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통제에 네티즌 ‘무의식적 자기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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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통제에 네티즌 ‘무의식적 자기검열’
[긴급토론회] ③ '사이버모욕죄, 표현의 자유 사망선고'
  • 김도영 기자
  • 승인 2009.04.28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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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들은 정부 풍자만화를 그린 작가가 잡혀가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면서 스스로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정부정책 비판에 몸을 사린다. 무의식적인 자기검열. 헌법으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지난 27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회관에서는 <MB정권의 언론탄압과 민주주의의 위기> 세 번째 순서로 ‘사이버 모욕죄, 표현의 자유 사망선고’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발제를 맡은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발생한 미네르바 사건 등으로 전반적인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가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인터넷 실명제 등 실제로는 일상의 자유보다 못한 상황”이라며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과 경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동원한 표현의 자유 침해가 더욱 심해졌다”고 비판했다.

▲ 동아투위, 새언론포럼, 한국PD연합회 등은 'MB정권의 언론탄압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은 지난 27일 오후 정동 프란체스코회관에서 열린 3번째 순서 '사이버모욕죄, 표현의 자유 사망선고' 토론회. ⓒPD저널
미국산 소고기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검찰은 “인터넷 괴담에 대해 형사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튿날 법무부는 ‘광우병 괴담 10문 10답’을 발표했다. 장여경 활동가는 “이는 국민들에게 기준에서 어긋날 경우 처벌 가능성이 있는 ‘금지글 목록’이 제시된 것과 다름없다”며 “엄밀한 법률적 의미에서 검열로 보기 어렵지만, 발표가 미친 효과는 암시만으로 충분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정치적 표현에 대해 인터넷 게시물에서 위축감이 확산되고 있다”며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위축’을 표현의 자유 침해에 관한 문제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지난 2002년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등에 위헌 확인을 하면서 “불명확한 규범에 의한 표현의 자유 규제는 헌법상 보호받는 표현에 대한 위축적 효과를 수반하고, 그로 인해 다양한 의견, 견해, 사상의 표출을 가능케 하여 이러한 표현들이 상호 검증을 거치도록 한다는 표현의 자유의 본래 기능을 상실케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방통심의위, 정부 뜻대로 ‘관영 검열’”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PD저널
인터넷 게시물 삭제를 권고하고 기준을 제시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장여경 활동가는 “방통심의위는 민간에 의한 인터넷, 방송의 독립 심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행정부 의사를 반영하는 관영 검열을 하고 있다”며 지난해 5월 다음 카페에 이명박 대통령을 ‘머리용량 2MB’ 등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언어 순화와 과장된 표현의 자제 권고’한 사례 등을 꼽았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는 “정치적 안배로 결정되는 방통심의위의 구성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 이사는 “이는 처음부터 방통심의위의 편향적 심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내용규제를 심의하는 기구의 인적구성이 정치적 안배로 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미네르바 박대성 씨에게 허위사실 유포죄를 적용한 점을 주목하며 “언론매체나 학자, 여론 지도층의 주장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엄격하게 사실여부를 따져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인터넷 게시판은 누구나 제약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고재열 <시사인> 기자도 “네티즌의 글에 기존 언론사보다 엄격한 심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학자가 논문에 발표한 내용보다, 학생이 화장실에 낙서한 내용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묻는 꼴”이라고 말했다.

“파워블로거는 펀치보다 맷집 필요”

이날 토론회에는 인터넷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블로거들도 참석해 경험을 토대로 인터넷 통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3년 동안 블로그를 통해 ‘쓰레기 시멘트’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최병성 목사는 한국양회공업협회의 신고에 따라 지난 16일 방통심의위로부터 게시물을 삭제 당했다. 방통심의위는 양회공업협회가 명예훼손 혐의로 신고한 15개 기사 가운에 10개 문제없음, 1개 각하, 4개 삭제 결정을 내렸다.

최 목사는 “4차례의 심의과정을 지켜보며 방통심의위 심의가 신고자의 신고 내용만을 근거로 판단하는 불공정성과 편파성의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인터넷 기사에 대한 명예훼손 신고의 경우, 글이 삭제되기 전까지 명예훼손으로 신고 당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어 해명 기회가 없다”면서 “신고자가 거짓으로 자료를 꾸며 제출해도 해명 절차가 없기 때문에 방통심의위는 거짓자료를 근거로 게시물의 진위여부를 판단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 고재열 <시사인> 기자 ⓒPD저널
블로그 ‘독설닷컴’을 운영하고 있는 고재열 기자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청와대의 항의전화,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정보도 요청 등을 겪었다”며 “시사주간지 기자 경험이 있어 이런 압력을 소화했지만, 일반 블로거라면 견딜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 기자는 “파워블로거가 되기 위해서는 펀치보다 맷집이 필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터넷 통제가 ‘시즌3’로 접어드는 길목에 있는 것 같다”며 “‘시즌1’은 촛불정국에서 정부가 인터넷의 위험성을 깨달았고, ‘시즌2’에서는 공안정국에서 정부의 통제가 본격화됐다면, ‘시즌3’은 사이버모욕죄 도입 등을 통해 이를 법적, 제도화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블로거 ‘BJ라쿤’ 나동혁씨는 “사이버모욕죄 발의만으로도 그동안 올린 글에 근거자료를 링크하는 작업을 하게 됐다”며 “인터넷 게시물은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생각이 대부분인데, 증거자료를 제시해야 한다는 자체가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제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학술연구교수는 “사이버모욕죄 등 신설 독소조항도 문제지만, 인터넷 실명제 등 기존 제도의 문제점도 지적해야 한다”며 시민사회의 능동적인 문제제기를 주문했다.

송 교수는 “최근 ‘유튜브’가 실명제를 거부한 것은 전 세계적 망신”이라며 “인터넷 실명제가 유명무실한 통제기제라는 사실이 드러난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튜브의 결정문을 보면 ‘표현의 자유’라는 당위적 내용보다 다원적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면서 “인터넷 통제 움직임은 다원화된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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