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책임논란…‘反 이명박’ 집회 확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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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클리핑] 조중동, 노 전 대통령 서거 ‘정치적 이용’ 경계

‘박연차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투신자살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아침 6시40분께 봉하마을 자택 뒤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 머리 등을 크게 다친 뒤 경남 양산시 부산대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검찰 수사를 받던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유의 사태에 전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고인을 애도하는 추모 행렬은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다. 봉하마을과 서울·대구·광주·전주 지역에서는 밤늦게까지 촛불 추모집회가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는 전국에서 20여 만명의 추모객들이 몰렸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도 촛불을 든 추모자의 행렬이 이어졌다.

▲ <한겨레> 5월 25일 1면

온라인에도 수십개의 추모게시판이 개설되면서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의 개인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에는 시민들의 추모글이 잇따랐다. 인터넷 주요 포털사이트들은 첫 화면을 회색으로 바꾸고 국화를 띄워 조의를 표했다.

정치권도 온라인 추모열기에 동참했다. 정부와 정당, 국회의원 홈페이지에 잇달아 근조 배너가 달리고 추모게시판이 개설됐다.

노 전 대통령 장례, 7일간 ‘국민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는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국민장’으로 치러진다. <경향신문>은 “정부는 장의 명칭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으로 하며 영결식은 29일 김해시 진영공설운동장에서 열기로 잠정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대개 국민장 또는 국장의 경우 장례를 서울에서 거행하고, 유해는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왔지만, 노 전 대통령의 장례는 서울이 아닌 고인의 고향인 봉하마을이 중심이 된다. 빈소도 봉하마을에 차려져 있고, 고인의 유해도 화장 절차를 걸쳐서 대통령 묘역이 마련돼 있는 국립현충원이 아닌 봉하마을에 안장된다. 화장 방식으로 장례가 치러지는 것은 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이다.

장의위원장도 국무총리가 단독으로 맡던 관례와 달리 공동위원장으로 하기로 했다. 정부를 대표해선 한승수 총리가 맡기로 했으며, 노 전 대통령 측 인사로는 참여정부 마지막 총리인 한명숙 전 총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장례식 당일 전국 관공서에는 조기가 게양될 예정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봉하마을에 차려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직접 찾아 조문할 것으로 24일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조문 방식과 관련, “이 대통령은 당연히 봉하마을로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며 “조문시기는 결정되지 않았으나 장례 기간에 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23일 봉하마을에 보낸 이 대통령의 조화를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훼손한 것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 쪽 장례위원회 쪽이 “조화를 다시 보내주면 분향소에 조화를 모시겠다”고 밝혀옴에 따라 청와대는 24일 조화를 봉하마을로 다시 보냈다.

25일자 아침신문 대부분이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10여 개 면에 걸쳐 주요하게 보도했다. <경향신문>, <한겨레>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 가능성 등에 방점을 찍은 반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은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한 정치적 파장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검찰 ‘표적수사’ 논란 가열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면서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한국일보>는 “‘무리한 표적 수사’였다는 비판과 ‘결과론적 비판일 뿐’이라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수사의 시발점은 지난해 7월 태광실업과 그 계열사들에 대한 국세청의 대대적인 세무조사였다. 한국은 “태광실업의 관할청인 부산지방국세청이 아니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직접 뛰어들었다는 점 때문에 처음부터 표적 조사 의혹이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조사4국은 정권 교체 직후부터 이미 노 전 대통령 측근인 정화삼씨와 이상호 우리들병원 원장과 관계가 있는 제주 제피로스 골프장과 우리들생명과학을 세무조사한 바 있다. 태광실업 세무조사가 참여정부 사정이라는 일련의 표적 조사 계획 아래서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 <한겨레> 5월 25일 5면

한겨레는 국세청의 세무조사 시점을 주목했다. 5면에서 <촛불에 덴 정권 ‘반전 카드’ 세무조사 의혹>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은 한겨레는 “국세청이 노 전 대통령 쪽을 향해 본격적으로 칼을 겨눈 것은 지난해 7월30일은 미국산 쇠고기 파문으로 촉발된 이른바 ‘촛불사태’로 이명박 정부가 심각한 위기에 맞닥뜨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무렵”이라며 “겨우 집권 몇달째를 맞는 정권의 입장에선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되찾을 강력한 ‘반전 카드’가 필요했을 법하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국세청이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와 태광실업의 휴켐스 주식 매입 등을 둘러싸고 2005~2006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박 회장의 비리 혐의에 뒤늦게 적극적으로 매달린 것도 이런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 역시 과잉·표적 수사 비판에 직면해 있다. 한국은 “검찰은 기본적으로 국세청의 세무조사 과정에서 포착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정황을 넘겨받아 수사를 진행했지만 세 딸을 모두 출국금지 조치하면서 박 전 회장을 압박한 부분이나 수사 보안을 철저히 지키지 못한 점 등이 집중 공격 대상”이라고 전했다.

