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언론권력 해체하려던 노 전 대통령에 정치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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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언론권력 해체하려던 노 전 대통령에 정치보복”
[인터뷰] 최문순 민주당 의원
  • 김세옥 기자
  • 승인 2009.05.26 07: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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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믿기지 않았다. 한 주의 무게를 내려놓고 무장 해제된 마음으로 눈을 뜬 토요일 아침, 무심코 튼 TV 화면 속 한 줄로 전해진 긴급 속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오보이길 바랐다. 그러나 정규편성 프로그램들이 갑자기 중단되고 경직된 얼굴의 앵커들이 화면에 등장했고, 구체적인 상황을 하나 둘 전달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뉴스를 보는 기분이었지만, 2009년 5월 23일 오전 대한민국의 뉴스임엔 틀림없었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 역시 오보이길 간절히 바랐다고 한다. 방송 기자 출신으로 MBC 사장까지 지낸 최 의원인 만큼 이 같은 뉴스가 오보일 경우 얼마나 큰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오보이길 바랄만큼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은 현실이었고, 최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www.moonsoonc.net)에 회한으로 가득한 사과문을 실었다.

“노 전 대통령의 육체가 부서지기 전 그의 ‘인격’과 ‘명예’가 먼저 그리 됐습니다…(중략) 당신에 대한 인격 파괴 중단을 촉구하는 글 한 줄 쓰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최문순 민주당 의원 ⓒPD저널
MBC 사장이었던 지난 2005년 <PD수첩>의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에 대한 진실 보도 직후, 진실을 보도했음에도 제작진은 물론 MBC 전체가 ‘매국노’ 취급을 당했을 당시, 사실 대신 여론을 좇는 언론들로 인해 인격이 조각나는 경험을 했던 그로선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방식으로 자신의 뜻을 전하기 전, 손 한 번 내밀지 못했음이 통탄스러웠던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사흘이 흐른 지난 25일 오후 <PD저널>과의 인터뷰에 응한 최 의원의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엔 여전한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처진 눈꼬리로 기억될 만큼 사람을 대할 때 늘상 웃고 있던 최 의원이었지만, 20여분 동안 진행된 이날 통화에선 서로의 안부를 묻던 순간을 제외하곤 단 한 번의 웃음기도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언론의 후진성, 노 전 대통령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어떤 느낌이었나.

“…놀랐다. 사실일까, 잘못 전해진 게 아닐까. 처음엔 그랬다. 처음엔.”

-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많은 이들이 검찰과 언론의 책임을 거론하고 있다. 정치적 타살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저 역시 그리 보고 있다. 정치권과 검찰 그리고 언론이 합작해 확정된 사실이 아닌 것을 갖고 집권 여당도, 검찰도, 언론도 정치행위를 하며 노 전 대통령의 인격과 명예, 가족 관계, 사회적 관계 모든 것을 파괴했다. 전직 국가수반으로서의 존엄이나 위엄도 다 파괴됐다.

개인으로서도, 남편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친구로서도, 전직 대통령으로서도 설 자리가 없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대한민국) 전부가 이에 무감각했다. (정부 여당과 검찰, 언론 등) 직접 가해자들은 물론이고 저와 민주당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모두에 책임이 있다.”

- 뒤늦은 질문이지만 어떻게, 왜 그런 상황까지 갔다고 보나.

“지금 돌이켜보면 정치 보복과 언론의 후진성 두 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 언론의 후진성이라니, 어떤 의미인가.

“사실 관계가 철저하지 않았다. 확정된 사실이 아무 것도 없지 않나. 무죄추정의 원칙은 물론 형법 제126조에 규정된 피의사실공표죄를 (언론들이) 정면으로 무시하고 기사를 썼다. 또 사실과 관계없는 문제들을 엮었다. 1억 원짜리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설사 사실이라 할지라도 사건과 직접 관계가 없는 내용이다. 딸 정연 씨에게 호화아파트를 사줬다 해도 그 자체가 범죄 행위는 아니지 않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언론들이 돌아봐야 할 점이 있다면.

“아주 원론이다. 언론은 사실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존재들이다. ‘사실에 대한 철저한 추구’라는 윤리에 기반해 국민의 알 권리가 보장돼야 하는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앞세운 언론의 자유는 단순히 (언론이) 아무렇게나 떠들 권리가 아니다. 또 검찰 출입 기자들이 명심해야 할 게 있다. 그들은 검찰을 감시하기 위해 출입을 하는 것이지, 나팔수 역할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감시하는 언론’이라는 언론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부터 다시 성찰해야 한다.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조문객들의 취재 거부는 정치 보복에 가담한 기자들의 책임”

-봉하마을 등의 조문객들이 KBS와 조·중·동 등 일부 언론의 취재를 막고 있다. <조선일보>는 25일자 아침 신문 사설에서 ‘조문객들이 기자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는 것은 경우에 어긋난 행동’이라고 비판했는데, 일련의 상황을 어떻게 보나.

