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의 탈정치화 “MB는 재미없어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작진 “코믹 캐릭터로는 부적절”…낮은 지지율도 한몫

MB시대, MB가 없는 코미디 프로그램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역대 전직 대통령 성대모사는 해마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단골 고객이 돼 왔다. 군부독재시절의 엄숙함이 지나기도 전 KBS2 <유머1번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서 백발의 김형곤은 기성 정치인들을 비꼬았다. “잘돼야 할 텐데” “잘될 턱이 있나”하며 턱을 두 번 치면 온 국민이 깔깔대고 웃으며 턱을 두 번씩 따라 치곤했다. 

최양락은 KBS2 <쇼! 비디오자키> ‘네로 25시’에서 간드러지는 말투로 “오, 신이시여!”를 외쳐댔다. 그 흔한 성대모사도 없었지만 ‘네로 25시’는 독재자 네로와 날라리아, 당돌리우스, 침묵리우스 등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통해 당시의 정치현실을 비틀며 사람들의 배꼽을 잡았다. 이외에도 ‘변방의 북소리’ ‘동작그만’ ‘동궁마마는 아무도 못말려’ ‘내일은 챔피언’ 등의 코너들은 한국의 지도자, 정부, 군대, 기득권을 포괄하는 은밀한 메타포(metaphor)를 함축하고 있었기에 풍자의 묘미를 한껏 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집권 2년 차를 맞이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흉내 내는 코미디언들을 TV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왜 그럴까? MB가 무서워서? 아니면 재미가 없어서? MB 시대의 엄숙주의가 낳은 결과물일까? 코미디언, 방송작가, PD, 시민단체 등 각계에서 털어놓은 ‘MB시대’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MB가 빠진 이유에 대해 들어보자. <편집자주>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풍자개그가 사라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지난 2007년 시사풍자개그로 명성을 쌓았던 KBS 2TV 〈폭소클럽2〉에서 ‘응급시사, 서민이를 살려주세요’, ‘뉴스야 놀자’, ‘기호 0번 박 후보’ 등을 통해 풍자코미디를 선보인 적이 있다. 특히 ‘응급시사, 서민이를 살려주세요’는 17대 대통령 선거에 관련된 인물들을 모티브로 환자 ‘한서민’을 구하기 위한 ‘한국병원’ 의사들의 허무맹랑한 진단을 다뤘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촛불정국이 지나고 이 대통령은 수많은 말들을 쏟아냈지만 이를 코미디로 만드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이 같은 정치 코미디 부재와 관련, 일각에선 최근 일어나고 있는 언론인 구속사태 등과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취임 초기부터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막 가자는 거지요”라는 등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도가 되며 풍자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말실수 논란은 많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나서서 풍자를 하는 곳은 없었다.

