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여름, 미디어 전쟁과 한반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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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여름, 미디어 전쟁과 한반도 전쟁
[e야기] 이채훈 MBC PD
  • 이채훈 MBC PD
  • 승인 2009.06.1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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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채훈 MBC PD
올 여름 방송계에 몰아칠 회오리바람을 두고 불길한 얘기들이 무성하다. 6월 미디어법 처리, 8월 MBC 대주주 개편, 방송통신위와 KBS의 변화 등 예측하기 어려운 일정이 코앞에 다가왔다.

6월 미디어법의 향방은 여전히 안개에 싸여 있다. 여당은 지난번 합의대로 표결처리할 태세고, 야당은 ‘국민 의견 수렴 없는 합의는 원천무효’라며 이를 저지할 태세다. 지난 2월과 똑같은 상황이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청와대, 검찰, 언론은 반성하는 기색이 없다. ‘정치적 타살’이라는 비난 앞에서 잠시 목소리를 낮추고 있을 뿐, 어디에서도 이들의 진심을 느낄 수 없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정권이라는 점, 아니,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는 정권이라는 점이 ‘불확실성’의 첫째 요인이다.  

둘째 요인은 더 끔찍하다. 올 여름은 1994년, 2003년에 이어 또다시 심각한 전쟁 위기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 하나. 6월~7월 사이, 꽃게잡이가 한창인 연평도 일대에서 북측 어선들이 NLL을 넘자 북측 경비정들도 함께 내려온다. 남측 경비정이 작전예규에 따라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을 감행한다. 북측 경비정이 후퇴하는가 했더니, 갑자기 옹진반도의 해안포가 남측 경비정을 향해 일격을 날린다. 그 순간,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남측의 3,500톤급 구축함이 북측의 해안포부대를 향해 일제히 불을 뿜는다.

남측이 NLL을 ‘군사분계선’이라고 주장하고 북측이 NLL 이남도 자신의 ‘영해’라고 주장하는 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북측은 ‘한다’고 하면 늘 해 왔다. 남측이 PSI 참여를 공식 발표하자 북측은 “우리의 해상군사분계선 서북쪽 영해에 있는 남측 5개 섬의 법적 지위와 그 주변수역에서 행동하는 미제 침략군과 괴뢰 해군함선, 일반선박의 안전항해를 담보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공언하지 않았는가.

▲ 경향신문 6월15일자 4면.
끔찍하지만 그 다음 상황도 상상해 보자. 북측의 해안포 부대를 남측이 공격하면 이것은 전면전을 뜻한다. 북측은 휴전선을 따라 배치된 중거리포를 모두 발사한다. 미군은 즉시 열추적 미사일 수백발로 북측의 중거리포를 초토화시킨다. 이건 단 몇 분 만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미 남북 양측의 인명 손실은 수십만을 헤아린다. 전쟁은 국제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북측은 일본 도쿄 근교 요코스카 미군 기지를 향해 미사일을 날릴 수도 있다. 남측 주민들의 반일 감정을 자극해서 정치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려는 계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더 이상의 끔찍한 상상은 그만...

어떤 사람은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외길 수순’이었다고 말한다. 사건이 일어난 뒤의 분석이라면 틀린 얘기가 아니다. 어떠한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도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보면 모두 필연이다. 하지만 사전에 이런 비극을 경고한 언론은 없었다. 이게 진정한 우리의 비극이다. 자, 한반도에 전면전이 일어난 뒤 우리 언론은 뭐라고 할 것인가. 이 또한 ‘외길 수순’이었다고 말할 것인가.

94년 전쟁 위기 당시 클린턴은 실제로 북측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을 검토했다. 그해 5월 19일, 미 합참의장이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를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한반도 전쟁이 일어나면 미군 3만명, 한국군 45만명, 민간인 100만명이 죽거나 다치고, 600억 달러의 전쟁 경비가 들고, 한국 경제의 피해는 1조 달러에 이른다는 것. 전쟁이 일어나면 당연히 한-미 양국이 승리하지만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수술은 성공한다. 그러나 환자는 죽는다”는 것. 클린턴은 북폭 계획을 포기하고 대화에 나섰다. 

전면전은 너무나 큰 비극이므로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남측과 북측 정권도 전면전을 원치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남측이든 북측이든 작은 규모의 국지전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여지가 있다. 후계체제 구축과 주민 동원을 위해 긴장을 높여온 북측은 국지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남측은 자칫 식물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 일거에 전권을 휘두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바로 국지전이다. 그런데, 이 국지전이 자칫 도를 넘으면 전면전으로 비화하게 되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끔찍한 전쟁은 늘 있어왔다.” 이 말은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자는 뜻이다.  “한반도 전쟁이 너무나 끔찍하므로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는 건 안일한 태도로, 단 0.001%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로 전쟁이 터질 경우 이 정권은 뭐라고 할까? 매우 불쾌한 상상이긴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늘 있어 왔다”고 할 것만 같아 두렵다. 표현은 같지만 “늘 있었던 전쟁이므로 불사할 이유가 없다”는 정반대의 의미인 것이다.    

▲ 한국일보 6월15일자 6면.
다시 미디어 상황으로 돌아가자.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남북의 무력 충돌이 있게 되면 미디어의 모든 이슈들은 실종된다. 정부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비판의 소리와 민주주의 요구는 숨을 죽인다. 미디어법은 자동으로 통과되고, 정권의 눈에 거슬린 언론인들은 줄줄이 해고되고 구속된다. 정부 입맛에 안 맞는 프로그램도 일제히 폐지된다. 그밖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불안과 낭패 대신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미디어의 현안들은 의연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더 큰 위기에 대해서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고, 우리가 해야 할 몫을 생각하고, 또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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