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부끄럽게 만든 ‘남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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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세이] ‘남자이야기’가 말하는 한국 언론의 현실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드라마를 통해 확인하는 건 씁쓸한 일이다. 드라마는 그래선 안 된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뉴스나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못하고’ 있는 일을 드라마가 ‘해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 아무튼 느낌이 묘하다.

5일 방송된 KBS 2TV 월화드라마 <남자이야기>(10회)가 그랬다. 이날 방송된 <남자이야기>는 언론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철거민과 재개발에 관한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그런데 그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마치 ‘용산참사 100일’을 드라마판으로 조명했다고나 할까. 이날 <남자이야기>는 도시 재개발 이면에 드리워진 철거민의 애환, 공권력의 무능과 비리 등을 종합적으로 그리고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 KBS 2TV 월화드라마 <남자이야기>
도시 재개발과 철거민의 애환 그리고 ‘남자이야기’

“아니 형수, 이 동네 무슨 빨갱이들 살아요? 뭐 투쟁이니 승리니, 아 좀 거북하네.” (김신 역/ 박용하)

“그래봤자. 이 동네 투쟁할 만한 젊은 사람들도 없어요. 대부분이 여자들이거나 노인네들, 아이들 그래요. 원래가 서울 재개발 지역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갈 데 없이 떠돌다가 여기로 몰려들면서 만들어진 동네래요.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은 돈 벌러 다 떠나고, 노인네들이 애들 데리고 사는 집들이 많아요.” (명선 역/ 방은희)

“보상비 그런 거 안 나오나.” (김신)

“그거야 땅 주인 집주인 얘기지. 세입자들은 해당사안 없어. 집 주인들은 팔라고 하니까 잽싸게 팔고 다 날랐고.” (중호 역 / 김형범)

“사람들 말로는 한밤중에 (용역직원들이) 포클레인으로 밀고 들어오기도 한데요.” (명선)

▲ KBS 2TV 월화드라마 <남자이야기>
이 ‘짧은 대화’ 속엔 지금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시 재개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잘 묘사돼 있다. 이날 <남자이야기>를 주목했던 건, 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이 쉽지 않다는 걸 담담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왜 해법이 어렵겠는가. 바로 비리구조 때문이다. 경찰과 용역직원은 물론 고위공무원과 건설회사간 돈을 매개로 한 ‘비리 구조’ 앞에서 철거민들의 생존권은 고려대상이 될 수 없다. <남자이야기>는 이 부분을 짚었다. 그것도 제대로.

‘남자이야기’의 두 번째 언론비판 … 송지나 작가의 문제의식에 공감

‘갈 곳이 없어 모인 철거민들’을 ‘빨갱이’로 생각하는 김신(박용하)의 말 속에는 우리 사회의 철거민에 대한 인식수준이 어떤 지가 잘 드러나 있다. ‘투쟁=빨갱이’라는 등식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아직 통용되고 있는 문법이다. 주요 신문과 방송들 역시 이 등식의 재생산에서 자유롭지 않다. ‘비리 구조’에 대한 탐사보도는 뒷전이고 ‘투쟁=빨갱이’라는 등식의 확산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게 우리 언론동네 아닌가. 멀리 갈 것도 없다. ‘용산참사’를 언론이 어떻게 다뤘는지를 상기해보자.

▲ KBS 2TV 월화드라마 <남자이야기>
그래서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불편했던 건 언론에 관한 부분이었다. 아마도 ‘언론비평’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남자이야기>는 첫 회에서 쓰레기 만두 파동에 대한 언론보도를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5일 <남자이야기>는 송지나 작가의 두 번째 언론비판인 셈인데, 언론을 겨냥하는 갈 끝이 첫 회에 비해 한결 날이 서 있다.

사실 이날 <남자이야기>의 언론비판은, 비판이라기보다는 현실을 제대로 보여줬다는 평가가 더 정확하다. △용역직원들이 철거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 △강제철거를 시도할 때 김신(박용하)이 분신을 시도하는 장면 등을 기자들이 모두 취재해 갔지만, 채도우(김강우)의 지시를 받은 오 이사(김뢰하)가 언론보도를 막음으로써 ‘없던 일’이 돼 버린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제대로 보도를 할까 - 이 부분을 유심히 살폈는데 “그런 일(언론보도 막는 것)은 많이 해봐서 간단합니다”라는 오 이사의 한 마디로 정리가 됐다. 이것이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한국 언론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과연 언론에 대한 이미지가 드라마에서만 이럴까. 결코 그렇지 않다. 명심하자. 드라마는 현실의 반영이다.

도시 재개발을 둘러싼 ‘비리 구조’에 언론 또한 포함돼 있다는 걸 드라마 <남자이야기>는 보여줬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드라마를 통해 확인하는 건 씁쓸한 일이다.

▲ KBS 2TV 월화드라마 <남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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