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탄 화력도 잠재운 애도 분위기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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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이 본 노 전 대통령 서거] LA=이국배 통신원

상식에 속하는 이야기이지만, 특정 국가의 문화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그 나라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기초적인 의사소통 수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특정문화에 대한 이해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언어에 대한 이해를 확보한 후 ‘현장’이라는 같은 공간에 위치하면, 그래서 일시적이나마 부분적인 생활세계를 공유한다면, 특정 문화 현상의 본질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충분치는 않은 것이 문화에는 단지 공간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 축적이 동시에 존재한다. 즉 ‘일정한 시간’을 특정한 공간 내에서 공유하지 않으면, 역사라는 물결의 흐름 속에 동시적으로 있지 않으면, 특정의 문화 형태를 이해하거나 해석하는데 한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취재하는 미국 언론들의 어려움은 여기에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자살’이라는 대한민국 정치사의 전대미문적 형태를 지녔기 때문에, 이 서거의 정치적, 문화적 의미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도무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부정혐의로 인해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되던 노 전 대통령이 서거 이후에 어떻게 해서 수십만의 국민을 6월 항쟁이나 월드컵 4강 신화에 버금갈 만큼의 거대한 광장으로 이끌어 낼 수 있었는지, 운구행렬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노란 물결의 한국 국민들은 어떠한 이유에서 그토록 슬픔과 분노를 한결 같이 토로해 냈던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민들은 지난 대선에서 왜 현 정권을 선택했던 것인지, 어느 미국의 언론사 기자가 서울 특파원으로 처음 발령받아 취재에 들어갔다면, 그 기자 평생에 이처럼 해독하기 어려운 취재 대상은 별로 많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 故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보도를 하고 있는 미국 뉴욕타임즈 기사 <사진제공=뉴욕타임즈>
이러한 의미에서 미국 언론들이 “죽음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다시 한 번 되돌린 노무현 전 대통령”(뉴욕타임즈 5월 29일)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본질을 전달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길을 가는 “전 대통령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한국 국민들”(CNN 5월 29일)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현상을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아시아 국가들의 사회현상”(CNN 5월 26일)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도덕성을 마지막 보루로 삼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의 취급을 대중들로부터 받는 것에 대한 극단적인 모욕감”(워싱턴포스트 5월 29일)으로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돌파구를 선택했다는 개인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을 해야 하는 것인지, 나아가 “한국과 일본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불명예의 끝에서 영예로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모든 문제들을 일시에 해결해 버리는 전통”(뉴욕타임즈 5월 29일)을 갖고 있다는 역사 문화적인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접근방식 자체의 선택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언론의 입장에서는 광장에 모여든 수십만의 한국인들이 어떤 이유에서 “슬픔과 분노의 복합된 감정”(뉴욕타임즈 5월 25일)을 갖게 되는 것인지, 집권기에는 그토록 조롱하고 실망하던 전 대통령에 대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한국의 정치 관례를 볼 때 검찰이 직권남용을 했다”(워싱턴포스트 5월 29일)며 분노하는 것인지, 이 역시도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정서였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언론은 대한민국에서 “무엇이 올바른 도덕이며, 법인지 되묻게 된다”(뉴욕타임즈 5월 29일)고 토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미국 언론의 이 같은 보도들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서울 현지 기자들을 통해 보도된 일종의 번역 기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의 문화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미국의 독자나 시청자들은 마치 그것은 번역물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의 정서적인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LA=이국배 통신원/ KBS America 편성제작팀장
미국 언론의 충격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상황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관련 기사가 가장 많이 읽은 기사 1위를 여전히 유지했다”(CNN 5월 26일)는 사실, 그리고 “북한은 핵실험을 했지만, 한국 국민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전 국민적인 애도 속에서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는 사실”(CNN 5월 25일)에서 정점에 이른다.

핵폭탄의 엄청난 화력도 잠재워 버리는 온 국민의 엄청난 슬픔, 이에 대한 국제적인 이해를 구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면, 어쩌면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지극히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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