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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의 영화 이야기] doubt: 의심, 회의, 불신의 뜻을 가진 동사 혹은 명사

▲ 영화 <다우트>
간단하게 〈다우트〉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배경은 미국 브롱크스 지역 성 니콜라스 교구의 학교. 이 학교에는 전통과 보수, 원칙을 중요시하는 알로이시스 수녀(메릴 스트립)와 개혁과 진보, 자율을 따르는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가 있다. 당시는 정치 사회적으로 개혁의 바람이 일고 있던 1964년. 엄격한 가톨릭 학교에도 변화가 일어나 백인 학생들 일색이던 학교에 흑인 학생이 입학하게 되는데 이 학생(도널드)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며 힘든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젊고 순진한 제임스 수녀는 도널드에게 유독 친절한 플린 신부님을 눈여겨보다가 아이를 사제관으로 부르는 것을 보고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그 둘의 관계가 이상한 것 같다며 의심을 털어놓고 이때부터 영화는 의심과 확신에 관한 집요하고도 독한 이야기를 펼쳐놓게 된다.

그렇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doubt”에 관한 이야기다. 맨 처음 플린 신부와 도널드의 관계를 의심하는 제임스 수녀의 의심은 불확실하고 작은 것이었다. 그녀는 단지 사제관에 다녀온 아이가 이상하게 행동한다고  “느꼈을” 뿐이고 아이의 사물함에 옷을 넣는 신부를 봤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학교를 걱정하는”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들어갔을 때 그 둘의 관계에 대한 알로이시스 수녀의 의심은 강하고도 끊임없이 전개되어 확신에 차게 된다. 아, 확신보다 강력한 의심! 제임스 수녀의 말밖에 들은 바도 본 바도 없는 그녀는 증거가 없지 않냐고 다그치는 플린 신부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그렇지만 나는 확신이 있어요!” 이쯤 되면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플린 신부의 처지에 감정이입한 관객들은 탄식을 내뱉게 되는거다. ‘아니, 증거도 없이 자신의 도덕적 확신만 가지고 선량한 신부를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가다니!’ 그렇지만 영화는 그런 관객의 눈에 이번에는 덜 익어 피가 묻어나는 고기를 먹는 신부들의, 어찌 보면 방탕한 식사시간과 길게 기른 플린 신부의 손톱, 그리고 어쩌면 교활해 보이는 그의 눈빛을 보여준다. ‘아, 내가 잘못 생각했나?’ 순간 헷갈리는 관객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서서히 알로이시스 수녀의 입장에서 함께 플린 신부를 의심하게 되는거다. “그래, 증거는 없지만 플린 신부가 나쁜 짓을 했던 것 같아. 그러니 공격받으면서 저렇게 흥분하는거지.”

하지만 영화는 허무하게도 끝까지 어떤 확실한 증거나 결론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울먹이는 제임스 수녀의 입을 통해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물을 뿐이다. “당신은 신부님을 싫어하죠? 그래서 그를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가는거죠?”
 
아, 우리의 세계는 의심과 확신으로 가득하고 증거는 없어라. 도대체 의심이란 어떻게 생기며 어떤 근거로 확대되고 끝까지 살아남는가. 깃털이 가득한 베개를 가지고 지붕으로 가 칼로 찌르는 행위. 그래서 어디로 날아간지도 모르는 마지막 깃털 하나까지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 바로 gossiping(남의 뒷말)이라는데 혹시 우리도 그렇게 셀 수 없는 깃털 베개를 칼로 찢으며 근거 없는 의심을 확대하고 있는건 아닌가? 
 
영화에서 결국 플린 신부를 교회에서 쫓아낸 알로이시스 수녀는 마지막 장면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i have a doubt, doubt...” 우리나라 수입사는 이 말을 “나는 의심이 들어요, 의심이...”라고 번역해놨지만 어쩌면 그것보다는 “나는 회의가 들어요, 회의가...”라고 이해하는 게 옳은지도 모르겠다. 내내 의심과 확신에 차 있던 그녀의 느닷없는 고백은 뜬금없이 느껴지긴 하지만 원래 근거 없는 의심이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어느 한 순간 금이 갈 수 있는 유리 같은 것. 아무래도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의심에 대한 확신이 무너져서 괴로웠을 것이다. 자신조차도 이제 그 진실을 알 수 없는 현실에 절망했을 것이다.
 

▲ MBC FM <이주연의 영화음악> 진행자, 이주연 아나운서
이 영화는 의심에 관한 영화면서 동시에 불신과 확신에 관한 영화며 회의에 관한 영화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 보아도 층위가 복잡한 이 영화가 더욱 마음에 남는 건 알로이시스 수녀의 마지막 대사 때문 일거다.

최소한 그녀는 자신의 확고했던 의심에 회의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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