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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방송 다시보기(30] 이정호 참세상 편집국장

80년대 TV는 수사극의 전성시대였다. MBC <수사반장>과 KBS <형사25시> 같은 국내 프로그램 외에도 <맥가이버> <전격 제트작전> <마이애미의 두 형사> <돌아온 제5전선> <제시카 추리극장> 등 외화 수사극도 봇물을 이뤘다. 외화 수사물은 요즘 미드 열풍의 원조다.

수사극의 인기는 7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수사반장>이 이끌었다. KBS는 기존의 수사물에 포맷을 바꿔 1986년 10월부터 <형사25시>를 방영했다. <형사25시>의 주인공 형사역은 장명수 전 한국일보 사장의 남동생인 탤런트 고 장학수씨가 자주 맡았다.

▲ KBS에서 방영된 <형사25시>
1989년 봄여름 <형사25시>의 주제는 6월27일엔 미망인의 유산을 탐내 신분을 감추고 사기를 벌인 한 남자의 죽음을 다룬 ‘보이지 않는 얼굴’, 7월4일엔 생명보험을 노리고 정부와 짜고 장애인 부인을 살해하는 남편을 다룬 ‘완전 범죄’, 7월11일엔 약혼녀를 살해한 대학 전임강사와 불륜의 여대생 마약중독자를 그린 ‘나비야 나비야’ 등이다.

3회분 모두 범행동기는 거액의 보험금이나 유산 등 돈이다. 그러나 범인들이 사건에 이르게 되는 배경설정의 인과와 논리는 허술하다. 박사학위를 받고 곧 교수로 임용될 전임강사가 약혼녀를 살해하면서까지 보험금을 챙겨야 할 이유가 분명치 않다. 또 대학 3학년인 여대생이 마약을 복용하게 된 과정이나 이유도 없다.

비슷한 시기 MBC <수사반장>은 6월7일 ‘하오의 침입자’, 6월29일 ‘어두운 길목’, 7월6일 ‘두 개의 손’을 방영했다. ‘하오의 침입자’는 결손가정의 청소년들의 강도행각을 그렸다. ‘어두운 길목’은 금전만능주의에 찌든 부모 밑에서 정신적으로 버려진 한 중학생이 음란비디오와 자극적인 만화에 심취해 초등학생을 성추행하다가 그 오빠한테 살해당하는 사건이다. ‘두 개의 손’은 지식인의 양면성에 분노한 고아 청년의 우발적 살인을 다룬다.

▲ 이정호 참세상 편집국장.
<형사25시>가 범인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나 욕심을 그린 반면 <수사반장>은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범죄를 유발하는 요인을 찾으려 했다. 특히 ‘하오의 침입자’에선 강도행각을 벌이는 청소년들의 심약하고 순진한 성품을 드러내 이들의 범죄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박탈감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임을 알렸다. ‘어두운 길목’도 성범죄와 살인이라는 소재에 국한되지 않고 청소년들의 음란물 노출 정도를 고발하는 사회적 기능을 담당했다.

<수사반장>은 범인를 키울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속에 오래 노출된 범인들의 환경에 주목했기 때문에 극중의 수사진들도 범인들을 무작정 탓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범죄의 수렁으로 이끌어 간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 범죄를 낳는 사회구조를 외면하고 늘 범인 개인만을 벌하는 것으로 끝나버리는 수사극은 지금도 서울광장 주변에서 계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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