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PD 부럽다고요? 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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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PD 부럽다고요? 실은...
TV 여행프로그램의 겉과 속 - '고군분투' 제작기
  • 김도영 기자
  • 승인 2009.04.14 22:4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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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이 사는 우리는 늘 어디론가 떠나길 꿈꾼다. 요즘같이 따스한 봄볕이 내리쬘 때면 너나없이 마음은 싱숭생숭해진다. 하지만 현실은 팍팍하고, 여행 한 번 떠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해외여행은 말할 나위 없다. 요동치는 환율에 마음을 다잡고 TV를 켜면, 그곳에는 남국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중세 유럽의 풍경이 펼쳐진다. 가보지 못한 미지의 그곳, 우리는 TV 여행프로그램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여유와 낭만이 가득한 여행, 매번 환상적인 여행지를 찾는 제작진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그런데 마냥 부러워할 일만도 아닌 것 같다. 카메라 너머 그들의 여행(처럼 보이는 일)은 여유,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장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현지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PD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빠듯한 촬영일정 가운데 카메라가 부서지거나 소매치기를 당하는 돌발 상황도 있다. 체류기간 내에 충분한 방송분량을 찍으려면 끊임없이 생각하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낯선 땅, 여행자의 입장에서 제작까지 책임져야 하는 일은 녹록치 않다. 모 통신업체의 임팩트 강한 티저광고가 말하듯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지 않는가. 넉넉지 않은 제작비에 빡빡한 해외촬영 일정은 늘 강행군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모르는 카메라 너머의 현실.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EBS <세계테마기행> 등 대표적인 TV 여행프로그램 제작진의 고군분투 제작기를 들어봤다.

▲ <걸어서 세계속으로> ⓒKBS
KBS 1TV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각 편마다 PD 1명이 제작 전 과정을 책임진다. “순수한 여행자의 시각으로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면서 기획, 촬영, 편집, 원고작성까지 다 해내야 한다. 비행시간을 포함해 열흘 남짓 되는 현지촬영 기간 동안 혼자서 1시간짜리 방송분량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PD들을 압박한다. 김찬호 CP(책임PD)는 “먼 데까지 와서 아파도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니 촬영에 대한 부담감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때문에 첫 촬영을 나가는 PD들은 대부분 한 번씩 병치레를 한다. 사전답사도 없이 현지에서 혼자 촬영 일정을 짜고 방송을 만들어야한다는 부담감은 꽤 큰 것이다. 김 CP는 지난 2007년 과테말라의 안티구아로 첫 촬영을 떠났을 때, 일정을 하루 남기고 어깨에 담이 걸렸다. 그는 힘들게 한의원을 찾아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은 뒤에야 겨우 촬영을 마쳤다.

정신적 압박만큼 몸도 피곤하다. 1시간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3분짜리 아이템이 20개 정도 있어야 한다. 빠듯한 촬영일정에 이를 맞추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2~3시간 전까지 촬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다른 프로그램보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체력 소모도 크다. 현지에서는 장비를 챙기는 것부터 촬영, 상황 유도, 대본을 위한 취재까지 모두 혼자 해야 한다.

▲ <걸어서 세계속으로> 로마 편을 촬영하고 있는 최필곤 KBS PD
이번 봄 개편에 ‘걸세’에서 <역사추적>으로 자리를 옮긴 최필곤 PD는 쿠바 촬영 당시 같은 소매치기에게 두 번이나 당했다. “아무래도 혼자서 촬영하다 보니 카메라에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다른 곳에 소홀하기 마련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최 PD는 그 날 이후 해외촬영을 가면 하루치 돈을 여러 지갑에 분산해 넣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완성본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홀로 져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최 PD는 “화면, 편집, 대본까지 PD가 숨을 여지가 없다. 그러다보니 더 많이 긴장하고 고참 PD들도 곤혹스러워한다”고 말했다. 해외여행이 대중화 되다보니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그는 “예전에는 제작진이 시청자들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특정지역에 대한 여행고수들도 많은데다, 다양한 층의 시청자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털어놨다.

