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제작기- 포항MBC 창사 29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우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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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제작기- 포항MBC 창사 29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우산국>
우산국, 즐거운 상상
  • 승인 2000.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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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무모한 상상
|contsmark1|역사는 상상이다. 그것도 즐거운 상상이다. 이건 나의 믿음이다. 우리 앞에 10장의 카드가 있다. 그 중에서 한 두 장만 알고 나머지는 감춰진 카드. 이게 역사가 아닐까? 즐거운 퍼즐 맞추기 게임. 어쨌든 나의 우산국은 이렇게 시작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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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8|울릉군 을릉읍 독도리
|contsmark9|독도의 정확한 행정 지명은 울릉군 을릉읍 독도리다.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 섬인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개의 섬을 별개로 생각한다. 독도는 역사 속에서 일관되게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한일 영토 분쟁의 핵심으로 독도가 등장하면서 아이러니 하게도 울릉도는 점점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고 있다. 독도가 우리의 땅일 수 있는 건 울릉도가 있기 때문이고 울릉도는 우산국이라는 고대 국가를 통해 우리 민족의 역사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럼 대체 우산국은 어떤 나라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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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6|첫 번째 퍼즐
|contsmark17|“지증왕 13년 이사부가 나무사자를 만들어가서 위협하니 우산국 사람들이 무서워서 항복했다.”
|contsmark18|서기 512년의 일이다. 삼국사기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이 몇 줄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산국의 전부이다. 역사 속으로 등장하는 그 순간 멸망해버린 고대 국가. 여기서 나의 호기심과 상상이 시작됐다. 우산국이 잃어버린 우리의 해상문화를 대변하지는 않을까? 독도의 영토분쟁에 있어서 핵심적인 키워드가 아닐까? 이사부의 정벌 이후의 우산국은 어떠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들이 나를 1년이라는 시간동안 동해 바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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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5|퍼즐은 풀리기 위해서 존재한다
|contsmark26|퍼즐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대략의 윤곽이 잡혔다. 자세한 그림은 아니지만 어렴풋한 실루엣이 보였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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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9|첫째, 우산국의 기원은 한반도이다. 기원전 무동력선을 사용하던 시기의 고대 뱃길을 알아보기 위해서 한국 해양연구소에서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실험을 해본 결과, 우리나라의 함경도 지방과 경상도 지방에서 울릉도로 이어지는 해류와 바람을 확인했다. 그 가능성의 범주에 옥저 동예 진한 등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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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2|둘째, 우산국의 시작은 청동기 시대이다. 그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것은 행운이었다. 학계에 새롭게 보고된 고인돌의 확인뿐만 아니라, 영남대학교 박물관과 공동으로 실시한 울릉도 사상 최초의 시굴조사에서 국내 고고학 최초의 거석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2000년 6월, 흥분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인디아나 존스가 고대 유물을 발굴할 때의 기분이 아마 이런 것이리라. 높이 3미터의 돌기둥 14개가 3열로 서있고 그 전면 중간엔 둥글게 홈을 파서 다듬은 돌이 있는 모습이었다. 국내의 거석 문화는 고인돌과 입석이다. 이런 열석은 아직 한번도 보고된 적이 없는 것이었다. 이 거석의 비밀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문화재청의 재발굴이 있고 난 뒤에 분명한 사실이 가려지겠지만 적어도 우산국 특유의 문화를 확인하는 순간이었고, 또 고대 우산국의 존재를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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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5|셋째, 우산국은 동해의 심장이었다. 동해의 해류는 울릉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동해의 망망대해 한가운데 우산국이 존재한다. 고대의 모든 뱃길이 울릉도를 중심으로 생겼을 것이란 상상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역사시대에도 우산국의 위치가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사부의 정벌로 다시 돌아 가야한다. 왜 신라는 512년경 당대 최고의 장군 이사부와 최정예 부대인 그의 군대를 두 번에 걸쳐 우산국으로 출병시킨 것일까? 첫 번째 정벌은 실패였고 두 번째 정벌은 나무사자로 알려진 어떤 신식 무기를 만들어서 성공했다. 이는 우산국이 동해 해상력의 확보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백제가 장악한 서남해의 해상력과 고구려 일본의 동해 해상력을 누르기 위한 삼국통일 전쟁의 핵심에 우산국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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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8|넷째, 우산국은 이사부의 정벌로 멸망하지 않았다. 우산국은 이사부의 정벌을 전후한 6세기부터 오히려 급속히 발전한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대형 고분이다. 울릉도 특유의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 석축고분들은 큰 것은 15미터가 넘는다. 본격적인 국가 체제가 더욱 강화된 것이다. 또한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의 파편을 경주 문화재연구소에서 복원해 본 결과 신라계의 동관으로 밝혀졌다. 이는 이사부의 정벌이 신라와 우산국과의 동맹관계를 확립하기 위한 군사적 시위로 해석할 수 있게 해준다.
|contsmark39|그리고 고려사에 등장하는 우산국 관련 기록에는 우산국의 사신이 올 때 내조(내조)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내조라는 표현은 국가의 사신이 올 때 쓰는 표현이다. 즉 우산국은 신라의 멸망 후 고려시대까지 제후국으로 존재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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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6|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contsmark47|프로그램이 전파를 타고 난 뒤 ‘이 달의 좋은 프로그램’ 상을 탔다. 나의 섣부른 상상이 불러온 1년의 기나긴 제작이 끝난 뒤에 남는 건 아쉬움과 부끄러움이다. 고대사를 방송의 소재로 삼는 그 순간부터 제작자는 진실과 상상의 경계를 곡예사처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실은 최대한 많이 진실의 경계에 발을 들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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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0|<우산국>의 시작은 상상이었지만 그 끝은 알토란처럼 달려 올라오는 진실로 맺고 싶은 것이 제작자의 욕심이다. 버려진 변방의 비주류 역사를 프로그램에 담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발로 뛰는 것만이 최고의 미덕이라는 사실을 믿고 전국의 연구소에서 가능한 실험은 모두 해야했다. 해양연구소의 해류 시뮬레이션 실험, 경주문화재연구소의 금동관 파편 분석실험, 한국자원연구소의 토기 성분 분석 실험, 울릉도 고분의 정확한 실측과 재조사, 그리고 울릉도 현지의 시굴조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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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7|절반의 성공과 실패
|contsmark58|우산국에 대한 나의 의문이 풀리면 풀릴수록 새로운 의문과 욕심이 생겼다. 우산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여러 섬나라들을 함께 비교해서 섬나라 특유의 국가 발전체계를 알 수는 없을까? 우리 나라의 해양역사를 새롭게 복원할 수는 없을까?
|contsmark59|이런 의욕으로 대마도를 거쳐 제주도와 오키나와 그리고 울릉도를 오가는 취재가 시작됐다. 결과는 실패였다. 너무 많은 주제와 내용으로 피상적인 얘기만 떠벌린 결과가 됐다.
|contsmark60|그래도 우산국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기 위해 발버둥쳤던 1년은 내게 참으로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겪었던 절반의 실패를 뒤에 누군가가 곱절의 성공으로 담아내고 동해의 주인으로 우리나라가 다시 서는 그 날을 상상해본다. 상상은 언제나 실천과 성공을 내포한 씨앗이란 걸 믿기 때문에.
|contsmark61|(방송 2000년 8월25일 연출 김욱한, 기획 이보근, 구성 윤지희, 촬영 노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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