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로 불똥 튄 성접대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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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로 불똥 튄 성접대 파문
[이희용의 주간미디어리뷰]
  • 이희용 한국기자협회 부회장ㆍ언론연구소장
  • 승인 2009.04.09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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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용 한국기자협회 부회장ㆍ언론연구소장
최근 정가와 언론계 등에서는 '연차 휴가 얻어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까지 번져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리스트와 유력 언론사 대표 이름도 들어 있다는 고 장자연 씨 문건의 접대 리스트를 빗댄 것이지요.

방송가에는 또다른 스캔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티브로드의 직원이 3월 25일 청와대 김모, 장모 행정관과 방송통신위원회 신모 과장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온 것이지요. 티브로드의 대주주는 태광산업인데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상호가 같아 묘한 느낌을 줍니다.

경찰이 티브로드의 로비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1개월 치의 통화 내역과 3개월 치의 법인카드 내역을 뒤지겠다고 하니 혹시 또다른 의혹이 불거질까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여기에 강희락 경찰청장도 가세했습니다. 강 청장이 공보관 시절 기자들에게 성접대를 한 적이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계 일각에서는 당시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진위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도 터져 나왔습니다. 이른바 강희락 리스트를 까야 한다는 것이지요.

경찰의 수사 결과 티브로드의 청탁 혐의는 일부 사실로 드러난 것 같습니다. SO 시장점유율 1위인 티브로드가 6위의 큐릭스를 인수하고 방통위의 승인 심사를 앞둔 시점이어서 의심받기가 더 좋았지요. 방통위도 3월 30일 전체회의에서 다루려던 이 안건을 연기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청와대 김모, 장모 행정관에게 뇌물수수 혐의를, 이 가운데 김모 행정관에겐 성매매 혐의까지 적용해 불구속 입건하면서 "향후 청탁을 위한 성격이었고 청와대와 방통위에 대한 조직적인 로비는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인수 합병에 대한 승인 심사는 지난달 14일 이미 외부 심사단에 의해 통과됐기 때문이라네요.

하지만 몇 가지 의혹은 남습니다. 경찰이 초반에 석연치 않은 태도를 보인 데다 나중에 의욕을 보였다가 서둘러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지요. 경찰은 성매매 혐의를 적발한 장소가 G모텔이 아니라 안마시술소였다고 발표했다가 이틀 만에 정정해 성접대 사건이 아닌 단순 성매매 사건으로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안마사들이 마포경찰서를 항의방문하는 소동도 빚어졌지요.

청와대가 3월 27일 직원들의 근무윤리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나 경찰은 30일 브리핑에서 28일자 신문을 보고 피의자의 신분을 알았다고 말해 처음부터 경찰이 청와대 직원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이미 청와대에도 보고했음에도 이를 감추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샀습니다.

▲ <경향신문> 4월 3일 12면
이 같은 의혹이 제기되자 경찰은 뒤늦게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나섰으나 조직적인 로비는 아니라고 결론 내려 전형적인 도마뱀 꼬리 자르기 수사라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빙산의 일각만 드러난 것 아니냐는 것이지요.

세간의 또다른 관심 가운데 하나는 이들이 어떻게 경찰에 걸렸느냐는 것입니다. 경찰은 근처에 잠복하고 있다가 우연히 잡았다고 말했지만, 성매매 단속 관행으로 볼 때 티브로드의 경쟁 사업자가 제보했거나 D룸살롱의 경쟁 업체가 찔렀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됐지요. 어떤 소문에 따르면 D룸살롱 옆방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술을 먹고 있다가 접대부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져 관할 경찰서에 제보했다고 하네요.

방송가 주변에서는 '언젠가 터질 줄 알았다'는 시선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인허가권을 지닌 부처임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기준이 느슨하고 근무 기강이 해이해 업체들과의 유착이 심각했다는 겁니다. 더욱이 청와대에 파견된 김 행정관과 신 과장이 민간인인 방송위원회 출신이어서 공무원에 비해 맺고 끊는 처신에 관한 노하우가 부족해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MSO 가운데 티브로드가 유독 로비에 적극적이었다는 후문도 돌고 있지요.

