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있는 그대로의 진실만 보도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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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용산참사’ 유가족 권명숙 씨

“이렇게 취재해가면 뭐해, 정작 언론에 하나도 소개가 안 되는데. 하는 건 문제가 아니예요. 취재해 가면 그대로 반영돼야 하는 거 아닌가요?”

따끔한 ‘질책’으로 인터뷰는 시작됐다. 지난 23일, ‘용산참사’ 희생자들이 안치돼 있는 서울 순천향병원 영안실에서 만난 권명숙(고 이성수씨의 부인) 씨는 언론에 대한 원망부터 토해냈다.

“전엔 언론보도가 거의 진실인 줄 알았죠. 그런데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아니란 걸 알았어요.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뀐 상황에 대해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그대로 내보내잖아요. 진실을 얘기해도 조중동 같은 데선 정반대로 나오고. 있는 그대로 내보내는 게 언론 아닌가요? 이제 언론, 못 믿겠습니다.”

▲ 권명숙 씨 ⓒPD저널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다. 참사 1주일, 한 달, 그리고 100일까지…. 시간은 흘렀지만,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희생자들의 장례는 치르지도 못했다. 유가족들은 병원 영안실에서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참사의 진실 역시 밝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희생자들과 함께 망루에 올라갔던 사람들은 구속됐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권 씨는 “‘용산참사’는 말 그대로 ‘학살’”이라며 “그런데도 언론에서 제대로 보도를 안 해주니 많은 국민들이 지금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답답해했다.

언론에서 제대로 보도해주지 않으니 유가족들은 발로 뛸 수밖에 없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이 지난 100일 동안 이어졌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다니고 또 다녔다. 지난 22일부터는 용산 재개발 4구역에 마련된 분향소 앞에서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비록 경찰이 막아서고 있지만, 청와대 앞 1인 시위도 계속하고 있다.

권 씨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면서도 “진실규명이 이뤄질 때까진 이 투쟁을 접지 않을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투쟁이 뭔지 아무것도 모르던, 평범한 주부” 권 씨는 어느새 ‘투사’가 돼있었다. 그는 “다른 미망인들 모두 마찬가지”라며 “참혹하게 난도질당한 남편의 시신을 보면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정부를 향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참사 직후 유가족도 모르게 시신을 부검했어요. 현장 검증도 전혀 안 이뤄졌죠. 망루를 지었던 남일당 건물 옥탑은 다 정리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게 서둘러 부검하고 현장을 깨끗이 치운 게 뭘 의미하겠습니까. 증거 없애기 위해 그런 것 아니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도 불신이 생깁니다.”

경찰들과도 매일 몸싸움이 벌어진다. 불법집회라며 막아선 경찰 탓에 추모제 한 번 제대로 지내지 못했다. 권 씨는 “경찰과의 몸싸움으로 유가족 중에 다치지 않은 사람이 없다”며 “떳떳하면 왜 막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있는 사람에겐 법이 해당되지만 없는 사람들에겐 그 법도 적용되지 않더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권 씨는 또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뀐 상황이 기가막히다”며 일부에서 희생자들을 ‘테러리스트’로 매도하는 것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희생자들을 테러리스트라고 하고, 자살하려고 망루에 올라갔다고 하는 말들은 유가족들을 몇 번 죽이는 일이예요.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도우려고 망루에 올라간 사람들이예요. 부모 자식지간에도 올라갔는데 설마 죽으려고 올라간 거겠습니까. 없는 사람들이라서 이렇게 당하는구나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두 자녀의 얘기가 나오자 씩씩하던 권 씨의 눈가에도 잠시 눈물이 맺혔다. 21살짜리 권 씨의 큰 아들은 2월 10일 군입대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참사가 터졌고, 군입대를 미뤄야했다. 권 씨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남편하고 면회가고, 아들은 휴가 나오고 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둘째는 공부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을 고3이다.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한참 응석 부릴 나이에 벌써 장래를 걱정하는 것을 보면 부모로서 가슴이 찢어지죠. 남들처럼 많이 지니진 못했지만 소박하게 꿈을 이루고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고 모든 걸 송두리째 빼앗겼으니…. 그 참담함을 누가 알겠습니까.”

처음에 언론을 향한 원망을 쏟아냈던 권 씨는 인터뷰 끝머리에는 절실함을 드러냈다. 권 씨는 “언론에서 계속 보도해줘 ‘용산참사’가 잊혀지지 않도록 해 달라”며 “왜곡하거나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도해주는 것이 우리의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희생자들의 명예회복,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구속자 석방. 우리가 요구했던 것이 이뤄지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울 겁니다.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결국 진실은 밝혀질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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