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사업, 신용카드 긁고 세금으로 메우는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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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BS <시사기획 쌈> ‘황금알 민자사업’ 김태형 기자

지난 2004년 개통된 서울 서초구의 우면산 터널. 민자사업으로 건설된 이 터널은 2.4km의 짧은 거리지만 통행료가 2000원이다. 비싼 통행료 때문인지 구간은 늘 한산하지만, 관리·감독권을 갖고 있는 우면산인프라웨이(주)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통행수입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서울시가 보전해주는 ‘최소운영수입보장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미 지난해까지 400억원 가까운 금액을 지원했고, 향후 20년간 2880억원 이상을 지원해야한다는 예상치도 있다. 모두 국민 세금이다.

이처럼 민자사업으로 지어진 사회간접자본에 재정지원금이 투입되는 것은 우면산 터널만의 얘기가 아니다. 전국 곳곳의 민자사업으로 건설된 교량, 도로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KBS 탐사보도팀은 지난해 12월부터 100여일 동안 ‘세금 먹는 하마’가 된 민자사업의 구조적 문제를 심층 취재했다. 지난 21일까지 2주에 걸쳐 방송된 KBS 1TV <시사기획 쌈> ‘황금알 민자사업’(취재·연출 김태형 정수영 정정훈)의 김태형 기자를 만나 취재 뒷얘기를 들었다.

▲ 김태형 KBS 탐사보도팀 기자. ⓒPD저널

- 취재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자료를 검토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막상 처음 취재하려니 막막해 회계감사보고서부터 다 훑었다. 각 사업장마다 짧게는 3~4년, 길게는 6~7년치 감사보고서를 검토했다. 사업장이 여러 개다 보니 수천 페이지 분량이다. 처음 한 달간은 전화 한 번 하지 않고 자료만 뒤졌다. 협약서를 입수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청구 소송을 해도 공공기관이 유리하기 때문에 비공개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개통을 앞둔 지하철 9호선은 협약서 공개를 거부했다. 인터뷰도 잘 안하려고 해 힘들었다. 막상 인터뷰를 해도 동문서답하거나 ‘전문적인 내용이라 잘 모르실텐데…’라는 식의 대응이 많아 사전 취재를 완벽히 하고 만나야 했다.”

- 집중 보도한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는 자사 홈페이지에 ‘<시사기획 쌈> 보도에 대한 입장’을 올리기도 했는데.
“맥쿼리의 비중이 커진 것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 아니다. 국내 민자사업의 선구자이다 보니 집중적으로 영업 전략 등을 살펴보게 됐다. 맥쿼리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은 대부분 방송된 내용이다. KBS 보도가 잘못됐다는 말은 없다. 그 가운데 ‘관련 세법에서는 후순위 대출의 이자율 한도 9%를 제한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은 일반적 관계에 해당된다. 하지만 보도 내용은 맥쿼리처럼 지배사와 피지배사간 대출을 문제 삼은 것이다. 방송된 내용은 모두 사실이고, 해당 회사로부터 직접적인 항의를 받은 적도 없다. 또 대부분의 자료는 맥쿼리에서 나온 것이다. 1부 부제목의 ‘세금 방패(Tax Shield)’도 맥쿼리 자료에 있는 표현이다.”

- 상식적으로 정부나 지자체측에 불리한 계약인데, 계속 민자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는.
“당장 돈 들이지 않고 도로나 다리를 지을 수 있으니 지자체 입장에선 매력적인 사업이다. 신용카드로 도로나 다리를 놓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또 추진부터 완공까지는 4~5년이 소요되기 때문에 정작 골치 아픈 건 후임 단체장이다. 취재를 하다 보니 지방 공무원들은 순환근무 등으로 민자사업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느낌도 받았다. 개인적인 생각은 도로망의 발달로 웬만한 곳에는 포장도로나 다리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민자사업으로 수익 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본다.”

- 직접 세금을 내는 입장인데 취재하면서 기분이 어땠나.
“화도 났지만 그보다 세금에 대한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국민들은 엉뚱한 곳에 세금을 쓰고 낭비 하는데 별로 분노하지 않는 것 같다. 전에 취재차 핀란드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은 도둑보다 세금을 제대로 안 낸 사람을 경멸한다고 하더라. 도둑은 한 가정에만 피해를 주지만, 탈세자는 여러 가정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란다. 납세의 의무를 갖고 있으니, 권리도 요구할 수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학교에서도 세금을 내야한다는 교육만 받았지, 납세자의 권리에 대해 배운 기억이 없다.”

- 탐사보도팀이 오랜만에 올린 개가인데 생각보다 반향이 크지 않았다.
“방송 나가기 전부터 내부에서 ‘내용이 너무 어려운 거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또 세금 문제는 먹거리 등과 비교해 시청률이 높은 아이템이 아니다. 하지만 시민단체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은 좀 아쉽다. 홈페이지를 보다 어느 시청자가 ‘KBS가 미쳤나보다. 이런 보도를 할 리가 없는데 음모가 있는 거 야니냐’고 적은 댓글을 봤다. KBS 보도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것 같아 씁쓸했다. 탐사보도팀은 지난해와 비교해 절반 이하로 인력이 줄었지만, 더 열심히 취재하고 있다. KBS 탐사보도팀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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