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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의 내키는대로 듣기]

▲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황보령이라는 음악가가 있다. 15세가 되던 1985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을 전공하다가 이상은과 우연히 만나 1993년 이상은의 5집에 수록된 ‘언젠가는’에 코러스를 넣고 같은 앨범에 수록된 ‘여름밤’을 작사 작곡한 인물이다.

황보령의 데뷔 앨범은 1998년에 나왔다. 〈귀가 세 개 달린 곤양이〉라는 제목의 이 앨범은 당시 자우림의 1집을 발매했던 난장에서 만들었는데 유앤미블루에 있던 방준석이 이인이라는 이름으로 전체 프로듀싱을 맡았고 김윤아와 이상은이 코러스로, 어어부프로젝트에 있던 장영규와 윤도현 밴드에서 키보드를 연주하던 고경천 등이 세션으로 참여한 앨범이다. 인터넷에 황보령이란 이름을 찾아보면 더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으니 일단 이 정도의 사전정보로 시작하자.

얼마 전 황보령의 3집이 발매되었다. 황보령=SmackSoft(스맥소프트)라는 밴드의 이름으로 나왔다. 이 밴드는 2001년에 발매된 2집 〈태양륜〉을 발매할 때 결성한 밴드인데 현재는 멤버들이 모두 바뀌었다. 3집의 제목은 〈Shine In The Dark〉로 ‘어둠 속의 빛’ 혹은 ‘어둠과 함께 있는 빛’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자, 여기서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이름’들이 모두 상반된 이미지를 결합한 결과라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모순적인 이미지로 시작된다. 뿐만 아니라 사운드와 노랫말도 어떤 상반된 이미지들로 충만하다.

신윤철이 기타 세션을 맡은 앨범의 첫 곡 ‘돌고래 노래’를 주도하는 건 묵직한 첼로와 맑은 구슬소리다. 묵직하다곤 해도 우울하진 않다. 오히려 단단하게 받쳐준다. 덕분에 가사의 이미지들은 더욱 선명해진다. “언제나 살아 있어줘/투명하게 맑은 그대여/네가 가는 길 어디든지/너와 같은 꽃이 피어나기를/눈이 부셔 따뜻한 햇살/나는 다시 하늘 위로/바다 속을 날아올라/하늘 끝에서 흘러내리네”라는 이미지가 그것이다.

이 노래만이 아니다. ‘식물펑크’는 제목에서부터 아예 모호하지만 강렬한 인상의 모순을 드러내고, “해 海 解 GO”는 ‘해’를 여러 가지로 해석한 제목이다(GO는 ‘해’의 오타다). 여기에 ‘집으로 가는 길’은 아예 일종의 만가(輓歌)처럼 들린다. 그러니까 모든 이미지들이 상반되고 충돌하고 뒤섞인다. 사운드로 그려 놓은 그림 같다. 들을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앨범이다.

▲ 황보령
그런데 이 앨범을 들으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지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이 앨범은 이상하게도 ‘한국적’으로 들린다. 한국적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뭐랄까, 어떤 정서가 관통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이렇게 밖에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다. 이 사운드는 4박자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그게 어느 순간에 5박자로 변형된다. 단조가 주도하는 리듬 때문은 아니다. 리듬이 미묘하게 엇갈리는데 그게 한국적인 정서를 연상시키는 것 같다. ‘도레미파솔’이 아니라 ‘궁상각치우’처럼 진행된다는 얘기다. 그건 정말 흥미롭다. 왜냐면 이제까지 한국적인 (록) 음악을 하겠다고 나선 음악가들의 거의 모든 시도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기 기타와 국악기를 뒤섞거나, 혹은 캐논을 거문고로 연주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게 어렵다면 오히려 제3세계에서 록 음악이 어떻게 ‘지역화’되었는지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 거란 생각도 든다. 이를테면 말레이시아나 대만의 록 음악이 그 나라의 민속음악과 어떻게 정서적·기술적으로 섞이는지 살펴보는 게 한국적인 록 음악에 대한 방법론을 찾는데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하여간, 황보령의 음악은 그래서 흥미롭다. 대단하다. 그녀가 15살에 미국으로 떠나 한국인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은 채 10대와 20대를 보냈다는 사실 때문에 더 흥미롭다. 도대체 ‘민족적 정서’라는 게 음악에 존재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무엇보다 민족주의/사대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채 자국의 대중음악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황보령을 듣는 동안에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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