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작 부담이요? 인생사 다홍치마라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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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 부담이요? 인생사 다홍치마라잖아요”
[인터뷰]종영한 MBC 드라마 〈내조의 여왕〉 박지은 작가
  • 김고은 기자
  • 승인 2009.05.26 2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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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드라마 〈내조의 여왕〉이 지난 19일 33.7%(TNS미디어코리아, 수도권 기준)라는 자체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드라마가 끝난 뒤 마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지은 작가는 연이은 축하파티로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너무 좋다”는 말을 반복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내조의 여왕〉은 지난 3월 16일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밀려 8%라는 저조한 시청률로 시작했다. 그러나 다음날 두 자리 수를 찍더니 〈꽃보다 남자〉가 끝난 4월 6일 20%대로 껑충 올라서며 인기몰이를 했다.

“생각도 못했죠. 두 자리만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편성된 것만도 감사했거든요. 편성된 뒤에는 함께 해준 감독님과 연기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망했다는 소리만 안 들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너무 기뻤죠.”

▲ '내조의 여왕' 박지은 작가 ⓒ박지은 작가
처음 20%를 기록하자, 박 작가는 “세상 모두에게 고마웠다”고 했다. 작업실 창밖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단다.

“자주 가는 카페가 있는데, 점원들이 ‘〈내조의 여왕〉 봤어? 재미있지?’ 라면서 얘기하는 걸 듣고 귀가 쫑긋해졌죠. 그 다음부터 단골이 됐어요.(웃음) 또 한 번은 국회도서관에 갔는데 넥타이를 맨 아저씨들이 ‘토사구땡, 너무 웃기지 않아?’ 이러면서 얘기하는데, 정말 고마웠어요.”

“천지애의 힘, 김남주씨에게 상 주고 싶어요”

〈내조의 여왕〉은 직장생활에 대한 풍자, 맛깔스러운 대사와 개성 있는 캐릭터들로 인기를 끌었다. 다인 다색, 캐릭터들의 매력이 넘쳤지만 그 중에서도 박 작가가 유독 애정을 가진 캐릭터는 물론, 천지애다.

“천지애의 힘이 컸어요. 천지애라는 캐릭터가 김남주씨랑 잘 맞아떨어졌죠. 남주씨도 그러더라고요. ‘나 작두 탄 것 같아’라고.(웃음) 제가 쓴 대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정말 소화를 잘 해줬어요. 개인적으로 상을 주고 싶을 만큼 너무 고맙답니다.”

일명 ‘천지애 어록’으로 불린 토사구땡(토사구팽), 막장불입(낙장불입), 인생사 다홍치마(새옹지마) 같은 코믹한 대사도 인기를 끌었다. 김남주는 박 작가를 가리켜 “천재”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나 살고 싶어. 사는 것처럼 제대로 살고 싶어” 같이 일상적이면서도 울림이 있는 대사들도 드라마를 빛냈다. 이렇게 입에 잘 달라붙는 대사들은 라디오, 예능, 교양 등 다양한 장르에서 글을 써온 경험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다.

라디오 대본을 지금도 쓰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쓰고 싶은 건 그래서다. 박 작가는 MBC 라디오 〈골든디스크 김기덕입니다〉에서 음악드라마인 ‘음악에세이-노래가 있는 풍경’을 8년 동안 집필하고 있다. 신혼여행을 가서도, 산후조리원에서도 썼던 글이다. 그는 “사랑 얘기를 매주 쓰는데, 전혀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니까 연습도 되고 공부도 된다”고 전했다.

“내조는 희생 아닌 협력과 파트너십의 의미”

지금이야 ‘내조의 여왕’이란 제목이 여러 분야에서 패러디되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처음엔 사람들이 ‘내조’라는 단어에 고리타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조가 뭐예요?”라고 묻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내조’란 그만큼 낡은 단어였다.

박 작가는 “그래서 내 드라마 안에서라도 정의를 내려 보자고 했다”면서 “남편이 전날 술 먹었으니 콩나물국을 끓여주는 게 내조가 아니라 파트너십 같은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후에 제목을 패러디한 게 많이 나왔는데, 희생하는 게 내조가 아니라 도와주고 협력하는 의미로 다시 쓰이는 것 같아서 좋았다”고 덧붙였다.

▲ 지난 19일 자체 최고 시청률로 막을 내린 '내조의 여왕' ⓒMBC
〈내조의 여왕〉에는 불륜과 같이 드라마에서 흔히 쓰이는 코드나 대기업 사장이 기혼여성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등의 판타지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의미 있었던 것은 뻔한 설정을 뻔하게 전개하기보다는 직장 내의 암투, 부부관계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며 인간과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줬다는데 있다.

박 작가는 결국 “부부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부애는 무엇인지, 부부의 의리는 무엇인지 보여주려고 했다”면서 “30,40대가 결혼해서 살아가며 겪는 고난이랄까 장애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치유할지 얘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제 “〈내조의 여왕〉 언제 끝나?”라며 보채던 다섯 살 딸아이를 돌볼 참이라는 박 작가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스스로도 배운 게 많은 듯 했다.

“드라마를 쓰는 동안 힘들었는데 남편이 잘 도와줬어요. 보이지 않게 아이랑 잘 놀아주고, 잔소리 안 해주는 것만도 고맙더군요. 앞으로 저도 남편 술자리가 있을 때 자주 전화 안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딴 짓 안 한다고 믿어주는 것만도 고마운 거구나, 싶었죠. 부부관계에 대해 스스로 많이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자판 두드릴 수 있을 때까지 글 쓰고 싶어”

드라마가 끝난 지 이제 1주일 남짓 됐지만, 박 작가는 벌써부터 “다음 작품을 빨리 하고 싶다”고 한다. “제 드라마를 보는 게 너무 좋아요. 어떻게 나왔을까 기대하고,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그 순간을 다시 또 맛보고 싶은 욕심도 나요. 오래 쉬긴 싫어요.”

〈칼잡이 오수정〉에 이어 두 번째 드라마로 대박을 쳤으니, 제작사나 방송사들이 박 작가를 오래 쉬도록 둘리는 없다. 벌써부터 ‘시즌2’에 대한 요구는 물론, 차기작에 대한 러브콜도 벌써부터 잇따르고 있다. 부담도 될 터인데, 박 작가는 “인생사 다홍치마라지 않냐”며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을 테니 붕 뜨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제 인생의 모토가 가늘더라도 길게 가자예요. 자판을 두드릴 수 있을 때까지 글 쓰고 돈 벌어 살고 싶어요. 김수현 선생님처럼 뭘 써도 되는 사람이면 오히려 부담이 되겠지만 그게 아닌 걸 스스로 알기 때문에 부담을 안 가지려고 해요. 덜 주목 받더라도 그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을 만큼만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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