▲ KBS 2TV <폭소클럽> '시사야 놀자'에 출연한 노정렬 ⓒKBS
코미디언 노정렬씨는 “지금 정권이 합법을 가장해 언론인을 구속하고 압살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며 “동료들이 끌려가는 상황에서 어떤 PD와 작가들이 풍자개그를 쉽게 하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풍자개그로 비판을 받는 자는 오히려 측은지심이 들어 호감도가 오히려 올라가게 된다”며 “이 정권이 너무 여유가 없는 게 근본적인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한반도 대운하, 영어 몰입교육 그리고 최근 닌텐도 게임기 발언에 이르기까지 네티즌들은 코믹하고 해학적인 패러디 물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것이 개그의 소재로 이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일각에선 제작진들의 자기검열이 작동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은 “MB가 예능의 금기가 되다시피 한 것은 방송 제작자들을 움츠리게 하는 딕테이터(독재자) 컷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는 사회적 병리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송지혜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부장 역시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정치풍자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없어진 점은 대통령의 호불호를 떠나 아쉬움이 있다”며 “최근 진행자 교체라든지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출연진이나 제작진들이 풍자 코미디를 하기에 더욱 어렵게 만들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 MBC <코미디하우스> '3자 토론' ⓒMBC
하지만 대부분의 코미디언과 제작진들은 시각차를 달리했다. 〈폭소클럽〉 ‘응급시사’에서 이명박 대통령 성대모사를 했던 김학도는 “MB 캐릭터 보다는 받쳐주는 캐릭터들이 오히려 더 튀기 때문에 연기자 입장에서는 MB 성대모사를 해서 크게 재미 볼만한 것이 없다”며 “이후에도 라디오에서 몇 번이나 보여 줬는데 그렇게 재미있어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MB가 지지도가 높았을 당시에는 조금만 흉내 내도 반가워했는데 촛불정국 이후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하면서 그 성대모사를 듣기만 해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제작진들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김석현 KBS 2TV 〈개그콘서트〉 PD는 “(아이템의) 제약은 없다. 한때 (시사개그가) 활성화 된 적도 있다. 여러 차례 시도도 했고, 알게 모르게 노력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PD는 “일반 시청자들은 3김 시대 이래로 정치에 대해 점점 관심이 없어지고 있다”며 “정치 자체를 재미있어 하기 보다는 문화나 다른 분야 얘기를 좋아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개그콘서트〉 ‘봉숭아 학당’에서 MB캐릭터가 퇴출된 것에 대해서도 김 PD는 “연기자 잘못일수도 있고, 내 잘못일 수도 있겠지만 절대적으로 방청객 반응이 별로였기 때문”이라며 “연기자들이 시사 관련 아이템을 내지만 재미가 없어 선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OBS 〈코미디 多, 웃자GO〉를 연출하는 유진영 PD는 MB라는 캐릭터에 대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해 사람들의 동질감을 샀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본인 스스로가 너무 완벽해 보이려고 하다보니 빈틈도 없어 재미가 없다”면서 “풍자에서 느껴지는 캐릭터를 잡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풍자 코미디의 부재는 최근 배우들과 작가진의 재생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미디하우스〉, 〈순풍 산부인과〉 등을 집필한 김동용 작가(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는 “풍자 코미디는 연기의 정교함까지 필요로 하는 어려운 장르”라며 “풍자 코미디가 방송가에서 사라지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작가, PD, 연기자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요즘 후배들을 보면 코미디를 입으로 하는 것으로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탓에 코미디 작가, PD들도 시사풍자와 같이 어려운 코미디를 하는 것에 인색하다. 그러다보니 중·장년층의 공감대를 살 수 있는 코미디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수신료를 징수하는 KBS는 의무적으로라도 서민적 정서가 녹아있는 풍자 코미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송3사가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것에 벗어나서 슬랩스틱, 콩트, 풍자 등 다양한 장르의 코미디를 시도해 시청자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김학도 “시사풍자 시장은 황금어장”

예전부터 시사풍자 시장에 와 있는 몇 명 안 되는 사람으로서 이 곳을 황금어장이라고 생각한다. 개척하면 할수록 할 수 있는 게 많다. 하지만 도전을 같이 할 만한 PD가 없고, ‘저랑 같이 하실래요’하는 연기자도 없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시사를 꿰뚫고 있어야 하고, 어린 나이에는 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주로 교양 프로그램에서 시사를 다뤘는데 작가와 충분히 협의한 후에 특정 정당에 치우치지 않게 하면서도 나름의 웃음을 줬다고 생각한다.  이런 풍자개그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기쁘다. 

  김한석 “표현의 자유 넘쳐도 의지 부족”

우리세대의 코미디는 기승전결이 있다. 왜 웃기는 지에 대한 스토리가 녹아 있다. 5공화국 시절에 나왔던 ‘네로25시’ ‘변방의 북소리’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에는 소재의 제약은 많았지만, 사회 풍자개그는 넘쳐났다. 이런 코미디들이 죽어버린 것은 논리적인 웃음이 지루하다고 결론지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은 표현의 자유는 넘쳐나는데 정작 이를 다루고자 하는 의지는 부족한 것이다. 이는 코미디언의 연기력까지 죽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