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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보 지령 200호를 맞으며

지령200호를 준비하면서 지난 호들을 일별해보았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가다보니 우리의 지난 세월들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었지만 그런 가운데도 괄목할 만한 성숙과 변모를 새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열악한 환경에서 프로그램 제작에 몰두하면서도 매몰되지 않고 깨어 있으려는 부단한 노력들이 때로는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표현되고, 때로는 부조리한 방송 환경에 대한 분노로 메아리치면서 우리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또한 안으로 서로의 자성과 경각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을 읽으면서 우리의 그간의 온축도 만만치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기쁨이자 긍지였습니다.우리의 성찰과 고뇌의 심도는 어디에 내놓아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였고 정서와 감성의 세련을 도모하는 섬세한 담론들도 호를 거듭하면서 그 격조를 더해감이 확연히 눈에 띄였습니다. 회보가 지령 200호를 맞으면서 단순한 횟수의 축적만이 아닌, 그야말로 우리 프로듀서 집단이 내공을 쌓고 성숙을 꾀하는 장(場)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왔다고 자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의 이만한 회보를 갖기까지 그간 보이지 않게 노력해온 숱한 선배들과 편집진의 노고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숙연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지령 200호를 맞는 회보의 성과가 우리에게 우리 자신들에 대한 낙관의 근거임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의 현실은 아직도 우리의 그러한 낙관이 자족적이고 섣부른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를 일깨웁니다. ‘더 나은 방송’을 위한 우리의 진지한 모색이 때로는 가열차기 그지없는 투쟁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냉혹한 자기 비판에 결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었지만, 아직도 우리의 방송 환경은 척결해야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방송 또한 그 집요한 ‘질(質)’의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세간에서 프로듀서가 선망의 직종이되 불신의 너울 또한 우리를 참으로 불편하게 함을 다 아실 것입니다.외부로부터의 힐난과 질책이 두렵거나 원망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따가운 질책이야말로 대중 문화의 창달자로서의 우리의 역할에 대한 지속적인 기대의 표현이라고 해석합니다. 오히려 안타까운 것은 우리 방송의 고질적 병폐들을 둘러싼 공방의 버전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이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역사의 진보가 그만큼 어렵고 더딘 까닭이겠지요. 하지만 반성도 버릇이 되면 약발이 없어지는 법이라고들 하더군요. 지령 200호를 맞으면서 꾸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 방송을 에워싼 공방의 버전을 업그레이드하는 거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방송이 달라져야하고 우리프로듀서들의 의식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새삼스레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그 업그레이드를 주도하는 역할은 당연히 우리 회보의 몫이겠지요.안팍의 비판에 대해서는 아무리 혹독해도 기꺼이 귀를 열고 지면을 할애하겠습니다. 적어도 프로듀서가 오만한 권력의 흉내를 낸다는 혐의는 벗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회보를 반성적 담론의 장으로 일관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적이 사라진 시대라고 쉽게들 일컫는 이들도 있으나 아직 우리에게는 싸워야할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분방한 상상력을 제약하고 통제하려는 어떠한 세력이나 시도도 우리에게는 아직은 적입니다. 그러한 적과의 싸움에서 회보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일 겁니다. 우리 프로듀서들이 회보를 보면서 희망의 징후를 읽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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