“기자들의 책임 아닌가. 현장의 조문객들이 볼 때 일부 방송과 신문의 취재를 용납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들에겐 취재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앞세운 언론에 취재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국민들에겐 취재를 거부할 권리도 동시에 있다. 언론이 자신의 권리만 요구하는 것 자체가 여전한 특권 의식이다.”

-조문객들이 일부 방송 등의 취재를 용납할 수 없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우선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지난 6개월 간 진행된 수사가 정치 보복적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라 보는 게 아닌가. 모름지기 언론이라면 검찰의 수사가 정치적 중립성 아래 진행되고 있는지, 사실이 제대로 담보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보다 한 술 더 떠 정치 보복에 가담하지 않았나. 언론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남을 수밖에 없는 듯하다. 거듭 말하지만 정부 여당과 검찰 그리고 언론이 합세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 보복을 한 것이고 야당은 부끄럽게도 한 발 떨어져 있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정치 보복의 이유는 무엇인가. 언론개혁과 관련이 있을까. 있다면 참여정부의 언론개혁에 대한 평가를 부탁한다.

“참여정부의 언론개혁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말이다. 그러나 정신만큼은 옳은 방향이었다. 언론개혁이 성공하려면 우선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돼야 하고 또 스스로 그간 위치하고 있던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첫 번째 부분에 대해선 많은 부분의 성취가 있었지만 두 번째 부분은 잘 안 됐다. 사실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일은 언론 스스로가 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 여당의) 권력으로부터 독립시켜 놓은 언론은 (야당과 함께) 직접 정치에 개입하는 쪽으로 일부 흘러갔다. 거듭 말하지만 언론 스스로 권력에서 내려와야 한다.”

-MBC 사장 시절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으로부터 정연주 KBS 전 사장과 함께 언론계의 ‘친노(親盧)인사’로 공격당하지 않았나. 친정부적 방송을 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 공격이 참으로 부당한 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가 MBC 사장으로 재직하던 3년이란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개입한 일이 없다. 노 전 대통령 이전에는 사실 방송사 사장들이 대통령과 국정 홍보방향 등을 조율하곤 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하다못해 지역MBC 사장 선임 등 인사권에 개입하거나 국정 홍보와 관련해 편집·편성권에 정치적 압력을 가한 일이 단 한 번도 없다. 당신께서 대통령이 되기 전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주장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저 역시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었고, 서로 그리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한숨) 오히려 불편할 때가 더 많았다. 황우석 사태나 러시아 유전 사건 등이 벌어졌을 때 노 전 대통령이라고 왜 (저와) 조율하고 싶지 않았겠나. 하지만 그리 하지 않았던 건 서로가 알고 있는 원칙 때문이었다.”

MB정권, 참여정부 ‘코드인사’ 주장하며 인격 파괴

-그렇지만 현 정권에선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의 ‘코드인사’를 문제 삼고 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나 신태섭 전 KBS 이사, 황지우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현 정권이 ‘코드인사’라 낙인찍은 이들은 모두 노 전 대통령처럼 인격을 파괴당했다. 정연주 전 사장 해임 사태 당시, 정부 여당은 KBS 사장 해임권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논란은 있지만 그 권한에 따라 해임을 하면 되지, 한 때 부하 직원이었던 이나 보수단체들까지 개입, 검찰 수사를 하고 감사원 감사까지 진행하는 등의 결과를 통해 (정 전 사장을) 비리인사로 만들지 않았나. 노 전 대통령 서거에서도 드러난 이 정권의 천박한 특성이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게 이른바 ‘코드인사’ 색출 작업에서다.”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방식으로 서거하게 된 데 권력화된 언론의 책임을 말했다. 그런데 현재 정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언론관계법 개정은 일부 언론 중심의 언론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 것이란 지적이 언론·시민단체로부터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내용의 언론관계법 개정은 안 되는 것이다. 민주당이 상주된 입장에서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치르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원내 대책을 세우진 못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언론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지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다시 한 번 드러났다고 본다. 우리 국민들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언론, 언론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는 언론을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드러났다. 산업 논리에 따라 함부로 언론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게 확인됐다.”

-언론관계법 개정 문제를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정부 여당은 그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서울광장 등의 조문을 통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 아니냐는 얘기들이 일부에선 나온다.

“또 다시 점화될 촛불에 겁을 내는 것 같다. 그렇더라도 국민들의 자발적 조문을 경찰로 막는 것은 용렬한 행위이고 규탄받을만 하다. 조문을 온 사람들이 시위를 하지 않는다. 시위의 우려가 있다고 하며 정부 스스로 자신의 옹졸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언론관계법 개정을 둘러싼 과정에서도 이처럼 정치 보복적 일방주의, 다수의 힘에 의한 횡포를 계속할 경우 불행한 사태는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적 질서와 국민을 존중하는 쪽으로 빨리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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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2009-05-26 18:16:49
조중동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언론 노조. 비열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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