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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드릭스의 책읽기] (20) PD저널리즘

▲ 〈PD 저널리즘〉 (원용진, 한나래, 2007)
최근 한국에서 가장 이슈를 많이 만드는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PD수첩〉이 아닐까? 〈PD수첩〉은 작년 광우병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광장에 대한 진출에 대한 촛불의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제작진이 연행되는 사태를 맞고 검찰에 의해 원본 테이프를 제출하라는 요청을 받기도 하였다. 2005년에는 황우석 관련 특집과 그에 대한 여론의 폭격(심지어 다음DAUM에서는 1:99의 결과로 〈PD수첩〉을 인민재판하기도 했었다)이 있기도 했다. 영상은 힘이 셌다.

그런데 황우석 사태 때 MBC 내부에서는 기자들의 입장과 PD들의 입장이 사뭇 달랐다고 한다. 김주하의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에서는 사태이후 급박했던 보도국과 시사교양국의 분위기 차이를 싣고 있다. 나는 기껏해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PD와 기자라는 사람들이 직무 수행의 방식을 제외하고 다른 부문에 있어서는 대동소이할 것이라고 추정해왔다. 하지만 그렇게만 진단하기에는 뭔가 넘을 수 없는 벽이 느껴졌다.

〈PD 저널리즘〉이 나온 건 KBS의 2004년 탄핵 관련 방송에 대한 한국언론학회의 보고서 때문이었다. “한국언론학회 보고서는 탄핵 주도 정치 세력과 탄핵을 찬성하는 입장에 있던 언론과 단체 그리고 시민들에 의해 방송과 집권 세력 간 유착관계를 증거 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탄핵 사건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방송 저널리즘의 공정성 시비에서 이 보고서는 중요한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p.27).”

조중동과 한나라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보고서를 말하면서 KBS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았고 그리고 ‘코드 사장’ 축출에 성공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05년의 황우석 사태 때와 FTA 관련 보도, 그리고 광우병 사태 때마다 신문과 정부 기관 그리고 덩달아서 학계는 방송 저널리즘의 ‘공정성’을 공박하면서 문제를 삼아왔다. 문제는 ‘공정성’이 말장난이라는 거다.

▲ MBC 〈PD수첩〉 800회 특집 기념 촬영 ⓒMBC
국민들이 80:20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 지지할 때 50:50의 비중으로 찬반양론을 다루어야 할까? 물론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그 사안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논쟁’의 대상이 될 뿐 ‘객관적인 공정성’의 영역으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한국 저널리즘의 공정성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 구성체가 어떻게 역동적으로 조직되어 왔는지에 대한 보다 거시적인 틀과 이러한 사회 구성체 속에서 어떻게 한국 저널리즘이 발생적으로 차별적이 되었는가를 살펴보는 일이 요구된다(pp.110-111).”

저자는 방송저널리즘을 기존의 저널리즘 담론의 대안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범적 사례로 PD 저널리즘을 이야기한다. PD 저널리즘이라는 것은 역사적 생성물이다. 민주화라는 국면에서 기자들이 말할 수 없었던 것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기율에서 각각의 목소리가 중요한 PD들이 사회적 소수자, 약자들의 이야기를 뿜어내기 시작하면서 생성된 것이다(5장). 그런 차이들은 심층 취재를 통한 〈PD수첩〉의 기획 보도, 그리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다큐멘터리로서의 기획 등을 통한 PD들의 사회적 진보성 표현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에 대한 시민사회가 호응했다. 반대편에서의 조중동의 비난과 YTN 기자들의 황우석 사태 시 문제제기와 같은 반발 등을 불러오기도 했다.

사실 ‘팩트’는 중요하다, 하지만 팩트를 뽑아내는 기자 혹은 PD의 의도라는 것은 언제나 사라질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을 인정하면서 의견을 싣는 PD들의 프로그램 제작 방식이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조중동이 말하는 "저널리즘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PD들이 주관적으로 사건을 해석하고, 책임지지 않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는 악평은 사실 비난에 그칠 뿐, PD들은 10년 가까운 도제생활을 해야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무력화된다.

중요한 것은 뽑아내는 보도들의 통찰력과 깊이다. 기자들의 뉴스 단신 기사들의 취합이 현장성의 강점을 가진다면, PD 저널리즘은 조급하지 않게 준비했다는 점에서 오는 깊이와 영상과 음향을 동시에 구현하는, 그리고 또 그것을 잘 아는 PD들이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방송의 힘을 나타낸다는 장점을 가질 수 있다. 또 한동안 PD들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기자들이 출입처 중심으로 돌고, 단신으로만 처리하면서 보여주지 않던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1시간 정도 이상의 시간동안 보여주어 아젠다 세팅을 한 것에 있었던 것이다.

▲ 헨드릭스/ 블로거
물론 선진국의 사례들을 살펴볼 때 지금까지 PD 저널리즘의 선전은 한정적이고 특정한 상황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PD와 방송기자의 업무는 점차 수렴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례를 역시 〈PD 저널리즘〉에서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뒤적거리는 건 KBS의 ‘코드 사장’이 내려온 후 봉하마을에서 쫓겨나는 중계차가 눈에 어른거르기 때문이며, 그나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TV 시사 프로그램이 〈PD수첩〉과 몇몇 밖에 남지 않았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게 순전히 기우였음이 증명되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싸우는 방송저널리스트들의 건투를 빌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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