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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도 PD의 에어오프에어]

▲ 윤성도 KBS PD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6월 국회 등원 여부를 놓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일전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여권과 보수진영은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해도 미디어법의 6월 처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최근 미디어법의 6월 처리는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민주당이 약속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이보다 좀 더 과감하게 '미디어법이 노전대통령 죽음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온나라가 공황상태에 빠진 지금 이 순간에도 여권과 보수언론들이 그토록 간절히 부르짖는 ‘미디어법’이란 과연 무엇인가? 복잡해 보이기는 해도 다른 건 다 곁가지이고, 간단히 말해 먼저 대기업이나 족벌신문에 ‘보도’기능을 추가한 방송을 허용해준다는 것이다. 지금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중계유선 등을 통해 방송을 보고 있는데, 보통 지상파 채널인 6, 7, 9, 11번 사이에는 GS홈쇼핑 같은 홈쇼핑채널이 나온다. 홈쇼핑을 특별히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채널은 보통 넘기면서 보거나 아예 채널을 지워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채널에 홈쇼핑 대신 드라마도 하고 쇼도 하고 뉴스도 하는 ‘조선일보 방송’ ‘중앙일보 방송’ ‘동아일보 방송’이 나온다면? 오랜 시청습관도 있고 거부감 때문에 눈길을 주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거나 평소 KBS와 MBC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시청자들은 상당수 끌어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초보적인 형태의 '종합편성채널'이고 향후 재벌이나 보수신문이 주도권을 더욱 가지게 되면 KBS2 TV나 MBC를 인수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미디어법을 통과하면 세계적 미디어그룹이 탄생한다느니 일자리가 창출된다느니 하고 떠들지만 이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사탕발림일 뿐이고, 미디어법은 까놓고 얘기해 공영방송체제를 허물고 신문사나 재벌들이 주도권을 잡자는, 당장 그게 안되면 일단 숟가락부터 하나 놓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은 감히 말하건대 ‘재앙’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무소불위의 언론권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 'MB식 예우' 30일 새벽 기습적인 경찰의 강제철거 이후 시민들이 겨우 수습해서 다시 설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 뒤로 진압복을 입은 경찰들이 줄지어 서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경우 박연차 리스트 사건 자체의 진위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검찰과 보수언론이 그를 퇴로 없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던 것이 직접적 원인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대검 중수부의 수사 브리핑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대검 중수부가 왜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을 가졌다고 하는지 알게 된다. 중수부장이나 대검 수사기획관은 수사 중에 얻어진 정보들을 매일 조금씩 언론에 공개를 하고 언론들은 그걸 하나라도 놓칠세라 받아 적고 약간의 추가 취재를 얹어 대서특필을 한다. ‘홍길동이 얼마를 인마이포켓했다’고 하면 다음날 신문과 방송에는 ‘홍길동, 얼마를 횡령한 것으로 밝혀져’라고 나오고, 그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횡령범으로 간주가 된다. 

조중동이고 한겨레고 방송이고 오마이뉴스고 간에 기자들이 수첩에 머리를 박고 중수부장이나 대검 수사기획관의 말을 받아적는 모습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고, 때문에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결국 투신의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조금은 더 이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대검 중수부가 과도한 권력을 가지고 있고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얼핏 내비쳤듯 국가권력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하더라도 일부 언론들이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의 임무를 포기하고 죽은 권력 다시 죽이기의 선봉에 섰다는 점에서 우리 언론 역사상 또 한 번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됐다.

그런데, 이런 보수신문들에게 미디어법을 통과해 방송까지 허용해준다? 노무현은 부패사범일 뿐이라고, 수사에는 추호의 잘못도 없었다고, 서울광장의 개방을 외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극렬분자일 뿐이라고 앵무새처럼 되뇌는 방송을 보고 싶은가?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 쌓인다. 요즘 KBS도 만만찮게 욕을 먹고 있지만 공영방송은 나중에라도 고쳐서 좋게 쓸 수 있다. 하지만 족벌신문방송이라는 괴물은 한번 탄생을 허용하면 그때부터는 그 괴물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날름날름 집어먹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신문이 꼭 방송을 하지 말란 법은 없다. 외국의 경우도 제한적으로 신방겸영을 허용한다. 조선일보건 중앙일보건 삼성이건 현대건 방송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좀 더 올바르고 크고 단단해져야 된다. 그때까지 기다려도 국익에 손해 볼 일은 하나도 없다. 올해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미디어법을 강행하는 것은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들이키는 것과 같다. 제발 누가 먹어도 탈 없는 우물을 팔 생각을 하라.

※ 이 글은 윤성도 PD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윤성도 PD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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