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과 돈,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영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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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포럼 2009’ 개막…촛불·여성·노동·동성애 등 다양한 목소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가 있던 지난달 29일. 촛불과 풍선이 빚어내는 노란색의 슬픔이 하늘을 뒤덮었지만, 서울 종로구 명동성당 옆에 위치한 중앙시네마에서는 국내 최대의 비경쟁 독립 영화제 ‘인디포럼 2009 : 주먹 쥐고 일어서!’의 개막식이 열렸다. 지난해 ‘인디포럼 2008:편대비행’이 열렸을 때 감독들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로 영화관과 시청 앞을 정신없이 뛰어다닌 것을 생각하면 올해도 묘하게 겹쳤다.

영화제를 주최한 사단법인 인디포럼 작가회의의 상임의장 이송희일 감독은 “작년에도 촛불 집회 때문에 관객이 적게 오는 게 아니냐며 걱정했었는데, 결국에는 감독 대부분이 거리로 나섰다”며 올해 영화제도 순탄치 않을 것을 암시했다.

올해로 14회를 맞은 인디포럼은 흥행과 돈, 권력에 의해 저울질되는 세태에 휘말리지 않고 공동의 삶을 함께 고민하는 독립영화 출품작 505편 가운데 55편을 엄선했다.

◇ 독립영화, 촛불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다

올해 인디포럼은 1년 전 촛불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했다. 개막작인 〈외출〉은 러닝타임 9분의 시간 동안 화장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마주친 전경과 시위대 간의 긴장감을 밀도 있게 그려내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인디포럼이 수여하는 ‘올해의 얼굴’에 촛불시위 당시 거리를 누빈 진보신당  ‘칼라TV’에게 영광이 돌아간 것 역시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이다. 대중들의 창발성이 독립영화의 빈자리를 채웠다는 게 주된 이유다. 또 인디포럼은 2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촛불 1주년, 독립영화의 길을 묻다’는 토론회를 통해 ‘한국사회 변화의 징후로서의 촛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 영화 <외출>
그러나 대체적으로 인디포럼 출품작들은 촛불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개인의 서사와 사회에 대한 성찰에 무게를 실었다. 이 같은 경향에 대해 남다은 프로그래머는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음을 인식하는 영화는 많았지만 그걸 냉소로 체념하거나 개인화해 버린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며 “그러나 개막작〈외출〉은 대부분의 영화들이 지워버린 촛불의 기억을 불러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을 끌었다”고 설명했다.

◇ 삶은 ‘팍팍’하지만 주먹 쥐고 ‘긍정’하자!

올해 인디포럼 신작전은 총 17개의 섹션에 걸쳐 소개됐다. ‘소심스레 심기일전’ ‘나는 나를 주먹 쥐고 긍정’ 등 섹션의 이름만으로도 영화 내용을 짐작케 하는 작품이 많았다. 출품작들은 갑갑한 현실에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그러나 결코 약하지 않게 세상을 조롱했다. 28살의 청년백수 현실을 익살스럽게 표현해 낸 〈청춘예찬〉이나 청계천에서 벌어지는 두 남자의 자전거 경주를 통해 공사장이 된 서울을 ‘건설파쇼’라는 은밀한 메타포로 그려낸 〈시합〉, 한 유통회사의 사장과 직원들의 권력관계를 체육대회로 풍자한 〈위대한 선수들〉 등이 바로 그랬다.

노동환경에 관한 진지한 성찰도 있었다. 434일간의 실패한 투쟁을 엮어낸 뉴코아 킴스클럽 계산대의 비정규직 아주머니들의 절절한 투쟁일지를 기록해낸 〈평촌의 언니들〉, 똑같은 건설 비정규직 노동자이지만 그 안에서도 한국인과 연변 동포로 나눠져 산업재해 보상에서도 차별을 받는 다는 점을 지적한 〈호명인생〉, 위장폐업 속에 기타를 만들어 내기 위한 국내 기타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고군분투기를 그린 〈기타(其他) 이야기〉 등은 이 시대 ‘노동’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졌다.

▲ 영화 <호명인생>
특히 〈호명인생〉의 최창환 감독은 “90%는 실제 경험담”이라면서 “영화를 찍기 위해서 일부러 막노동을 한 게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이런 것들을 많이 했다. 팔을 다치는 인혁(주인공)의 경험들이 영화에 녹아있다”면서 녹록치 않은 독립영화의 현실을 설명하기도 했다.

최근 독립영화계의 흐름 중에 두드러지는 밴드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됐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가 요조와 밴드의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불편한 관계를 다큐로 풀어낸 것이었다면, 〈더 밴드〉는 서툴기 짝이 없는 그래서 실패하게 되는 성장 영화를 보여줬다.

◇ 유쾌한 동성애, 애니메이션 관심도↓

해마다 계속된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는 이번엔 쉽고 유쾌하게 풀어냈다. “동성애는 이해하지만 내 아들은 안 돼”라고 말하는 한 고등학교 양호교사를 통해 동성애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이중적 잣대를 비꼰 〈이춘기〉, 야오이 만화를 즐기는 중년남자의 마조히스트적인 풋사랑의 경험을 다룬 〈플라토닉 펀치 바나나〉는 이야기의 반전으로 객석의 찬사를 자아냈다. 특히 이 영화는 집단 따돌림에 따른 폭력으로 표상되는 가학자/피학자 관계에서 피학자가 폭력을 통해 오르가즘을 느끼면서 가학자에게 “나를 때려달라”며 거꾸로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 관계의 반전으로 묘미를 선사했다.

▲ 영화 <플라토닉 펀치 바나나>
반면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은 저조했다. 신작전 ‘애니메이션의 향연’ 섹션에는 휴일인 지난달 31일에 상영됐지만, 예년만큼 젊은 애니메이터들의 관심은 끌지 못해 객석을 채우는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표지판 집착현상에 대해 3D 실사로 재밌게 그려낸 〈우측통행〉이나 전쟁 중 부모의 학살 장면을 목격하고 토굴에 숨어든 아이의 공포감을 묘사한 〈토굴 속의 아이〉는 호평을 받으며 가능성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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