한국은 “특히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강경파들이나 노 전 대통령 소환 이후 20여일 동안이나 사법처리를 미룬 지휘부가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고 전했다.

검찰은 강원랜드 비자금 의혹, 프라임그룹 정ㆍ관계 로비 의혹, 부산자원 부당대출 의혹, KTㆍKTF 납품비리 사건 등 참여정부 실세들을 겨냥한 일련의 수사를 진행해왔다는 점 때문에 표적 수사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의 또 다른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도 대전지검에 의해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한국은 더 나아가 “국세청이나 검찰이 아니라 이들을 움직이는 정권 핵심의 문제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며 “실제 이명박 정부는 정권 교체 직후부터 사정기관을 총동원해 참여정부 비리에 대한 전방위적, 저인망식 수사를 주도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 초기 위기 탈출을 위해 참여정부 시절 사라졌던 ‘전 정권 사정’ 구태를 부활시켰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청와대를 빼고 국세청과 검찰에만 표적 수사 논란을 제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그러나 “국세청이나 검찰 입장에서 탈세나 비리 정황을 덮고 넘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며 “예상치 못한 사태 때문에 조사나 수사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결과론일 뿐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경향 역시 검찰 수사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무리한 수사에 대한 검찰 지휘부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사팀 교체론까지 나올 정도”라고 전한 경향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장기간에 걸쳐 사방에서 압박해 들어가는 검찰 특유의 특수수사 전략으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경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에 대한 수사를 시작으로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측근 그룹인 이광재 민주당 의원과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노 전 대통령 주변에 대해 전방위 수사를 벌였다. 수사 대상에는 부인과 아들, 딸, 사위, 조카사위, 처남까지 포함됐고 여러 차례 소환 조사가 이뤄졌다. 노 전 대통령을 최종 타깃으로 삼고 주변에 대한 싹쓸이 수사를 벌인 것이다.

검찰은 언론을 통한 ‘여론전’도 동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아파트 계약서를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찢었다” “박 전 회장으로부터 받은 2억원대 명품시계를 버렸다”는 등의 얘기는 검찰 관계자의 입을 빌려 수시로 언론에 보도됐다. 노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분노와 심리적 압박을 느꼈을 만한 부분이다.

검찰이 사법처리 결정을 미뤄온 것도 노 전 대통령이 극단의 결정을 선택할 여지를 만들어 준 셈이 됐다. 지난달 30일 노 전 대통령 소환 조사 이후 검찰은 3주일이 지나도록 사법처리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그 사이에 검찰 주변에서는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 “불구속 기소될 것”이라는 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 사법처리에 신중을 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노 전 대통령에게는 괴로운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검찰은 책임론이 불거지자 “전직 대통령에 대해 최대한 예우를 갖췄음에도 이런 일이 발생해 우리도 충격적이고 망연자실하다”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조선 역시 사설을 실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는 검찰의 수사 지연, 결정 지연 등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검찰이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지나친 점은 없었는지, 지금 와 돌아보면 후회되는 점은 없는지를 돌이켜 점검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 수사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은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당분간 보류하는 등 노 전 대통령 장례 기간에 수사를 잠정 중단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봉하마을서 환영받지 못한 언론

노 전 대통령 서거로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은 물론 언론에 대한 성토 역시 이어지고 있다. 24일 봉하마을에 모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은 “언론이 공정하게 보도를 하지 않고 검찰 말만 편파적으로 보도해 결국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흥분한 일부 회원들이 취재진들과 곳곳에서 마찰을 일으켰고, 특정 인사들의 조문을 몸으로 막는 등 실력행사에 나섰다. 특히 일부 회원들은 빈소 주변에서 “조·중·동 기자들은 봉하마을을 떠나라”고 외쳤고, 23일에는 노사모 회원 수십명이 취재진이 몰려 있는 천막으로 찾아와 신분증 검사를 하기도 했다.

방송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23일 KBS 차량이 봉하마을 안으로 들어오려 하자, 30분 남짓 노사모 회원들이 “나가라”고 외치며 막았다. 노 전 대통령이 실족사했다고 보도한 것이 화근이었다. 24일엔 SBS 카메라기자가 촬영을 하자 한 노사모 회원이 카메라를 빼앗으려고 해 몸싸움이 벌어졌다. 전직 대통령의 수난사를 거론하면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을 동일선상에 두고 보도한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동아일보> 여기자는 멱살을 잡히기도 했다.

