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임 당해도 KBS 본부장 사퇴 가능성 ‘희박’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방송과 관련 KBS 본부장들이 불신임을 당했지만 실제 사퇴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기자·PD협회가 해당 본부장들에 불신임을 나타낸 것은 내부여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이지, 실제 인사에 미치는 구속력은 전혀 없다.

▲ PD협회의 ‘외로운 투쟁’=그렇다고 불신임 결과를 토대로 본부장 사퇴운동에 돌입하기에는 당장의 내부 동력이 원활치 않다. PD협회가 압도적인 표차로 본부장 불신임에 의견을 모았지만, ‘사원행동 징계무효 투쟁’ 등의 선례를 볼 때 단독으로 책임자 사퇴 요구나 이병순 사장 퇴진 운동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파트너’ 역할을 해온 기자협회는 신임투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여론이 갈리고 민필규 회장이 사퇴의사를 밝히는 등 ‘내홍’을 겪었기 때문에, 당장 협회장 거취문제 등 내부 수습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PD협회도 불신임투표 이후의 계획을 세우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덕재 KBS PD협회장은 “기자들이 나서주지 않으면 PD협회 단독으로 회사에 대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기협은 오히려 ‘내부 균열’=KBS 기자협회는 이번 불신임투표 과정에서 내부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이번 투표에 대해 현장에서 직접 취재거부 등을 겪은 젊은 기자들은 주로 찬성 의견을 나타냈고, 중견급 이상의 고참 기자들은 여러 이유를 들어 신임투표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대쪽 의견은 다양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보도가 본부장 신임투표까지 할 사안은 아니다’, ‘투표를 결정한 절차에 문제가 있다’ 등의 문제제기부터 ‘KBS가 서거방송에서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느냐’는 억울함도 있다. 나아가 투표 기간 중 일부 간부급 기자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말라’고 지시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국의 한 기자는 “명단을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투표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보도본부장·보도국장 불신임투표는 젊은 기자들이 주축이 된 운영위원회가 진행했다. 하지만 책임 주체가 불분명한 상황인 만큼 신임투표 이후 전망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보도본부의 한 중견기자는 “아무래도 협회장이 공석이다 보니 무엇 하나 결정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투표가 끝나면 당장 회장 거취문제 등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필규 회장의 사퇴의사 표명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기자협회장 직을 자진 사퇴하겠다 밝힌 것’이라고 보는 한편, 다른 한 쪽에서는 ‘단지 불신임투표를 관리하는 대표자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불신임투표 이후 기협은 당장 회장 거취문제 등 내부 분위기를 수습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 노조, 이병순 사장 ‘유감 표명’으로 충분?=KBS 노조는 지난 5일 열린 노사협의회에서 이병순 사장이 노 전 대통령 서거방송과 관련 일부 실수를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는 분위기다. 이 사장은 이 자리에서 “현장 기자와 PD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수가 생긴 데 대표로서 부끄럽고 아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노조는 “사장이 노 전 대통령 서거방송에 대한 유감을 처음으로 표명했다”며 의미를 부여했지만 PD협회 등은 동의하지 않았다. KBS PD협회는 지난 8일 성명에서 이병순 사장의 노사협의회 발언을 언급하며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구차한 변명이 아니라 사장의 즉각적인 사과와 책임자 처벌”이라고 지적했다.

입장차가 뚜렷한 만큼 KBS 노조는 기자·PD협회가 실시한 본부장 불신임 투표를 마뜩치 않게 보고 있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단협에 따라 오는 8월말이면 노조 차원에서 임기 1년이 되는 본부장들의 재신임을 묻는 투표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매 사안마다 이렇게 협회가 나서 불신임투표를 한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