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 쏟아지는 비난·원망이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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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PD협회 성명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관련 보도·편성 비판

KBS PD협회(회장 김덕재)는 25일 성명을 내 “온 나라가 깊은 슬픔에 빠진 지금, 우리는 KBS에 대해 터져 나오는 비난과 원망을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KBS 보도와 편성에 대해 쏟아진 비판을 지적했다.

PD협회는 “봉하마을에서 취재 중인 한 PD에 따르면 현장에는 MBC, SBS 중계차만 들어가 있을 뿐 KBS 중계차는 접근도 못하고 있고, 사람들은 KBS 취재진에 적대감을 드러내는 상황”이라며 “이는 국민들의 KBS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 ⓒKBS

협회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23일 KBS가 유일하게 주말 예능프로그램을 내보낸 것과 24일 대체 프로그램으로 코미디 영화를 편성한 것을 지적하며 “시청자들의 거센 비난을 자초하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KBS PD협회는 “이런 일은 단순한 편성상의 착오가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며 “현재 KBS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눈치 보기’와 ‘알아서 기는’ 것이 현명한 생존방식으로 여겨지고 있고, 지난 주말의 어이없는 사례들은 이런 사내분위기에서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는 결과”라고 꼬집었다.

PD협회는 “KBS의 편성과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간부들은 국민과 후배·동료 PD들이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며 “국민의 정서와 생각을 반영하지 못하는 공영방송의 앞날은 너무나 뻔하다. KBS가 자멸하지 않고 국민의 방송으로 남는 길이 과연 무엇인지 사장과 경영진은 제발 심사숙고하라”고 촉구했다.

다음은 성명 전문이다.

누가 KBS를 공적(公賊)이 되게 하고 있나?

지난 토요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였다.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

온 나라가 깊은 슬픔에 빠진 지난 토요일 이후, 우리는 KBS에 대해 터져 나오는 비난과 원망을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봉하마을에서 취재 중인 한 PD가 전해온 바에 따르면 봉하마을 현장에는 MBC와 SBS 중계차만 들어가 있을 뿐 KBS 중계차는 접근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은 “여기 모인 사람이 어떻게 150명밖에 안 돼?” “이런 날 꼭 코미디 영화를 틀어야겠냐?”라고 KBS의 방송내용을 비난하며 물병을 던지는 등, KBS 취재진에 적대감을 드러냈다. 위의 PD 역시 누군가가 던진 의자에 맞을 뻔했다.

격앙된 일부 사람들의 돌출행동일수도 있겠지만, 이는 국민들의 KBS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토요일 오후, ‘무한도전’ 등 오락프로그램을 긴급 대체 편성한 MBC와는 달리 KBS는 오락프로그램을 그대로 내보냈다. KBS 홈페이지 게시판에 시청자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일요일부터는 일부 프로그램을 대체 편성하기 시작했으나, 이 과정에서도 역시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저녁 오락 프로그램 시간에 ‘다큐멘터리 3일’ 재방송이 나가기로 결정되자, 제작진은 지난해 5월 같은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대통령의 귀환 - 봉하마을 3일의 기록’편이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편성본부에서는 이 편은 후에 내겠다며, 같은 프로그램의 다른 방송분을 편성했다. 그러나 편성이 다시 바뀌어 이마저 방송되지 못하고, 코미디 영화 ‘1번가의 기적’이 방송됨으로써 시청자들의 거센 비난을 자초하고 말았다.

지난 토요일, 'KBS스페셜’ 제작팀은 다음날인 일요일에 긴급방송을 하기로 결정하고, PD를 급파해 취재를 진행했다. 그런데 편성에서는 일요일 밤 8시 ‘KBS스페셜’ 시간에 뉴스특보를 내기로 했다고 통보해왔고 취재는 하루 만에 중단됐다. 하지만 8시 뉴스특보가 취소되면서 ‘KBS스페셜’ 시간에는 ‘차’와 관련된 내용이 긴급 편성돼 방송됨으로써, MBC와 SBS가 서거관련 뉴스를 하는 시간에 KBS는 1,2TV 모두 이를 외면하는 결과를 낳았다. ‘KBS스페셜’팀은 전 대통령 서거를 취재하고도 엉뚱한 이유로 인해 방송하지 못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2개 채널을 운영하면서 빚어질 수 있는 편성상의 단순한 착오인가? 편성 담당자들이 미숙해서 발생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요즘 KBS 직원들이 둘만 모이면 하는 이야기처럼, 현재 KBS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눈치 보기’와 ‘알아서 기는’ 것이 현명한 생존방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간부들은 아무도 어떤 결정도 하려고 하지 않고, 조직은 점차 무기력과 냉소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지난 주말과 일요일에 벌어진 어이없는 사례들은 이런 사내 분위기에서라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결과이다.

이런 사태는 위기가 아니라고, 오히려 편파방송이었던 KBS가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잠시 평온한 마음으로 현실을 직시하라. 철거민들이 불에 타 죽어나가도, 일국의 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져도 침묵을 강요당하는 방송이 누구에게 지지와 사랑을 받을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편성과 제작 현장에서는 일선 PD들과 간부들 간에 방송내용을 둘러싼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KBS의 편성과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간부들은 명심해야 한다. 국민들은 당신들의 결정을 매순간 엄정하게 평가할 것이다. 또한 후배이자 동료인 PD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다. 잊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정서와 국민의 생각을 반영하지 못하는 공영방송의 앞날은 너무나 뻔하다. KBS가 자멸하지 않고 국민의 방송으로 남는 길이 과연 무엇인지 사장과 경영진은 제발 심사숙고하라. 이 모든 책임은 당신들의 몫이다.

2009. 5. 25.
KBS 프로듀서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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