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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복진오 독립PD

<조선일보>가 민주당 이종걸 의원과 민노당 이정희 의원을 형사 고발했다. 이와 함께 1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조선일보의 소장에 따르면  두 의원은 고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 자사 임원이 마치 접대를 받은 것처럼 국회 대정부 질문이나 MBC 〈100분 토론〉에서 실명을 거론해 조선일보는 물론 자사 임직원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 조선일보 5월9일자 2면.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까지 틀어막으려는 〈조선일보〉의 무모함을 보면서 그동안 언론들이 고 장자연씨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법률에 보장된 ‘무죄추정원칙’에 따라 사건 관련자들의 명예와 인권보호가 아니었음이 확인됐다. 고 장자연씨 유족이 리스트에 오른 인물을 직접 고발했음에도 그 리스트의 실명이 공개되지 않은 것은 리스트 당사자, 아니 해당 언론사의 무언의 협박에 한국의 언론 대부분이 무릎을 꿇은 결과로 유추된다. 다른 형사 사건이나 정치, 기업인들에 대한 비리 사건을 보도하던 기준에 따라 이 사건을 취재 보도했다면 그 실명이 벌써 공개되고 남았다고 단언한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리스트에 방송사 사장들이 있었다면 우리나라 보수 신문들은 이를 어떻게 보도했을까? 아마 신문들은 황색신문으로 돌변 온갖 추측과 소문에 근거해 ~하더라, ~했다더라, ~에 따르면, 하는 형식으로 길거리 좌판 판매대의 황색잡지에서 읽을 수 있는 3류 연애소설 같은 기사들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거의 대부분 방송과 신문 심지어 진보를 자처하는 신문에서 조차 〈조선일보〉와의 기 싸움에서 완전 꼬리를 내렸다.

결국 꽃다운 나이에 치유 할 수 없는 고통에 빠져 생을 마감한 고인에게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휘두른 자들의 추악한 실체는 지금까지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 방송기자에 의해 쓰레기통에서 찾아낸 고인의 유서와 이를 찾아낸 과정이 논란 속에 특종처럼 보도 됐지만 이게 과연 특종이라 할 수 있는가? 묻고 싶다. 물론 유서의 존재 자체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서의 실체를 밝혀낸 것은 어쩌면 특종은 특종인 셈이지만. 사건의 본질을 놓쳤기에 아니 외면했기에 이 사건과 관련하여 특종은 없었다.

▲ 여성인권단체들은 지난 4월 8일 오전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故 장자연씨 죽음과 관련한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했다. ⓒPD저널
더 나아가 고 장자연 리스트를 두고 언론이 침묵한 순간 한국 언론에서 저널리즘도 사라졌다. 전에 모일간지 신문사 사장이 탈세사건과 관련되어 검찰에 피의자 신문으로 출두할 때 해당 신문사 기자들이 검찰청 앞에서 “사장님 힘내세요” 하고 외치는 순간 그 신문사 기자들의 저널리즘이 사라졌듯 고 장자연 리트스에 언론이 침묵한 순간 한국 언론의 저널리즘은 죽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하면서 피의자에 대한 인권보다 공익과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우며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저널리스트의 책임과 사명인 것처럼 떠들었던 언론사들의 당찬 모습은 고 장자연 사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연쇄살인범의 얼굴 공개는 보도경쟁 속에서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여 보도의 선점을 차지하기 위해 저널리즘을 팔아먹은 얄팍한 황색저널리즘의 모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 복진오 독립PD.
지금까지 저널리즘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했지만 나 자신 조차 이 개념에 대하여 명확하게 정리되었거나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탄탄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저널리즘이란 단어를 자신 있게 쓰는 이유는 이것은 단순한 관념적 개념이 아닌 행동적 개념이란 소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는 저널리즘은 강의나 논문, 학술세미나 때론 피디들과 기자들과 만나는 사적인 자리에서 열띤 토론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니라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당당히 맞선 용기 있는 사람들이 직접 행동으로 만들어낸 신문 기사나 방송을 통해 배웠다. 하지만 아쉽게도 고 장자연 리스트 보도를 통해 확인되었듯 최근 한국 언론에서 행동하는 저널리스트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이 절대 억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필자는 오늘도 저녁 9시 메인 뉴스를 보면서 스포츠뉴스와 메인 뉴스를 혼동했으며 어떤 기사를 보면서는 “이제는 VJ 특공대들도 9시 뉴스를  만드나”? 라며 혼자 중얼거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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