정치인들은 조문을 하려면 사실상 노사모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빈소로 향하는 길목 곳곳에서 노사모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24시간 감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김형오 국회의장이 조문을 왔으나 여지없이 쫓겨났다. 지난달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한 정동영 의원은 전날 노사모 회원들의 저지로 돌아갔다가 이날 겨우 조문을 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날 오후 4시께 조문을 하려 했으나 노사모 회원들과의 충돌이 우려되자 봉하마을 들머리에서 돌아갔다.

▲ <경향신문> 5월 25일 4면

전직 대통령 예우한다며 추모 인파 통제

정부가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다 하겠다고 밝혔지만,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분향소를 경찰이 통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경향은 경찰의 추모 인파 통제 소식을 1면에 보도했다.

24일 경찰은 추모 행렬을 둘러싸고 분향소로 들어갈 수 있는 외길만 터놓은 채 시민들을 통제하면서 추모객들과 경찰 간 크고 작은 몸싸움이 이어졌다. 경찰은 대한문 주변에 12개 중대 1000여명을 배치, 외부를 철저히 차단했다.

또 시청앞과 청계광장으로 진입하는 도심의 모든 길목에 전경버스로 차벽을 설치, 시민들이 모이는 것을 원천봉쇄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박주민 변호사는 “관혼상제나 의식에 관한 집회는 집시법 적용을 받지 않도록 규정돼 있다”며 “경찰이 불법집회로 규정할 법적 근거나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어 지켜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가 검찰 수사와 무관하지 않은 만큼 자칫 ‘정권 책임론’과 ‘반(反) 이명박 집회’로 확산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민심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경향은 “청와대는 야권과 친노 진영 등에서 제기하고 있는 이른바 ‘검찰 책임론’에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후폭풍이 청와대로 연결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고 보도했다.

내부적으론 “속도가 붙고 있는 집권 2년차 국정운영의 동력을 살려나가면서 ‘이명박표 개혁’을 어떻게 밀고나갈지에 대해 고심하는 기류도 나타났다”며 “이미 한나라당에서 6월 임시국회 연기론이 나오다 보니, 경우에 따라 ‘개혁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개연성이 있다는 분석이 깔려 있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특히 시민들의 조문과정에서 공권력과 충돌이 벌어지고, 만에 하나 ‘불상사’가 일어날 경우 그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경찰 등에 법대로 하되 ‘과잉 대응’을 하지 말도록 지시한 걸로 전해졌다.

정치권 사실상 기능 정지

경향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국의 향방에도 관심을 보였다. 경향에 따르면, 정치권은 현재 사실상 기능 ‘정지’ 상태로 들어갔다. 여야는 서거 이틀째인 24일 기존 정치 일정을 모두 미룬 채, 민심의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전대미문 비극의 후폭풍을 가늠하기 어려운 탓이다.

경향은 “6월 임시국회는 이미 영향권에 들었다”며 “이에 따라 정부·여당이 강행을 예고한 미디어법·비정규직법 등 ‘MB(이명박 대통령) 입법’의 처리도 안개 속에 빠졌다”고 전했다.

한나라당은 현재 공개적 ‘애도’ 발언 외에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여권 책임론(정치적 타살)’ 등 동요하는 여론에 따른 정치적 위기감이 원인이다. 대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에 당력을 집중했다. 정치 일정도 대부분 뒤로 미뤘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 장례가 끝나는 오는 29일까지 일절 정치행위를 중지하고 추모와 반성키로 했다. 민주당은 특히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민주주의의 후퇴’에 따른 비극의 상징으로 부각하는 기류다.

하지만 조만간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특검 도입 문제가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달 민주노동당과 관련 법안을 제출한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정치 상황이 급변,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이명박 정권, 분노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노 전 대통령의 추모 열기에 대해 한겨레와 경향은 정권을 향해 “민심의 본질을 직시하라”고 촉구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추모 열기는 단순히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한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슬픔과 연민의 표시만은 아니”라며 “그 속에는 이런 비극을 불러온 이 땅의 현실에 대한 절망과 분노가 깃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기득권층이 득세하고 사회적 약자들이 뒷전으로 물러나는 현실,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고, 권력이 오만하게 독주하는 상황 속에서 켜켜이 쌓인 반감과 울분이 통곡과 오열 속에는 녹아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이번 사건은 그 충격의 강도만큼이나 작지 않은 소용돌이가 불가피해 보인다”며 “긴장과 갈등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그 소용돌이를 소모적으로 흘러가게 할 게 아니라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해지는 계기로 삼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책임은 누구보다 현 집권층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 집권층은 우선 추모 민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제2의 촛불’로 번질까 두려워 시민들의 추모 행사를 불법 집회로 몰아 통제하고 나선다면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정부는 분향소 앞에 늘어선 시민들의 육성에 겸허히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 <경향신문> 5월 25일 사설
경향 역시 사설을 싣고 “추모객 상당수의 심중에는 전직 대통령을 자살로 내몬 강퍅한 사회에 대한 분노가 녹아 있다고 본다”며 “집권세력은 정권 책임론이 고개를 드는 이유를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향은 “이들의 애도에는 독선과 오만으로 일방 독주한 이명박 정권의 국정운영에 대한 저항의 성격이 담겨 있다”며 “이 정권은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앞선 정권들의 모든 업적과 가치는 물론 민주주의마저 송두리째 묻어버리려 했다. 중산층과 서민들은 불과 1년여 만에 더는 피할 수 없는 벼랑끝으로 내몰렸다. 정권은 독재를 향해 역주행하고 있다”고 현 정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이 정권은 깊은 애도 속에 숨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며 “부자들만을 바라보는 외눈박이식 국정운영부터 대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중동, 노 전 대통령 서거 ‘정치적 이용 가능성’ 경계

