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음악으로 허기진 마음 달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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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 시즌3 ] ⑪ KBS 쿨FM ‘심야식당’ 윤성현 PD

새벽 2시, 류이치 사카모토의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가 흐른다. 차분한 음악에 잠시 몽롱해지는 순간 어디선가 야채 써는 소리가 들려오고, ‘드르륵’ 문 여는 소리와 함께 KBS 쿨FM(89.1MHz) 〈심야식당〉은 청취자를 맞이한다.

식당 주인은 연출과 진행을 겸하고 있는 윤성현 PD. 그는 “심야 프로그램 청취자들은 실제 배가 고픈 사람도 있고 음악이나 마음, 사람, 이야기 등 무언가 허기진 사람들”이라며 “이름 그대로 출출한 새벽 분식집을 찾는 기분으로 가볍게 주문(신청)하면 음악으로 허기를 채워주는 방송”이라고 말한다.

윤 PD는 “‘심야식당’이란 제목이 그냥 들으면 별로 인 것 같지만, 가치중립적이고 멋있는 척 안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면서 “어떤 식으로 채색하느냐에 따라서 모던하고 시크한 느낌도 갖는다”고 설명했다. 직접 영향을 받은 건 아니지만 동명의 일본 만화 ‘심야식당’(아베 야로 작)도 그가 추구하는 프로그램의 분위기와 꼭 들어맞았다.

▲ 윤성현 KBS PD

방송 한 달여. 시청자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보니 청취자들은 대개 윤 PD를 ‘윤 이모’라고 부른다. 식당이란 점에 착안해 자연스럽게 붙은 호칭이다. 윤 PD는 “맘에 안 들 땐 ‘윤 계모’라고도 하고 셰프, 마스터, 매니저, 주인장 등 다양한 호칭이 있다. 그런 생각 하나 하나가 재밌다”면서도 “사실 다 마음에 안 든다. 식상하다”고 토를 단다.

가만보니 이 남자, 까칠하다. 하긴 그가 만든 사이버 DJ 윌슨도 까칠한 매력으로 청취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새삼스럽지 않다. 윤성현 PD는 〈심야식당〉에 앞서 1년 반 동안 국내 최초의 사이버 DJ 윌슨을 내세운 〈올댓차트〉를 연출했다.

사이버 DJ ‘윌슨’을 보내고 직접 마이크를 잡다

독특한 매력 탓인지 일부 청취자들은 여전히 ‘격하게’ 윌슨을 찾기도 한다. 윤 PD는 “윌슨은 프로젝트성 기획이었기 때문에 1년 반이나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며 “윌슨을 언제 그만둘지 항상 고민했고, 식상해지기 전에 그만둬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리워하는 팬들이 있는 걸 보면 적당한 시점에 정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윌슨 내놓으라’고 욕하는 분들은 대부분 〈올댓차트〉 마니아”라며 “그분들도 제가 연출자이고 윌슨을 만든 걸 알기 때문에 그 분위기를 그대로 받아들인 〈심야식당〉으로 흡수된 측면도 있다”고 말을 보탰다.

하지만 마이크를 잡고 청취자와 직접 소통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윤성현 PD는 “윌슨은 ‘가상 DJ’라는 점 때문에 기괴하고 독특한 캐릭터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지만, 이걸 직접 말로 하니까 ‘얄밉다’, ‘더 재수 없다’는 반응도 있다(웃음)”며 “원래 성격대로 까칠하고 거침없이 말하는 건 그대로지만, 윌슨 때보다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올댓차트〉부터 〈심야식당〉까지 윤성현 PD는 연출 뿐 아니라 작가, DJ 역할을 혼자 도맡고 있다. “프로그램과 유기체가 돼 기획의도를 100%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훨씬 큰 제작 부담”은 그가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다.

또 하나. 그가 맡은 심야 프로그램들은 ‘음악’이 중심에 선다는 공통점이 있다. 윤성현 PD는 “모든 프로그램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새벽 2~3시 방송되는 〈심야식당〉은 DJ 멘트보다 음악이 주가 돼야한다고 생각 한다”면서 “진행자가 말을 뛰어나게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중간 멘트는 2분을 넘지 않게 한다”고 말했다.

〈심야식당〉은 대체로 신청곡으로 채워진다. 그러다보니 ‘동방신기’부터 레이첼 야마가타까지 다양한 곡들이 소개된다. 가끔은 신청곡을 받지 않고 DJ가 마음대로 고른 ‘특선메뉴’를 선보이기도 한다. 밸런타인데이 때 우울한 사람들을 위해 ‘밸런타인 데이 따위 개나 줘버려’ 특선을 내보내는 식이다. 윤성현 PD는 “다른 것도 그렇지만 특선메뉴의 경우 정말 심혈을 기울여 감정선을 건드리는 선곡을 한다”고 강조했다.

매주 월요일 앨범 ‘전곡듣기’ … “라디오,  아티스트 창구 역할해야”

매주 월요일에는 앨범을 하나 골라 전곡을 듣는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한다. 청취자들의 호응이 뜨거운 코너다. 윤 PD는 “여전히 공들여 앨범을 만드는 싱어 송 라이터나 밴드들이 있지만, 음악은 싱글단위로 소비되는 세태”라며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이 이러한 아티스트들의 창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성현 PD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방학 때면 온종일 라디오를 듣는 ‘라디오 키드’였다. 당시 그를 이끌었던 라디오의 매력은 “내가 이 프로그램의 가족”이라는 ‘소속감’이었다. 지금 〈심야식당〉을 찾는 청취자들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출출한 새벽, 그곳을 찾아가면 익숙한 DJ와 사연을 공유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기대 말이다. 오늘도 새벽 2시면 어김없이 <심야식당>의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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