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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드릭스의 책읽기] (15) 성난 서울

▲ <성난 서울> (아마미야 카린·우석훈 지음, 꾸리에)
첫인상. 일본이 싫었다. 그건 순전히 전여옥 때문이다. 〈일본은 없다〉를 처음 읽었던 1993년 이후 10년 가까이 일본에 모든 관심을 끊었다. 중고교 시절 다들 듣는 X-Japan도 듣지 않았다. 로봇 애니메이션 역시 보지 않았다. 〈일본은 없다〉에 나왔던 일본인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일본을 바라보았다. 게다가 역사 교과서에 대한 이야기, 해마다 이어지는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는 일본 총리의 일들을 보면서 난 일본에 관한 모든 관심을 끊는 내 자신을 정당화했다. 축구를 볼 때, 야구를 볼 때 한국이 일본을 이겨야만 했다. 더러운 나라는 져야했으니까.

첫 번째 전환. 생각이 바뀐 건 순전히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덕택이다. 〈몬스터〉를 보면서 일본의 전공투 세대가 갖고 있는 파시즘에 대한 생각들을 알았고, 〈마스터 키튼〉을 보면서 극복할 수 없는 인문학적 깊이를 가진 회의주의자를 발견했다. 생각을 바꾸고 나서 보니 일본은 총리와 각료들이 보여주는, 그리고 극우파 집단의 독도를 내놓으라는 데모로 보이는 모습으로만 판단하기에 너무 다양한 나라였다.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기 시작했고, 칸노 요코가 만드는 영화 OST를 듣기 시작했고, 오다기리 조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다. 일본의 깊고 넓은 대중문화가 다가왔다. 함부로 일본을 말할 수가 없었다.

아마미야 카린과 우석훈이 같이 쓴 〈성난 서울〉을 읽으면서 일본에 대한 두 번째 생각의 전환을 한다. 대학입시에서 두 번 떨어지고, 알바를 하다가 잘려 방황하던 도중 극우파 밴드 활동을 했던 아마미야 카린. 그녀는 천황에게 충성을 서약하자는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쓰치야 유타카라는 좌파 영화감독과 영화를 찍고 나서 좌파로 전향을 한다.

이를테면 조갑제가 갑자기 진보신당에 가입해버리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르포작가로 활동하고 일본의 빈곤 운동의 선두주자로 활동을 시작한다. 〈게공선〉이라는 1920년대 리얼리즘 소설이 수십만 부를 팔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추천사 덕분이었다. 〈게공선〉을 읽었던 수만 명의 20~30대가 공산당에 가입했단다. 그녀를 보면서 일본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금 바꾼다. 2주 전에 읽었던 마쓰모토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를 읽으면서 받았던 충격과 더불어 두 번째 전환. 일본에도 극우파 말고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 아마미야 카린(왼쪽)이 서부비정규센터(준) 모임과 삶이 보이는 창 르포문학 모임 회원들과 간담회를 가지고 있다. ⓒ오마이뉴스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한국과 일본은 늘 다른 시간을 살아왔다. 근대화를 겪지 못하고 전제왕정을 살았던 19세기 말, 일본은 유신을 단행했고 근대국가가 되었다. 서로 다른 양국의 시계는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한국의 독립 이후에도 서로의 시간은 달랐다. 일본에서 전공투 세대가 1968년 혁명을 일으키고 있을 때, 한국은 박정희의 시대였다.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 일본은 자민당 독재가 확고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한 번의 같은 시간을 겪고 있다. 그것은 비정규직화와 그 영향에 가장 취약하게 노출되어있는 젊은 세대들의 빈곤의 시간이다.

서울을 거닐면서 쓰는 아마미야 카린의 시선이 외국인의 낯선 것이 아니라, 서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그녀의 한국에 대한 생각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녀가 갖고 있는 예민함은 우리가 잊고 있는 것들을 상기시켜준다.

7%. 이게 어떤 의미일까?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50%, 그 50%의 비정규직 중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다. 쉽게 말하면 비정규직 중에서 93%는 정규직이 되지 못한다. 그건 〈긍정의 힘〉을 읽고 긍정적인 생활을 한다거나, 부자가 되는 〈시크릿〉을 안다고 해결되지 못하는 사람이 비정규직의 93%. 전 노동인구의 46.5%는 절대로 현 구조에서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3770원. 한국의 시간당 최저 임금이다. 한국의 빅맥 세트 가격은 4900원이다. 참고로 OECD 국가 어디에서도 빅맥 세트를 한 시간 일해서 먹을 수 있다. 일본의 시간당 최저 임금은 800엔이다.

한 시간 일해서 빅맥 세트를 먹을 수 있는 일본의 20~30대 ‘로스트 제네레이션’의 ‘빈곤’은 일본의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되고 있다. 그것을 이슈로 만든 건 ‘소통하는 정부’가 아니고 노동조합이 아니었고, 20~30대 당사자 운동이었다. 아마미야 카린 뿐만이 아니라 숱한 20~30대가 자신들의 문제가 구조적 문제임을 깨닫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 금융위기로 술렁이는 지금 일본에서 ‘네오 리베’(신자유주의)의 시대의 종언을 외치는 배경에는 20~30대의 목소리가 깔려있다.

2009년 5월 1일. 여의도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깃발이 나부낀 가운데, 홍대 앞에서는 일하지 못하는 20대의 〈인디 메이데이〉 행사가(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352895.html) 열렸다. 일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모습들을 담은 문화제를 하고, 현재의 고요위기와 불안정 노동구조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사실 알고 보면, 이러한 〈인디 메이데이〉의 원형은 일본의 프리터들의 〈인디 노조〉의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물론 같은 시간 일본에서도 〈인디 메이데이〉 행사가 열렸다.

▲ 헨드릭스/ 블로거
랑데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은밀히 만나는 이야기이다. 은밀한 만남이 지속되면 그 만남은 곧 은밀할 수 없는 공공연한 것이 된다. 양국 청년들의 랑데부가 시작되었다. 며칠 전에는 아마미야 카린과 〈가난뱅이의 역습〉의 마쓰모토 하지메가 한국에 오기도 했다(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01135938&Section=03). 그것이 유럽에서의 ‘에라스무스 프로그램’ 같은 화해와 사회적 연대 같은 흐름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책을 덮는다. 붉은 악마가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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