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의 책읽기 - 댄 헐리의 ‘60초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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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의 책읽기 - 댄 헐리의 ‘60초 소설’
“거리의 소설가가 쓴 2만2613명의 인생 이야기”
  • 승인 200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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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근자에 우리나라에서도 엽편소설이라는 것이 몇몇 문학잡지를 통해 소개되고 또 그러한 형식을 글쓰기 작업으로 연계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엽편소설의 문체 실험은 다소 모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 원고지 30매 전후의 짧은 소설은 외국에서도 널리 창작이 되었다. 물론 철학적인 사유를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여하튼 요즘 짧은 소설이 유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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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전세계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는 60초 소설가 댄 헐리. 이 작가는 독특한 인물이다. 히피처럼 머리를 기르고, 독서광에다, 대학시절에는 음악그룹을 결성해 노래를 부르기도 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접는 의자와 1953년형 로얄 타자기를 들고 뉴욕 맨해튼 거리로 나앉는다. 그리고 그는 약물중독자, 노숙자, 사랑에 빠진 연인들, 연인을 잃은 사람들, 불륜에 고민하는 여인, 정신병자, 아이들 등등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그가 만난 사람은 2만2613명. 그리고 댄 헐리는 그들에게 ‘60초 소설’을 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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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 사람들의 사연을 들은 다음 즉흥적으로 떠오른 이야기를 60초동안 타자기로 처넣었다. 타자기에 먹지를 대고 쳐내려가 한 장은 그가 만난 사람에게 건네주고, 한 장은 자신이 가져서 ‘60초 소설’이라는 책으로 묶어 냈다. 이 짧은 소설들은 피플 지, 뉴욕타임스 등의 찬사를 받았고, 1995년 미국 기자 작가 협회가 수여하는 도날드 로빈슨 문학상을 받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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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60초 소설’은 이런 식이다. 댄 헐리가 여느 때와 같이 맨해튼의 콜럼버스 애비뉴와 72번 가가 만나는 지점에 앉아 있는데, 중년 남자 둘이 검은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걸어왔다. 한 남자는 깡말랐고, 다른 남자는 배가 불룩한 뚱보. 그리고는 대뜸 “‘미지근한 맥주와 형편없는 음식’이라는 이름의 술집에 대한 이야기를 한 편 써주시오. 이것이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는 전부요. 그냥 써주시오.” 이렇게 말하면서 60초 소설 한 편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되지만 두 명 가운데 깡마른 축이 로큰롤의 악동 엘리스 쿠퍼였다. 그래서 댄 헐리는 이렇게 60초 소설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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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모든 것에 완전히 실패한 남자가 있었다-그는 패배감과 세상의 분노를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다-그래서 술집을 열었다-‘미지근한 맥주와 형편없는 음식’이라는 이름의 술집을-그런데 모두 그 술집 이름에 매혹되었다-그 대담성과 엉뚱함과 직설적인 표현을 맘에 들어 했다-사람들은 그것이 한 남자의 완벽한 자기 표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자신의 패배감을 완벽하게 표현했던 것이다-그리고 그는 실패로써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38∼39쪽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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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5|60초 소설은 이런 식의 이야기다. 댄 헐리라는 사람이 ‘60초 소설’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파격적인 글쓰기를 했다는데 의미도 있지만, 이 책이 갖는 색다른 의미는 댄 헐리라는 작가가 고루한 작업실을 거리라는 공간으로 개방했다는 점에 있다. 자본주의적 현대성이 물결치는 거리에서 그는 기특하게도 인간적으로 뭇사람들을 만난다. 마치 첨단 빌딩사이에 ‘묵상의 공터’를 마련하듯이. 그는 자본의 길목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존재론적인 메시지를 끊임없이 들려준다. 애린 같은 것이라고나 할 법한 긍정적인 밥을 그들에게 먹여준다. 요즘 같은 세상에 더구나 자본주의의 폐악이 상당부분 노출된 미국의 거대도시 한복판에서 그가 보여준 사람에 대한 애정은 그래서 눈물겹기까지 하다. 그가 사람을 만나는 방식은 요즘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하는 방식과는 사뭇 달라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댄 헐리는 요즘도 사람을 만나고 있다.
|contsmark16|인터넷으로도 그의 홈페이지를 방문할 수 있다. 댄 헐리는 인터넷 채팅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60초 소설을 쓰는 인터넷 사이트 ‘www.insta ntnovelist.com’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사이트는 한 달에 500만 명 이상이 찾는 미국 최고의 인기 사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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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9|‘60초 소설’의 표사에서 자유기고가라고 밝힌 제니퍼 킹 무디가 참 멋진 말을 했다. “한 사람이 죽으면, 하나의 도서관이 불에 타버리는 것과 같다”고. 게다가 모든 사람, 모든 얼굴은 하나의 이야기라고. ‘60초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인간에 대한 지독한 사랑이 무엇인가, 얼핏 이런 고민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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