반면, 조중동은 이번 사태의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경계하고 나섰다.

중앙은 1면 톱기사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찬조 연설을 해 유명세를 탔던 ‘자갈치 아지매’ 이일순 씨를 인터뷰한 기사를 1면에 내보냈다. <“그분이 다 안고 가셨는데 이젠 싸움 그만해야”>란 제목이다.

중앙은 인터뷰에서 이 씨가 “이렇게 다 짊어지고 가셨는데, 그분 죽음 앞에서 싸우지는 말아야 안 되겠나”, “니편 내편 갈라가 싸우면 되겠나, 여기 같은 시장에도 그런 사람은 없다. 노 전 대통령이 원하는 게 그런 건 아닐 기다”라고 말한 내용을 강조해 넣었다.

사설에서도 “노 전 대통령은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는 유서를 남겼다”며 “노 전 대통령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했다고 해서, 구체적인 정책과 사안에서 격렬하게 맞붙었다고 해서 특정 세력이나 인물을 이런 전 사회적인 작업에서 배제한다면 이는 화합과 전진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중앙은 “분명한 근거 없이 ‘검찰 책임론’을 몰아붙이거나,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라며 “정당했던 언론의 비판을 감정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봉하마을의 빈소에서 대통령 조화를 훼손한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사례들은 갈등의 해소에도 맞지 않거니와 노 전 대통령의 유지와도 상충된다는 것이다.

중앙은 “노 전 대통령을 잃고 한국 사회가 더욱더 갈등과 분열에 빠져든다면 전직 국가원수보다 더 큰 것을 잃는 것”이라며 “성숙하고 화합적인 분위기에서, 전 국민의 진정 어린 애도 속에서 차분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자”고 촉구했다.

▲ <중앙일보> 5월 25일 사설
동아 역시 8면에 정치-경제-학술계 원로들의 고언이라며 <“국론분열 아닌 통합 계기로 삼아야”>란 제목의 기사를 실어 “정치 경제 학술계 원로들은 이처럼 안타까운 상황을 맞아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원망하지 말라’고 한 고인의 유지를 되새겨 우리 국민이 서로 화해하고 통합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사설에서는 일부 노사모 회원들의 항의로 한승수 국무총리, 김형오 국회의장,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의 조문이 불발된 것에 대해 “봉하마을 빈소 주변에서 일부 지지자들이 보이는 과격한 행동은 자제돼야 한다”며 “문명국가, 성숙된 사회, 선진화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조문객을 축객하고 조화에 발길질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고인을 욕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일부 누리꾼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추모게시판 등을 이용해 ‘정치적 타살’이니, ‘제2의 촛불’이니 운운하면서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분위기를 부추기는 것도 옳지 않다”며 “지각 있는 국민이라면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사회혼란 조성의 기회로 삼으려는 불순한 의도에 공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개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아는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했듯이, 진정 고인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흥분하기보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국민 통합을 이끌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국민 분열을 조장해서도 안 되고, 일부 사회세력이 이를 부추겨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선 역시 사설을 실어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지지자들이 충격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조문하러 온 사람들에 대해 정치적 친소관계를 따져가며 조문을 막거나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것은 고인의 뜻과 어긋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 봉하마을에서 KBS 중계차가 쫓겨나고, 기자들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것은 “경우에 어긋난 행동”이고, 일부 분향소에서 ‘이명박 정부 탄핵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 역시 “조문의 본뜻을 벗어나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노 전 대통령 유서 내용을 부각하며 “노 전 대통령 장례가 다시 편을 가르고 손가락질하는 부대낌의 장이 아니라 서로 상대의 상처를 되돌아보고 그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보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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