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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김재영 MBC 〈PD수첩〉 PD

이명박 정부의 국정과제가 Anything but Roh(노무현이 아닌 것은 무엇이라도)라는 것은 지난 기간 확인되었다. 이 정책에 대한 무리하고 비이성적인 추진은 결국 전임대통령의 자살이라는 파국을 맞이했고, 시민들은 그의 죽음이후 지난 1년 반 동안 우리 사회가 잊고 있던, 잃어버린 가치들에 대해 애도를 보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것은 이제 넝마가 되었다. 최고 권력자로서 스스로 권력을 놓는 어리석다면 어리석은 선택을 통해 “권력기관의 독립”을 이루어냈지만, 그 성과 역시 제도로서 정착되지 못했고, 결국 스스로 정치 권력화 된 권력기관의 희생자로 기록되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PD수첩〉은 참여정부의 핵심 정책들을 감시하고 비판했다. ‘황우석 사태’가 대표적이었고, 그 외에도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낙하산 인사, 복지 정책 등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그 과정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되었다. 결국 2006년 여름 노무현 대통령과 〈PD수첩〉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론스타와 참여정부의 동상이몽’이라는 다소 선정적 제목의 프로그램을 통해 당시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던 한미 FTA를 〈PD수첩〉에서 비판하자 청와대가 일방적이고 부당한 비판이라며 나선 것이다.

▲ ⓒPD저널
한미 FTA에 대한 〈PD수첩〉의 보도를 비판하는 광고를 각 일간지에 싣고 국정홍보처장이 앞장서서 〈PD수첩〉을 공격했다. 〈PD수첩〉이 한미 FTA를 비판하는 데 있어서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참여정부 마저도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정책에 있어서 민주주의적인 절차를 밟지 않는 점에 있었다. 정책을 추진하는데 절차적 민주성과 참여를 중요시 여겼던 노무현 정권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에 실망은 더욱 컸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 때문에 평가에 인색했던 참여정부의 가치가 새롭게 보였다. 그래도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는 지키던 정부, 그래도 빈부격차와 양극화에 대한 철학은 보여주었던 정부, 무엇보다도 권력기관을 사유화하지 않았던 청와대에 대해 향수를 가지게 되었다. 검찰은 바로 그 때 박연차 게이트를 통해 노무현을 욕보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 즈음 노무현에 대한 마지막 기대와 객관적인 평가를 접었다.

정책적으로 보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만들어놓은 틀은 거의 사라졌다. 남북 최고지도자 간에 맺은 공동선언도, 백년대계라는 부동산 관련 세제도 모두 사라졌다. 그 사라진 지점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상을 떠났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남긴 유산은 한미 FTA 뿐이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 〈PD수첩〉과 가장 크게 붙었던(?) 정책, 자신의 핵심 지지자들이 제발 이 정책만은 신중하게 결정해달라고 호소했던 정책만이 노무현의 죽음 끝에 남은 것이다. 나머지 참여정부의 핵심 가치들은 이제 우리가 다시 싸워 얻어내야 할 것들이 되어 버렸다.

▲ 김재영 MBC 〈PD수첩〉 PD

사실 〈PD수첩〉의 방영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와 관련하여 다소 엉뚱한 제안을 해왔다. 〈PD수첩〉 방영 이후 한미 FTA에 대한 여론이 비판적으로 돌아서자 청와대는 대통령이 직접 〈PD수첩〉 PD들과 토론을 하고 싶다면 제안을 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 토론회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의 핵심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프로그램에 그런 제안을 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신선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자리에 그런 대통령이 그리워진다. 정서는 남고 정책은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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