뉴라이트전국연합은 3월 31일 논평을 통해 "방송업계와 옛 방송위 출신 방통위 직원들의 부적절한 유착관계는 오랫동안 방송계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문제"라며 "이번 사건은 방송사들과 옛 방송위 출신 간부들 간의 부적절한 관계를 밝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방통위에서는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흙탕물을 일으킨 미꾸라지 한두 마리의 문제인데도 방통위 직원 전체, 그 가운데서도 방송위 출신들의 도덕성이 도매금으로 의심받는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정보통신부 출신 직원들에게 눌려 지내는 터에 방송위 출신, 특히 노조 간부들의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질 것이라는 걱정도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실제로 신 과장과 김 행정관이 맡던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 행정관 자리에는 정통부 출신의 박노익 융합정책과장이 파견될 예정이고, 신 과장이 맡던 뉴미디어과장에도 정통부 출신이 거론된다고 합니다.

또한 직제 개편을 앞두고 행정안전부가 과장급 보직을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번 사건의 여파로 방통위 출신들이 더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고 하네요. 인사 이동 과정에서 방송위 출신들이 관련 지식과 경험이 없는 전파나 통신 관련 부서로 배치돼 '왕따'를 당하거나 무능력자로 찍힐 수도 있지요.

방송가에서도 사건의 성격상 당사자들을 두둔할 수는 없다 해도 이번 일로 정통부 출신에 비해 방송위 출신들의 위상이 추락하면 정책 추진과정에서 공공논리보다 산업논리가 더 우세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케이블TV 업계도 걱정이 태산입니다. SO들이 로비의 진원지로 주목받는 것도 부담스럽고 SO들이 요구해온 각종 규제 완화 조치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사실상 케이블TV와 경쟁매체인 IPTV에 대해 방통위가 적극적으로 육성책을 쓰고 있는 처지에 이번 일을 계기로 이 같은 기조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경찰청장 말대로라면 누구는 재수 없어 걸렸다지만, 만일 이 일이 빌미가 돼 공공논리가 약화되고 매체간 균형발전이 훼손된다면 해당 직원이나 사업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피해를 볼지도 모를 일이지요.

"지상파 계열 스포츠채널마저 SO 눈치 본다"

3월 31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주최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후원한 '방송통신 융합 1년의 성과와 전망' 심포지엄은 넓은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이 꽉 차고 자료집이 일찌감치 동이 날 정도로 성황을 이뤘습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축사에서 "지난 1년간 우리 방송통신산업이 경제위기 극복과 국민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확인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규제 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광고와 콘텐츠도 적극 육성해 나갈 것"이라고 말해 지금까지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밀고 나갈 뜻을 밝혔습니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도 "미디어 관련법의 조속한 개정을 통해 방송통신 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면서 한나라당의 관련법 개정안에 힘을 실었지요.

'신규 서비스 개발 및 콘텐츠 활성화'란 제목으로 발제에 나선 유의선 이화여대 교수는 방통위 1년 업적에 대해 △상임위원 간의 원만한 합의 사례 증가 △IPTV 상용화 △방송통신망 고도화와 주파수 효율화 △규제 완화와 경쟁 촉진 등 긍정적 평가와 △정치적 중립성 훼손 △상임위 업무 과다로 의사 결정 지연 △IPTV 편향 정책 △IT업계에 대한 배려 소홀 등 부정적 평가를 소개한 뒤 "방통위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정책 내용에 대한 세부적, 실증적 근거에 기초해 이뤄졌다기보다는 정치 성향 또는 비판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 주도적이었다"고 깎아내렸습니다.

오양호 변호사는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이란 제목의 발제문에서 "IPTV의 경우 경쟁 사업자들이 콘텐츠 제공을 방해하는 사례가 나타났다"면서 "IPTV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각종 불공정행위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요.

토론자로 참석한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도 "최근 스포츠 전문채널 사장들을 만나 '적정한?탁했는데, SO들이 채널 티어링 등에서 불이익을 주는 비용까지 보상해줄 것을 요구해 곤란을 겪었다"면서 "대부분 지상파 계열이고 시청률 상위에 꼽히는 채널인데도 SO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실제로 증권ㆍ경제정보 전문채널 토마토TV는 "IPTV의 콘텐츠 사업자로 등록한 것을 이유로 충청방송과 성남 아름방송이 잇따라 신규 편성에서 제외했다"면서 방통위에 분쟁조정을 신청했습니다.

아름방송 등은 "아날로그 채널이 70여 개로 한정돼 있어 선별할 수밖에 없고 토마토TV가 빠진 것은 시청률 등 자체 PP 평가를 통해 도출된 결과"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스포츠 채널 등의 요구가 괜한 걱정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스카이라이프나 위성DMB 등이 그랬던 것처럼 IPTV가 차별화된 신규 콘텐츠를 채우기보다 기존의 채널을 끌어오는 데만 매달린다면 IPTV 도입 취지를 무색케 할 겁니다. 방통위도 예전 방송위와 달리 SO들을 상대로 IPTV에 대한 불공정행위에만 유독 강력한 제재를 가하려 한다면 IPTV를 편애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겠지요.

