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떠나는 촬영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일로 가게 되는 인도지만, 늘 여행을 다니듯이 떠돌아다닙니다. 인도에서 얻은 게 참 많습니다. 가장 큰 얻음은 별 볼일 없었던 다큐멘터리스트에게 관심을 가져준 아내를 만났다는 것이죠. 일 년의 연애 뒤, 2002년 북한산 자락에서 결혼식을 했고 2년 전엔 딸아이까지 얻었습니다. 인도가 직접 내게 무엇을 준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정말 많은 것을 인도를 통해 얻었습니다. 지금 그나마 누리고 있는 경제적인 여유도 인도를 통한 것이었으니까요. 지인의 블로그에서 여행에 관한 짧은 글 하나를 읽었습니다.
trip은 경쾌하게 걷는다는 뜻입니다. tour는 회전도구처럼 돌고 도는 것, 즉 漫遊나 유람을 의미합니다. voyage란 말에서는 인생처럼 길고 긴 항해가 떠오릅니다. 나의 여행은 대개, 애써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travel입니다. 물론 가끔은 운동화 끈을 가볍게 당겨 묶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excursion을 즐기기도 하지만요. 당신의 여행은 어떤 종류입니까? 애써서 가다. 오늘도 나는 travel 중입니다.
- ‘카피최의 여행일기’ 중에서
저의 여행은 경쾌하게 걷는 trip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니다보니 tour가 되더군요. 지금은 애써서 찾아가는 travel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바라는 여행은 인생처럼 길고 긴 항해인 voyage이고 싶어집니다. 인도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인터넷에 이런 저런 글을 올립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인도는 어느덧 제게 직업이 됐습니다.
trip이고 싶었고 tour로 유유자적하고 싶었고 어떤 때는 애써서 가는 travel이었습니다. 가끔은 인도로 가출하기도 합니다. 그건 excursion이었던 셈입니다. 딸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닐 나이가 되면 인도에서의 voyage를 즐기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요원한 꿈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다닐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지녔다는 점으로 본다면 저는 무척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인도 여행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행이라기보다는 직업적인 떠남이니까, 일반적 기준으로 보면 분명 여행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일과 오락을 늘 같이 생각하는 편인지라 일이 제게 오락이고 오락이 제겐 일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번 인도로의 떠남도 여행이라 할 수 있지요. 카메라를 닦습니다. 제겐 소중한 무기이죠. UV필터를 닦는데 뭔 일인지 금이 갑니다. 불안해집니다. 이번 떠남은 이상한 불안감이 내 가슴 한 귀퉁이에 숨어져 있습니다. 그것의 정체는 아직 모릅니다. 지금 인도에서의 테러 위협이나 폭력의 위협은 지금까지 제 경험에 의하면 아주 가벼운 정도에 불과합니다.
참 많은 위험들이 있었습니다. 마약 조직에 인질로 잡히기도 했고, 폭력 조직원들과의 육박전은 일상처럼 되어 버렸고, 아주 오래전엔 총격전 한 가운데에서 카메라를 붙들고 벌벌 떨기도 했고 총구가 제 입안으로 들어 온 적도 있었죠. 말라리아는 두 번이나 걸렸습니다. 그 밖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열병에 노출되어 일주일 동안 사경에 헤맸습니다. 그래도 참 꿋꿋하게 다녔습니다.
모두 아내와 만나기 전의 일입니다. 21개월 된 딸아이가 자꾸 눈에 밟힙니다. 멀쩡한 필터에 금이 갔습니다. 거울이 깨지면 그건 흉조라고 말합니다. 지금 작성하고 있는 촬영 기획서가 마치 유서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일인지요. 이렇게 되면 이번 인도로의 떠남은 애써서 가는 travel이 되나요? 카메라 필터를 내일 주문해야겠습니다. 인도로 갈 짐을 싸야겠지요. 창문을 열어보니, 새벽바람이 눈동자로 파고들어 눈물 한 방울을 맺히게 합니다. 이제 ‘아빠’ 소리를 내는 딸아이가 많이 보고 싶습니다. 그렇군요. 딸아이가 저를 붙잡고 있는 눈물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