혼자가 아니라도 고되기는 마찬가지다. EBS <세계테마기행>(이하 테마기행)은 PD, 카메라맨, 출연자가 동행한다. PD는 출발 전 100여명이 넘는 사람을 접촉해 출연자를 섭외하고, 가장 싼 항공권을 알아봐야 한다. 남미, 아프리카 등 오지 촬영이 많은 ‘테마기행’ PD는 현지에서 계속되는 돌발 상황에도 대처해야 한다.

▲ <세계테마기행> ⓒEBS
최근 볼리비아까지 남미만 3번을 다녀온 탁재형 PD(김진혁공작소)는 브라질 이구아수 폭포 주변에서 물을 뒤집어써 카메라가 침수된 경험이 있다. 지형이 험한 지역에서는 촬영하던 카메라맨이 넘어져 촬영장비가 완전히 부서진 적도 있다. 비행 경유지에서 장비를 실은 짐이 하루 늦게 도착해 급하게 촬영 일정을 조정하기도 했다.

남미는 특히 시차(12시간)가 크고 고산지대가 많아 가장 ‘괴로운’ 촬영지로 꼽힌다. 높은 온도 때문에 탈진의 위험도 높다. 탁 PD는 “더운 곳에서 계속 태양을 쬐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래도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멍한 상태에서 버틴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지대에서 자외선을 쬐면 피부에도 무리가 간다”며 “3시간 동안 모자를 벗고 있다 두피가 짓무른 적도 있다”고 했다.

제작진은 먼 거리를 이동해도 비행기를 타는 일이 거의 없다. “공항에 가고, 수속을 기다리면 아무것도 촬영하지 못하고 시간을 버려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달리고 또 달리면서 도로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는다. 탁재형 PD는 브라질 촬영 때 23시간 동안 버스를 탄 적도 있다. 보통 해가 지면 촬영이 끝나지만, 고립된 트래킹 지역에 들어가게 되면 낮과 밤, 촬영과 휴식의 구분도 없어진다.

김봉렬 EBS CP의 말대로 “여행프로그램은 쉽고 단순해 보이지만 제작 준비부터 만드는 과정까지 공이 들어가는 힘든 작업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가보지 못한 곳을 대신 보여준다는 여행프로그램의 매력에 오늘도 짐을 꾸린다. 촬영 때문에 장시간 차량으로만 이동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탁재형 PD는 “피곤하다고 쉴 수 있으면 그냥 여행이겠죠.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좋은 여행 장면을 보여주는 게 직업이니까 어쩔 수 없죠”라고 답했다.

세계 각국의 ‘도시’를 소개하는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지난 2005년부터 방송된 프로그램이다. 여행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인 만큼, 각 PD만의 독특한 시선이 반영된 여행 프로그램을 표방한다. ‘극단적 저비용 프로그램’을 지향하는 만큼 촬영은 늘 강행군이지만 “3대가 복을 받아야만 할 수 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KBS 교양·기획제작국 PD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KBS 1TV에서 방송되며, 지금은 가수 김C가 내레이션을 맡고 있다.

지난해 2월 첫 전파를 탄 EBS <세계테마기행>은 ‘여행 코디네이터’를 내세워 그의 시점으로 한 나라를 깊이 있게 조명하는 프로그램이다. 매주 월~목 오후 8시 50분에 40분씩 방송된다. 지금까지 박재동 화백, 가수 이상은, 영화배우 오광록 등이 여행에 동참했다. 이민수 PD는 “여행 코디네이터가 그 나라에 가고 싶다는 동기가 충만하고, PD와 궁합이 잘 맞은 프로그램이 대체로 반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출연자들은 항상 촬영하면서 “PD가 너무 혹사 시킨다”고 투덜대지만, 방송 후엔 “다음에 또 언제 가냐”고 물어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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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리 2009-04-22 08:47:13
즐겨보는 프로~ 재미있어요. 타 여행프로는 조금 따분한 감이 있는데 테마여행은 정말 대리만족에서 벗어나 가고싶게 만들어서 곤란하다는..
앞으로도 더욱 기대되는 프로~

한이슬 2009-04-21 17:44:12
솔직히무슨말인지잘모름....;;;;;;;;;;;;;;;;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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