SO들의 견제 때문인지 지난해 11월 17일 KT의 메가TV를 시작으로 IPTV가 실시간 방송을 시작한 지 5개월이 가까워지지만 증가세가 눈에 띄게 둔화되면서 연내 200만 명 가입자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메가TV 실시간 가입자는 15만 명을 넘어섰고, 올 1월 시작한 LG데이콤의 myLGtv와 SK브로드밴드의 브로드앤 IPTV는 각각 5만 명과 1만2천 명으로 집계돼 21만여 명을 헤아린다고 합니다. 주문형비디오(VOD) 가입자를 포함한 가입자도 현재 KT는 70만 명으로 실시간 서비스를 시작할 당시보다 12만 명이나 줄었고 SK브로드밴드는 78만 명으로 정체 국면을 맞고 있지요. LG데이콤만이 현재 11만 명으로 지난해 말보다 6만 명 늘어났을 뿐이라네요.

IPTV 관계자들은 "당장이라도 사업을 접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방송통신 융합서비스의 총아'라는 장밋빛 전망이 무색할 지경이지만, 몇 가지 복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전화와 초고속인터넷망을 결합한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입니다. 요즘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CF로 눈길을 모으는 KT의 유선통합 브랜드인 쿡(QOOK)이 대표적이지요. KT는 KTF와의 합병 승인으로 무선전화까지 포함한 쿼드러플플레이서비스(QPS)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케이블TV도 이동통신재판매(MVNO)로 이동통신시장에 진입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요. 그렇게 되면 우선 가격 경쟁력이 관건입니다. 방통위는 IPTV 요금 승인제를 완화할 방침이라는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장에는 득이 될지 몰라도 저가 경쟁의 악순환 고리가 그대로 재현될까봐 걱정입니다. 결국 콘텐츠에 관한 투자가 실종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사장 반대 투쟁으로 YTN 노조가 얻고 잃은 것

4월 1일 YTN 노조는 파업 10일 만에, 낙하산 사장 반대운동 259일 만에 노사협상을 타결하고 투쟁의 깃발을 내렸습니다. 9개항으로 이뤄진 노사 합의문은 △사측의 형사고소 취하 및 해고 등 징계관련 소송을 제외한 노조의 소송과 고발ㆍ고소 취하 △사장과 임직원에 대한 노조의 적대행위 종료 △공정방송 제도화를 위한 노사 공동 노력 △올 임금 동결 뒤 실무 협의 재개 △해고자 복직에 관해 법원 결정 준수 등을 담고 있지요. 이에 따라 법원도 이튿날 구속적부심을 열어 노종면 노조위원장을 조건부로 석방했습니다.

이를 두고 YTN 안팎에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에 앞장섰던 조합원 가운데 상당수는 해고자 복직에 관해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상 백기투항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언론운동진영에서도 낙하산 사장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고 경영진에 대한 적대행위를 종료한다는 것은 무장해제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아쉬워하고 있지요. 노 위원장을 풀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내줬다는 겁니다.

경영진 측에서나 보수 진영에서 이번 합의에 불만을 품고 있다거나 아쉬워한다는 말이 들려오지 않는 것을 보면 노조 측이 손해를 본 게 맞는 모양입니다. YTN 노조에 대해 질책을 서슴지 않았던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도 "잘됐다"고 평가했지요.

▲ 지난 달 23일 오전 10시 YTN 본사 1층 로비에서 열린 YTN 노조 총파업 결의대회 모습 ⓒPD저널
합의안만 놓고 보자면 현덕수 위원장에 이어 지난해 6월 말 당선된 박경석 위원장이 7월 말 구본홍 사장과 막후 협상을 통해 잠정 합의한 △사장은 보도에 관여하지 않고 경영에만 전념 △보도국장 선출제와 공방위 구성방식에 대해 노사 협의로 개선방안 마련 △사장 취임 후 1년 반 무렵 중간평가 △노조에 공정방송 관련 상근자 배치 △상대적으로 열악한 임금구조 개선 등보다 후퇴한 게 사실입니다. 이 합의안은 대의원대회에서 간발의 차이로 부결됐고 박 위원장 사퇴 후 노종면 위원장 집행부가 들어섰지요.

