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맞잡은 손, 한 번만이라도 놓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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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의 그때그때 다른영화] (7) 김씨 표류기 (2009)

▲ 영화 <김씨표류기> (2009)
이해준 감독의 이름을 처음 본 건, 군대 가기 전 편의점에서 혼자 알바 할 때였다. 그는 어느 영화잡지의 ‘충무로 시나리오 작가 기대주’쯤 되는 기획기사에서 〈안녕! 유에프오〉(2004)의 공동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그의 공동연출작인 〈천하장사 마돈나〉(2006) 역시 〈안녕! 유에프오〉의 이해영과 함께한 작품이었다. 이해준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김씨표류기〉(2009)는 〈천하장사 마돈나〉가 동성애라는,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불편한 소재를 따스한 감성으로 비벼 오락영화의 틀과 적절히 맞물리게 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며 자살이란 키워드를 제법 상콤하게 다룬다.

직장에서 잘리고 애인에게도 차인 김승근, 남자 김씨(정재영)는 세상과 정면으로 싸워본 적 없이 소시민의 레일을 따라가다 결국 한강에 몸을 던진다. 그러나 깨어난 그의 눈앞에 있는 건 가난도 대출광고도 없는 천국이 아니라 비둘기와 밤벌레가 날아다니는 무인도(?). 그날 이후 그는 한강 한 가운데 떠 있는 밤섬의 주민, 아니 주인이 된다.

여기 다른 김씨가 있다. 타인의 미니홈피에서 신상품 이미지를 스크랩하는 걸로 일과를 시작하고, 틈틈이 제자리 만보 걷기로 하루를 보람 있게 보낸다고 자족하며, 밤 9시가 되면 벽장 속 뽁뽁이 비닐에 누워 VTR 클리닝테이프를 보며 하루를 지우는 김정연, 여자 김씨(정려원).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밤섬에서, 남자 김씨는 새로운 삶을 꾸려간다. 이제 더 이상 신용카드도 쓸 수 없고, 물 먹은 핸드폰은 있으나마나. 그는 한강 너머 세상을 바라보지만, 한강 너머 세상은 이제 더 이상 그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 그는 이 경험이 몹시 낯설다. 그러나 세상을 포기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심심함 속에서, 그는 자장면을 만들고 싶은 욕망 하나만 가지고 스스로 밭을 갈고 옥수수를 기른다. 그를 살게 하는 목표가 아주 단순한 욕망으로 바뀐 것이다. ‘돈=욕망’이라는 도식은 돈이 무의미한 세계에서 얼마나 무력한가. 그리고 단순한 욕망은 또 얼마나 인간적인 본질을 담고 있는가.

그 사이, 여자 김씨는 타인의 얼굴마저 스크랩하며 가짜 자신을 만드는 위험한 곡예를 벌인다. 그녀가 쪽방에 틀어박힌 지도 3년째. 옥수수 캔으로 드라이한 식사를 하고, 빛을 제대로 쬐지 않아 눈 밑엔 다크서클이 거뭇하다. 그럼에도 스스로는 거짓 삶에 안주하고 그 안에서 홀로 편안하다. 자아의 불안하지만 완고한 벽은 그러나 남자 김씨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깨진다. 그녀는 그를 모르는 세상의 틈바구니에 숨어 남자 김씨를 관찰한다. 타인과의 진지한 교류를 겪어보지 않은 그녀가 남자 김씨로 인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 영화 <김씨 표류기> (2009)
이해준 감독은 작품의 중점을 ‘공간’과 ‘소통’에 두고 있다. 여기 나오는 김씨들은 한 번도 자기 세계 밖으로 나가보지 않은, 단절된 모든 개인을 대변한다. 이들은 노숙자이고, 왕따이며, 당신 주변의 누군가이고, 혹은 당신 자신이다. 영화가 정재영의 능청스런 연기에 개그를 의존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 지점에서, 정려원은 감독의 천진한 감성을 성실하게 전달한다. 로봇을 미끼(?)로 몰래 아파트를 빠져나오고 오토바이 헬멧과 우산으로 자신을 감추는 여자 김씨의 몸놀림이, 정려원의 앙상한 발목과 골목길 가로등 불빛 아래 꽃향기와 어우러지는 그 감성이 어딘가 소녀적이다.

한편, 감독은 지금 관객의 눈앞에 있는 환상이 현실 앞에서 무력하다는 걸 새삼 상기시킨다. 남자 김씨의 소박한 삶이 갑자기 휘몰아친 태풍과 그를 노숙자로만 보는 타인의 시선 앞에서 무너지는 것과 함께, 여자 김씨도 미니홈피가 가짜로 들통 나면서 산산조각 나버린다. 그들은 자신의 공간 단 한 뼘만을 원했을 뿐이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 김주원/ 블로거
그런 그들을 구원하는 건 그들이 맞잡는 손 하나뿐이다. 너무 빤한 결말 아니냐고? 좀 시시해보이긴 해도 이것 외에 우리에게 주어진 방법이 또 무엇일까. 서로 눈을 마주 보고 손을 맞잡는 것 이상의 대안을 요구하기란 오히려 대안을 비웃고 현실에 안주하길 부추기곤 하지 않나. 극장을 나서며 고립된 섬처럼 흩어진 개인들의 손이 적어도 하루쯤은 서로를 놓지 않았으면 싶었다. 혼자서는 설 수 없는 여자 김씨와 남자 김씨의 손처럼 서로를 놓지 않길 바랐다. 그런데 일단 나부터 쉽지 않다. 이미 우린 자신만의 밤섬과 쪽방 안에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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