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앞 전경차? 예의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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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앞 전경차? 예의 아니다”
[인터뷰] ‘MBC 스페셜-대한민국 대통령’ 조준묵 PD
  • 백혜영 기자
  • 승인 2009.05.30 2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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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자는 아니었다. 2002년 대선 때도 다른 후보를 찍었다. 참여정부 임기 동안 비판도 참 많이 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은 지난 23일 이후 3일 동안 술만 마셨다.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마음이 너무 불편해서”. 결국 26일, 봉하마을을 찾았다. 의외로 봉하마을까지 가는 길은 쉬웠다. 이렇게 쉽게 올 수 있는 곳을 그동안 왜 오지 않았을까 미안함이 앞섰다.

지난해 2월 〈MBC 스페셜〉 ‘대한민국 대통령’을 방송한 이후에도 가끔 봉하마을에 내려가 있는 비서관과 서로 안부를 물었다. 주말에 오면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 대통령이 시간 내줄 거란 말을 들었다. 그런데 결국 처음 봉하마을을 찾은 것이 노 전 대통령을 조문하는 길이 됐다.

솔직하고, 소탈하고, 유머러스하고, 토론 좋아하고…참 매력적인 사람”

노 전 대통령 영결식 전날, ‘대한민국 대통령’ 재방송을 위해 재편집을 막 마치고 온 조준묵 PD를 만났다. 지난해 2월 방송된 ‘대한민국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마지막 100일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제작진은 3개월 동안 노 전 대통령을 밀착 취재했고,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줬다. 대통령 집무실, 서재 등 청와대 내부도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 〈MBC 스페셜〉 ‘대한민국 대통령’에 출연했던 故 노무현 전 대통령 ⓒMBC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진 않았다.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아니어서 프로그램이 가능했다”는 조 PD는 “그런데 프로그램을 하면서 노 전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왜 그를 좋아하는지는 알겠더라”고 말했다.

“대통령으로 짧게 봤지만, 참 매력적인 사람이었어요. 솔직하고, 소탈하고, 유머러스하고, 토론 좋아하고…. 주변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노 전 대통령의 솔직하고 소탈한 성격은 촬영하는 동안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촬영 당시 조 PD는 대통령에게 예고하고 질문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지나가는데 갑자기 마이크를 들이댔고, 아무데서나 인터뷰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질문 공세는 이어졌다. 처음에는 조 PD의 행동에 놀란 경호원들이 그를 제지하기도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괜찮다”며 조 PD의 취재를 막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나중에 ‘저 친구는 아무 때나 인터뷰를 한다’면서 웃으시던 게 기억나요. 대통령이 준비되지도 않았는데 즉흥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그랬죠. 그런데도 인터뷰에 응해줬고, 그게 노 전 대통령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인 것 같아요.”

사석에서 주고받은 말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성격은 그대로 드러났다. 조 PD가 “시장 같은 곳에 나가 국민들과 악수도 하고 얘기도 하면 좋지 않으냐”고 묻자 바로 “쇼인데 그걸 뭐하러 하느냐”는 노 전 대통령의 답변이 돌아왔다. “나가면 세팅 다 돼있고, 짜고 치는 건데, 가서 보는 것이 진실도 아니지 않느냐”며 “전시행정이 제일 싫다”는 것이 이유였다.

“정치인보다 일반인이 되고 싶었던 사람”

▲ 조준묵 MBC PD ⓒMBC

조 PD는 “프로그램에도 나왔지만 노 전 대통령은 정말 촌에 내려가 살려고 한 사람”이라며 “정치인보다 일반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중에 그런 내용이 있어요. ‘5년 동안 격리돼 살았는데 여기 나가면 또 격리돼 살지 모르겠다. 대통령한 순간 자신은 격리된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어떻게 옛날로 돌아갈 수 있겠나. 그게 너무 싫다’. 봉하마을 가서 한 일을 보면, 그런 걸 넘어서려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또 다시 격리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조 PD는 “말하기, 글쓰기 좋아하고 책 읽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게 됐다고 했다. 그게 딱 그 사람 상황 아니었겠느냐”며 “그렇게까지 몰아붙인 건 정말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이 부끄러움이 뭔지 아는 사람을 계속 상처냈고, 결국 죽음으로 몰고간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 PD는 이어 서울 광장을 봉쇄하고, 시민 분향소가 차려진 덕수궁 주변에 경찰버스를 배치한 현 정부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지금 이명박 정부의 태도는 올바르지 않다”며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국민들의 표 덕분에 대통령이 된 사람이잖아요. 대통령이 되면 그 표가 우스워지는 건가요. 국민들 중 절반이 슬프다는데 최소한 편의 시설은 제공해야 하는 게 국가 아닌가요? 어떻게 덕수궁 주변에 전경차를 배치할 있습니까. 그건 정말 졸렬한 짓이죠.”

조 PD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메신저 아이디를 바꿨다. ‘이 시대를 잊지도 말고 용서하지도 말자’로.

“이 시대를 국민들이 정확하게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기억하지 않으면 계속 반복됩니다. 말로만 민주주의, 정치 탄압 외칠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기억하고 있어야 반복되지 않습니다. …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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