 주목을 받은 셈이지만, 사실 안영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던 ‘고고~ 예술 속으로’에서 안영미는 강유미와 함께 순정만화, 드라마 등 각종 대중문화 장르를 풍자해 웃음을 유발했다. 이때부터 그녀만의 독특한 감수성과 섬세한 표현력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강유미는 유세윤과 함께 한 ‘사랑의 카운슬러’로 승승장구했고, 반면 안영미는 연기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 연극과 드라마를 전전하며 대중의 관심 속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그러다 KBS 〈웃음충전소〉의 ‘타짱’에서 분장 개그로 큰 웃음을 선사하며 서서히 기지개를 켰고, 지난 해부터는 ‘황현희의 소비자고발’에서 안영미 박사로 출연하며 입담을 과시 중이다. 케이크에 들어있는 칼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하며 “비행청소년들의 90% 이상이 생일날 케이크를 먹어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라고 진지한 얼굴로 설명하는 모습은 더없이 안영미다우며, 일본 말투로 유민‘상’, 윤계‘상’ 등의 이름을 읊조리거나 “기분 탓이겠죠”, “이봐 그러지 말고~” 식으로 정색하며 말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최근에는 컵라면 크기에 자신의 가슴 크기를 비교하는 등의 ‘자학 개그’로도 웃음을 주고 있다.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등의 유행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안영미는 아이디어도 뛰어나지만, 그보다 더 빛나는 건 훌륭한 연기력이다. ‘황현희의 소비자고발’ 속 진지한 박사와 ‘분장실의 강선생님’ 속 엽기적인 골룸 분장을 오가며 웃음을 줄 수 있는 개그맨은 흔치 않다. 그래서 〈개그콘서트〉 제작진도 안영미의 연기만큼은 높이 치켜세운다.

단순히 아이디어만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내공 있는 연기력으로 안정적인 개그를 선보이는 안영미. 뒤늦은 감이 있지만, 대중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이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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