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중계권과 독일인들의 여가 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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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베를린=서명준 통신원

일하는 사람들이 한 주 동안 절실히 기다리는 시간은 바로 주말이다. 이때 온가족이 함께 모여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집 앞 공원을 산책하거나 자동차 세차도 하는 것은 일종의 관례다. 독일에서는 여기에 축구가 빠지지 않는다. 주말이면 축구팬들은 볕 좋은 야외에 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축구중계방송을 들으며 향이 좋은 커피나 맛좋은 맥주를 마신다. 강물에서 헤엄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라디오에서 경기종료를 알리면 이들은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간다. 토요일 저녁 6시 15분경에 시작하는 공영방송 아에르데(ARD)의 스포츠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인 〈스포츠샤우〉(Sportschau)를 보기위해서다.  한가로운 주말을 거부하고(?) 아침 일찍부터 직접 경기장으로 향하는 축구팬들도 있다. 이 열혈팬들에게 경기가 있는 날은 아침식사를 간단히 해결하고 경기장으로 바로 출발하는 분주한 날이다. 이런 날에는 아우토반(Autobahn)조차도 원정응원을 떠나는 축구팬들로 막힐 정도다. 하지만 경기관람이 끝나면 맥주와 함께 〈스포츠샤우〉를 시청하며 저무는 주말을 한가하게 즐기기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평안했던 주말이 올해 들어 불편하게 바뀌고 있다. 독일프로축구협회(DFL)가 분데스리가 1·2부리그 경기일정을 금요일부터 토, 일 그리고 월요일까지 늘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월요일 저녁경기는 축구팬들이 정말 원하지 않는 날이다. 이렇게 경기 일정을 무리하게 늘린 것은 TV중계료 수입을 현재 약 4억 유로에서 5억 유로 이상으로 증대시키기 위해서다. 이 액수는 한때 미디어황제였던 레오 키르히(Leo Kirch)가 약속했던 규모에 가까운데, 경기일정을 늘려 더 많은 TV방송사에 중계권을 판매해서라도 수입을 늘리려는 영업전략이다. 여기에는 많은 방송사에 중계권을 판매하면 연방독점관리청의 독점판매 기준을 피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그러나 문제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주요 민영방송사들이 선뜻 중계권 구입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주요 민영채널인 에르테엘(RTL)과 자트아인스(SAT.1) 등은 축구중계가 광고수입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긴 경기시간에 비해 휴식시간이 짧아서 광고수익이 적고, 화면에는 경기장을 종횡무진하는 축구공만 비춰질 뿐이어서 광고효과도 미미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중계료가 너무 비싸다는 의견도 있다. 루퍼트 머독처럼 해외에서 축구중계로 막대한 돈을 번 경우라야 비싼 중계료를 지불할 것이라는 비난이다. 최근 머독이 독일 유료TV 프레미어레(PREMIERE)의 지분 25%를 소유하기에 이르렀으니 중계권 구매에 가장 적격이지 않겠느냐는 반문이다. 

 이런 반발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 먼저 독일 축구의 가격(?)은 해외축구에 비해 저렴한 편이지만, 그래도 탄탄한 시스템에 기반해 있다. 자신이 속한 클럽과 선수를 진심으로 아끼고 재정지원도 하는 모범적인 스포츠정신을 갖춘 팬들이 많다. 또 로만 아브라모비치(Roman Abramovich)처럼 다소 의심스런 부의 축적방식으로 인해 구겨진 체면을 축구사업으로 만회하려는 부정적인 투자사례는 아직 없다. 나아가 거대자본에 대한 깊은 불신과, 축구가 신체적·정신적 건강 증진을 위한 도구라는 스포츠정신이 유지되고 있다. 무엇보다 남녀 어린이·청소년들이 축구를 아주 좋아하고 즐긴다.

▲ 베를린=서명준 통신원/ 독일 베를린자유대 언론학 박사과정

오늘날 축구를 건실한 스포츠 도구로 활용하는 독일 국민정서 형성에는 〈스포츠샤우〉가 기여한 바가 크다. 평화로운 주말의 관례가 되어버린 공영방송의 〈스포츠샤우〉는 스포츠의 ‘자본화’를 막아내고 스포츠정신을 지키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윤극대화를 위한 DFL의 중계권 사업전략에는 스포츠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방영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스포츠 자본의 욕구는 축구팬들이 누려온 주말의 평화를 방해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독일방송국가협약에 명시된 단신보도권에 따라 〈스포츠샤우〉와 같은 ‘순수’ 스포츠 프로그램들이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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