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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편협한 인간사 그려

|contsmark0|공대 다닌 남자들과는 말도 섞기 싫게 만든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가 대학에 와서 우연히 만나게 된 친구다. 화공과를 다녔고, 같은 과 선후배 동기들과 무지 친하고 매일 저녁 신촌의 허름한 술집골목에서 개떼처럼 모여 과가나 응원가를 부르는 무리 중에 늘 끼어있던 놈이다.
|contsmark1|녀석은 변리사 준비를 한다며 9년째 학부생으로 신촌에 남아있다. 9년간 꾸준히 곁에 있는 친구임에도 둘이서 술집에라도 마주 앉아있으면 할말이 무지하게 없는 놈이다. 9년 째 그는 내 앞에서 항상 어눌하고 왠지 주눅이 들어있으며 난 그 앞에서 항상 따분하고 한심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contsmark2|그러던 녀석이 얼마 전부터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자신이 원래 그렇게 따분하고 지루한 사람이 아닌데 내가 자신을 그런 식으로 봐왔기 때문에 꼼짝없이 9년을 그렇게 갇혀 지냈다는 주장이다. 어림도 없는 소리 하덜마라고 제압했지만, 분명히 존재해왔던 미묘한 부분을 녀석이 감지했음을 알았다. 9년 세월을 너머 무형으로 존재하던 미끌미끌한 진실이 밝혀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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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쥐스킨트의 ‘향수’엔 희대의 향수제조자가 나온다. 그의 코는 대기 중에 스치는 모든 냄새의 성분과 함량과 그 섞인 비율을 모두 분석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contsmark6|하지만 그는 18세기 파리의 무식한 하층민일 뿐. 당시 파리 제일의 향수제조자는 우연히 그를 하인으로 부리게 되고, 어느 날 그의 엄청난 능력을 알게된다. 하인에게 관념으로만 존재하던 최고의 향수를 만들게 하고 하인은 하룻밤만에 뚝딱 만들어낸다.
|contsmark7|주인은 그날 밤 그의 작업과정을 훔쳐본다. 근데 온갖 비이커와 화학기구를 사용해 백만분의 일그램 까지 측정하여 공식을 만들던 주인이 환장할 지경이 되어버린다. 하인은 냄새를 맡고는 엄마들이 국 간 맞출 때 식초조금 간장조금 넣는 식으로 최고의 향수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몇날며칠 이 믿을 수 없는 일을 두고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던 주인이 하인에게 명하길, 국 간 맞추듯 하던 그 공정을 자기의 화학기구들을 사용해 자신이 사용하는 용어와 단위로 표현해 공식을 만들라 한다. 그리고 그 공식이 적힌 종이를 손에 받아들고 주욱 읽고 나서야 그 주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짜아식, 별거 아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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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0|자신의 이해방식으로 세상을 담아 놓아야만 안심을 하고마는 이 편협한 인간들. 내 친구 공돌이는 내 공식에 갇혀 얼마나 억울했을까. 얼핏보면 꼭 맞는 것 같은 판단들이 얼마나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 때문에 자신도 좁아지며 상대를 억압하며 무시무시한 폭력까지 낳고 마는 해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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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3|<매그놀리아>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손이 축축하고 차가워진 상태로, 불안정한 심장박동을 들으며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contsmark14|세 가족 얘기가 번갈아 나오는데, 서로들 신물이 나게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증오하는 사람들이다. 돈 많고 나이 많고 게다가 오늘 내일하는 영감의 젊고 아름다운 새 부인이 있다. 그녀는 너무도 전형적인 악녀로 보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가 영감을 너무도 사랑하고 있음을, 그를 잃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게된다. 그녀의 얼굴이 너무도 달라 보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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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7|영화가 흘러간 시간동안 그녀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그녀를 오해했음을 사죄하고 싶은 순간이다. 남은 한 시간 동안 그녀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순간이다. 그리고 그 영감은 그를 헌신적으로 돌보던 간병인의 실수로 죽게된다. 간병인은 그의 침대에 엎드려 펑펑 울고 있다. 자신이 그를 죽였음은 꿈에도 모르면서. 그렇게 예쁜 간병인 청년을 어찌 미워하리요. 악녀와 살인자에 대한 상반된 이해와 오해가 가슴을 때린다. 자신을 성추행 하려했던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와 아들. 끔찍히도 서로를 증오하며 세월을 보낸 그들은 과연 화해할 수 있는 것이며,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지.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 라며 해명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과거는 그대로인데 남아있는 사람끼리의 화해는 어떻게… 순간 답답함의 폭발직전에 하늘에선 개구리비가 내린다. 개구리비의 의미가 어쩌고 저쩌고, 이 황당함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나 하기 전에 이미 그냥 터져 나오는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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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0|첩첩이 쌓인 미움의 층들은 서로에 대한 공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미움은 대상이 어떤 놈이다라고 정의 내려야만 살아남는 감정이 아닐까, 대상을 열어두고 대하면 우주가 보이는데, 자신의 공식으로 가둬두고 보았기 때문에 함께 한 시간에 관계없이 한가지 이름이 붙는 미운 사람, 심심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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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3|사람을 만나서 사귈 때, 난 늘 같은 장애에 부딪친다. 엄청난 고질병인데, 처음에 그리 좋고 그 사람 안에 우주가 있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이 되면 왜이리 평면이 되어버리는지. 그 사람도 평면, 관계도 평면, 그 사람 앞의 내 모습도 평면. 그러다 실마리를 잡는다. 잘 될지 모르지만, 대상을 열어두고 보려는 연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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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6|상대방이 고기집에서 고기는 안먹고 양파만 먹는다면 먼저 별명부터 만들고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지 진짜 궁금해하는 연습? 아줌마들과 얘기할 때 그런 연습이 충분히 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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