그러나 시간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평면적 비교는 무의미합니다. 노사 간 힘의 균형과 주변 여건의 변화 등을 따져봐야지요. 또 259일 동안 구 사장을 비롯한 사측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 노조는 언론자유 투쟁의 상징처럼 됐는데 합의안의 득실만을 따질 수는 없을 겁니다.

아무리 촛불이 옮겨 붙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투쟁 경험도 별로 없고 단결력도 공고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돼온 YTN 노조가 이 정도까지 탄탄한 대오를 유지해가며 끈질기게 싸울 줄은 누구도 몰랐지요. 구 사장과 함께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일했던 김인규 씨가 KBS 사장으로 입성하지 못했고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이나 연합뉴스 사장에도 대통령 측근이 앉지 못한 것도 YTN 노조 투쟁의 성과일 겁니다. 언론운동진영은 물론이고 국제 여론도 YTN에 호의적이었던 반면 이명박 정부는 노사문제를 이유로 10년 만에 기자를 구속한 정권이라는 오명을 썼지요.

그런데 법과 공권력과 규제기관은 사실상 회사 측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현행법상 사장 인사권 문제는 노사 교섭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노조의 단체행동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사측이 고발한 업무방해 혐의는 끝까지 노조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구 사장을 궁지로 몰아가던 노조는 법원이 사장의 출근을 막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힘이 빠져갔고, 구 사장은 방통위의 재승인 보류 이후 노조와 보도국장 선거에 합의하면서 승기를 잡았습니다. 사장의 인사권을 인정한 것은 노조가 사장의 지위를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결정적인 것은 경찰이 노조 간부들을 긴급체포한 데 이어 법원이 노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겁니다. 조합원들은 동료들을 구출하기 위해 회사 측과 서둘러 타협할 수밖에 없었지요.

노조 측에서 보자면 임금 협상을 빌미로 회사 측을 압박하기 위해 벌인 파업이 악재가 된 측면이 있습니다. 상복 출연, 생방송 중 피켓 시위 등을 벌이면서도 제작거부를 자제해온 노조는 파업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쥐고 징계 철회를 이끌어내려고 했는데, 경찰이 파업 하루 전 간부들을 긴급체포하고 검찰과 법원까지 가세함으로써 위원장 석방이라는 더 센 카드를 회사 측에 쥐어준 셈입니다.

노조가 다소 굴욕적일 수도 있는 합의안에 서명한 것을 두고 단지 '노종면 위원장 구하기'라고 볼 수만은 없을 겁니다. 재승인 보류와 파업 등을 거치면서 노사 할 것 없이 'YTN이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됐고, 보도채널과 종합편성채널이 신설될지도 모르는 미디어구도 재편 국면에서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도 팽배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여권은 노조가 밉고, 야권은 사측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정치권의 그 누구도 YTN의 입장을 배려할 생각이 없었던 듯합니다.

조합원 가운데 일부는 '회사가 망하는 한이 있어도 구본홍 씨를 사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구 사장을 물러나게 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현실론도 작용했고 오랜 투쟁에서 오는 피로감도 이겨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노종면 위원장은 구봉홍 씨를 낙하산으로 규정하고 그가 사장으로 있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YTN 노조가 예전처럼 사장 반대 투쟁을 지속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공정보도 투쟁에 주력하면서 해고자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하겠지요.

구 사장은 "회사가 정상화되면 해고자 복직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비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부 경영진은 "200일이 훨씬 넘게 심각한 불법행위가 이뤄지고 회사에 엄청난 손해를 끼쳤는데 누구 하나(노 위원장을 지칭)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고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정 인물을 제외한 복직안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노조 입장에서 볼 때 징계 철회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겠다는 것이나 크게 다를 바 없을 겁니다. 노조는 "그렇다면 경영진 가운데서도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지요.

현재 YTN의 주변 여건은 노사가 똘똘 뭉쳐도 헤쳐나가기 쉽지 않습니다. 구본홍 사장은 선임 직후 사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신방 겸영을 움직임을 막기 위해 타 방송사는 물론 다양한 오피니언 그룹들과도 연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박 위원장과의 잠정 합의안에는 "2012년 지상파 진출을 목표로 노력한다"는 문구도 들어 있습니다. 징계 문제라는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는 상태에서 과연 이런 다짐이나 합의가 실현될 수 있을까요.

회사 측은 노조를 상대로 이겼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노조가 많이 양보해 파국을 막았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쉽게 풀릴 수 있을 겁니다. 노조에 빚을 졌으니 통 크게 갚겠다고 한다면 보기 좋겠지요.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회사 측의 결단을 기대합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에서 제공했습니다. [이희용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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