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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박정남 독립PD

지금 방송 PD들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을 전시라고 표현을 해도 될까? 아마 대부분의 PD들이 동의할 것이다. 나도 방송 10년을 넘게 했지만 요즘처럼 힘들었던 적이 없었고 선배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자신들이 방송 시작한 이래 가장 힘든 시기라고 말한다.

3일전 우리가 치르고 있는 전쟁의 가장 먼 전선에서 구원병을 보내달라는 무전이 들어왔다. 아프리카 콩고에서 촬영을 하고 있던 선배가 부상을 당했다는 것이다. 방송 일정상 내가 구원병으로 투입이 돼야하는 상황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12시간 후면 나는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을 것이다.

나는 방송판의 게릴라다. 내 신분은 비정규직 프리랜서 PD다. 정규군에 비해 빠르고 가볍게 움직일 수 있고 또 비용도 적게 든다. 하지만 정규군이 아니다 보니 나와 같은 게릴라들은 보장 받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내 동료들 중에 많은 이들은 우리가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얘기를 한다. 사실 그렇게 취급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이런 것은 용병으로의 취급이다. 용병은 오로지 이해관계에 따라서 전투를 하지만,  게릴라는 분명한 정치적 지향점을 가지고 움직인다. 주적의 개념이 명확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같은 게릴라는 주적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방송판의 정규군에겐 파업이라는 강력한 미사일이 있다. 하지만 게릴라가 지닌 무기는 소총이 유일하다. 게릴라가 소총을 아무리 열심히 쏜다고 해도 주적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치루는 전투에서 소총질이나 했다가는 주적 얼굴도 못 보고 총알받이로 전사하고 말 것이다. 사실 용병류의 비정규군 중에는 미사일을 쏘러 간 틈을 채우고 들어가 실리나 챙기고 몸 상하지 말자는 이들도 있다. 또 그럴 의지가 아니어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파업을 할 명분도 권리도 없기 때문이다. 심정적으로 동의를 한다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거의 없다. 과거의 파업 때는 이런 문제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갈등도 많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명확한 주적이 생겼기 때문이다.

MBC의 파업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쉬지 못했다. 방송 일정이 너무 타이트해진 것이다. 파업으로 생긴 정규군의 공백을 게릴라들이 메워야하는 상황이었다. 파업 중에는 그동안에 나간 방송의 하이라이트로 근근이 버텼다. 그리고 파업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가지고 끝났다. 하지만 파업이 끝난 후의 정규방송은 누가 준비하는가? 바로 게릴라들의 몫이다. 파업으로 실력 발휘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파업이 끝난 후에 우리가 이렇게 건재하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또 다른 실력발휘다. 파업 기간 동안 열심히 방송을 준비해서 건재함을 확인 시키는 것….

이것이 나와 같은 게릴라들이 주적에 대항해서 싸우는 방법인 것이다. 열심히 싸우고 있지만 지금도 우리 팀의 사정은 그리 좋지 않다. 우리 팀에 PD수첩 수사로 인해 2명의 PD가, 그리고 제작비의 압박으로 PD특파원 2명이 철수한 상황이다. 전체 PD 전력의 1/3정도가 이탈된 상황이다. 그리고 내가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방송국의 광고 사정도 왜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좋지 않다.

주적은 정규군과 게릴라를 갈라놓으려고 한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저들처럼 이해관계를 따라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려쳐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그냥 우리 길을 묵묵히 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길이 틀리지 않았음은 시청자와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 오늘 아프리카로 출발하면 7주 동안 4개국을 취재, 4아이템을 연속으로 방송하는 일정이다.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다. 하지만 내가 이 상황을 버틸 수 있는 힘은 저들에겐 없는 연대의 끈, 불의에 저항하는 우리들의 전우애가 있기 때문이다.

“박 일병 아프리카에서 힘들지만 조금만 버텨~, 지금 구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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