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클래식 듣는 직업, 조수미씨도 부러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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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 시즌3] ④ KBS 1FM ‘당신의 밤과 음악’ 이미선 아나운서

FM 주파수를 돌리다 보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채널을 찾을 수 있다. 토크가 점령한 라디오에서 유일하게 말을 아끼고 음악만을 전하는 KBS 클래식FM(93.1MHz). 클래식FM이 지난 2일 30주년을 맞았다. 유일한 음악전문채널로 서양고전음악과 국악, 월드뮤직을 전해온 클래식FM에는 25년 동안 꾸준히 자리를 지킨 DJ가 있다.

<당신의 밤과 음악>(오후 10시~12시) 이미선 아나운서. 1978년 KBS2의 전신인 동양방송(TBC)에 입사해 올해로 31년째 KBS에 근무하고 있는 이 아나운서는 25년 동안 ‘클래식 DJ’로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 “투박한 AM보다 섬세한 FM에 맞는 목소리”라고 설명하는 그의 진행은 클래식 음악을 닮았다. 여유 있고, 편안하며, 우아하다.

▲ '당신의 밤과 음악' 이미선 아나운서

[1악장 ] 난, 클래식 DJ

25년전, 이미선 아나운서가 클래식FM에서 처음 맡은 프로그램은 <음악의 산책>. DJ의 역할은 ‘고작’ 음악 소개가 전부였다. 청취자들의 아기자기한 사연도 전하고 싶었던 이 아나운서는 굉장히 속상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다른 두 곡 사이를 이어주는 중간 소개멘트는 생각보다 중요했다. 그는 “처음엔 딱딱하다고 생각했지만, ‘클래식 DJ’의 역할을 제대로 고민하게 해준 프로그램이었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준전문가가 다 됐지만, 이미선 아나운서가 처음부터 클래식과 친숙했던 것은 아니다. 클래식FM 진행을 맡게 된 후 이 아나운서는 음반실에서 ‘귀에 좋은 음악’을, 연주자를 바꿔가며 수차례 반복해서 들었다. 음악책에 있는 지식보다, 듣고 난 후의 감상을 전하기 위해 시집도 많이 읽었다. 그렇다고 AM처럼 많은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멘트가 3분을 넘기지 않는 훈련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미선 아나운서가 ‘클래식 DJ’에게 필요한 것으로 꼽는 것은 작곡가와 곡명에 대한 정확한 딕션(발음)이다. 그는 “클래식은 유럽음악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영어, 불어, 독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의 딕션은 갖춰야 한다”며 “일본 발음이 그대로 잘못 전해진 경우가 많은데, 특히 러시아어는 제대로 하면 다 고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2악장] 청취자 혹은 동반자

이미선 아나운서는 인터뷰를 하면서 “내 얘기보다 청취자들 사연을 좀 소개해달라”며 꼼꼼히 밑줄 친 흔적이 남아있는 사연 몇 장을 보여줬다.

“주변사람들이 정년퇴직 후 어떻게 지낼 거냐고 걱정해서, ‘걱정마라. 나에겐 클래식FM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에는 출·퇴근 시간에만 들었지만, 요즘은 언제든지 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런 참여는 평생 처음입니다만, 제 인생 황혼기도 KBS 클래식FM과 함께할 것입니다.” (개국 30주년 축하 사연 가운데)

마니아가 많은 클래식FM답게, 사연 하나하나에 오랜 세월의 흔적과 라디오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이 아나운서는 “청취자의 인생에 공감하거나 감동적인 사연들은 버리지 않고 모아뒀다”며 “어느덧 20년이 넘은 청취자도 있고, 몇몇은 친척처럼 성장과정이나 인생사를 다 알게 된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청취자들도 DJ를 소름끼치게 잘 안다. 이미선 아나운서는 “라디오는 기분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목소리에 묻어난다. 숨기거나 포장이 불가능한 인간적인 매체”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라디오 진행자들은 개편에 따라 프로그램과 헤어지게 되면 한동안 실연당한 사람처럼 주변을 배회한다.”

▲ 빼곡히 밑줄이 그어져있는 '당신의 밤과 음악' 청취자 사연.

[3악장] 음악, 행복한 에너지

이미선 아나운서가 아침 방송 <가정음악>을 진행할 때 여러 차례 출연했던 성악가 조수미 씨는 “정말 아침마다 2시간씩 음악을 들으면서 일하냐”며 부러워했다. 이 아나운서는 “전공 분야의 음악을 주로 들어야하는 연주자와는 다르게, DJ는 제약 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며 “새삼 좋은 직업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25년간 매일 클래식 음악을 들어온 이미선 아나운서가 좋아하는 작곡가와 연주자가 궁금했다. 이 아나운서는 “워낙 오래 해 답하기가 어렵지만, 포레, 드뷔시, 뿔랑 같은 프랑스 작곡가들이 내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가 이름을 날릴 때 너무 차가운 느낌 때문에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피아졸라의 탱고음악에 빠진 뒤 그의 연주가 따뜻해졌다. 음악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했다.

클래식FM을 통해 만난 음악가들이 이 아나운서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기도 한다. 특히 피아니스트 백건우와의 만남은 인상적이었다. “백건우 씨가 말이 어눌한 편인데, 잘 참고 기다리면 무궁무진한 얘기를 들을 수 있어요. 그게 늘 아쉬웠는데, 2000년 밀레니엄 특집으로 2시간 동안 특별한 콘티 없이 백건우 씨와 얘기를 나눴죠. 음악과 영화에 정통한 그만의 절묘한 비유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 이미선 아나운서
[4악장] 25년, 그 이후의 꿈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코너를 맡는 것. 클래식FM을 두루 거친 이미선 아나운서가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이다. “좋아하는 성악이나 피아노 관련 코너를 맡아 직접 원고를 쓰거나 진행을 맡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방송에 쫓겨 미뤘던 유럽연수도 희망사항이다. 이 아나운서는 “여건이 된다면 1~2년 정도 유럽에 살면서 음악회와 축제를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25년간 몸담았던 클래식FM이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클래식 공연도 다양해지고, 수용층도 세분화되는 추세를 라디오 채널도 반영해야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클래식FM에서 음악회 중계를 많이 하는데 해설자와 진행자가 평면적으로 진행하는 것보다 리허설을 중계한다던지 백스테이지의 단원, 관객석의 청중 인터뷰 등 다양한 시도를 해야하지 않을까”라고 아이디어를 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라디오 진행자로서 이미선 아나운서가 바라는 것은 청취자와의 공감이다. “방송을 하다보면 원고를 읽기도 하고, 애드리브도 있어요. 항상 잘 할 수는 없죠. 하지만 제가 하는 얘기 중에 어떤 청취자가 정말 가슴깊이 공감할 수 있는 얘기가 1년에 몇 번이라도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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