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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촌장‘가시나무’

|contsmark0|/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contsmark1|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contsmark2|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contsmark3|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contsmark4|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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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1|일제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윤동주가 사는 집 부근에서 함께 별을 헤아렸을 성싶은 가수. 그가 바로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다. 몸가짐과 언어 세계가 두루 그렇다. ‘등록상표’ 시인과 촌장은 허영자 시인의 시에서 빌린 이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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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4|가끔은 혼자서, 때로는 둘이서 노래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는 영락없는 시인부락의 수줍은 촌장이다.(실제로 그는 엄연히 시집까지 낸 시인이다)
|contsmark15|구불구불한 길을 돌아 마침내 그가 자리를 깔고 앉은 곳은 예배당이다. 살면서 굴곡이 없으랴만 그의 청소년 시절은 유달리 고단하고 고독했다.(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감히 ‘내 속에 내가 많다’고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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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8|지금 기독교 방송에서 ccm 캠프를 진행하고 있는 그를 pd들과 청취자 모두 ‘하집사’라고 부른다. 지금 그가 노래 부르는 이유는 명백하다. 오직 한 가지 ‘경배와 찬양’이다.
|contsmark19|‘사랑 일기’ ‘풍경’‘숲’ ‘한계령’ ‘진달래’ 등 라디오의 명곡을 숱하게 생산해 내며 이십 년 가까이 노래를 만들고 불렀지만 텔레비전에 얼굴을 내비친 건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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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2|연출자들이 선뜻 부르지 않은 이유도 있고 본인 스스로 쑥스러워 사양한 까닭도 있다. 어찌 됐든 명색이 대중가요 가수이면서도 정작 그와 교신할 대중과의 사이에는 왠지 모를 벽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 벽을 단박에 허문 건 뜻밖에도 ‘가요계의 황태자’ 조성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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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5|하덕규의 신앙 고백이자 철학적 에세이인 ‘가시나무’를 당대의 인기가수 조성모가 리메이크한 게 사건의 발단이다. 그는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귀공자풍의 용모와 달착지근한 목소리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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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8|솔직히 아쉬운 점도 있다. 창법은 가수가 사는 법일진대 조성모는 이 노래의 독자적 해석에 미흡했다. 심하게 말하면 하덕규의 모창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리언셀러 가수답게 스물 몇 살의 이 젊은이는 지난 겨울 ‘가시나무’로 전국의 음반시장과 tv 화면을 휘젓고 다녔다. 패티김의 ‘가시나무새’만 노래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내 속에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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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2|콘서트에서 하덕규는 관객들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외국에 일보러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밤거리에서 이른바 ‘어깨’들과 부딪쳤다.
|contsmark33|그들 중 하나가 무슨 노랜가를 흥얼거리는데 그 멜로디나 가사가 친숙하더란다. 바로 이 ‘가시나무’였다.
|contsmark34|등에 식은 땀이 나는데 그것이 공포인지 연민인지 모르겠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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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7|또 한 가지. 누군가 tv에서 흘러나오는 뮤직비디오를 보여 주는데 가시나무는 간 곳 없고 창백한 표정의 여배우(이영애)가 야쿠자로 짐작되는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모습만 보이더란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의 무심한(?) 선택 (인기가수에게 자신의 옛 노래를 다시 부르도록 허락한 일)이 얼마나 엄청난 결단이었는가에 대해 실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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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0|하덕규가 부를 때는 나직하게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에 불과했는데 조성모가 부르면서 비로소 ‘가시나무’는 극장이나 시장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가 되었다. 마케팅의 승리이자 쇼비즈니스 기획의 완벽한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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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3|본래 듣는 귀 있는 자가 듣는 노래였으나 시대의 조류를 타고 뮤직비디오까지 뜨면서 이제 보는 눈 있는 자도 ‘음미할’ 수 있게끔 된 건 조성모측의 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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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6|이 노래가 지니고 있던 영성과 경건함이 훼손된 걸 안타까워 하는 시선들은 입을 꾹 다문 채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서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해석하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다.
|contsmark47|글자 그대로 연인과의 뜨거운 입맞춤, 두 번째는 조국에 대한 사랑, 세 번째는 구원자(만해가 승려이므로 님은 부처)와의 영적 만남 등.노래는 부르는 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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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1|만해의 님이 여러 모습인 것처럼 가시나무를 품고 사는 사람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안고 산다. 남에게 펼친 순간 더 이상 그 꿈은 꿈꾼 자의 소유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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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4|해몽은 각자의 몫이다. 가시나무의 당신은 하나님일 수도 있고 낭만적 연애의 대상일 수도 있다. 눈앞의 세상을 속도감 있게 전달하는 노래는 많다. 그러나 마음의 풍경을 절절하게 노래한 곡은 드물다. ‘가시나무’는 인간의 유한성을 예고하고 있다. 인간이기에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어둠’과 ‘이길 수 없는 슬픔’이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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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7|사람들은 거울을 보며 얼굴에 묻은 먼지들은 닦아 내지만 마음의 얼룩을 걷어내지는 못 한다. 오히려 숨기기에 급급하다. ‘가시나무’의 잠언은 계속된다. 과연 나는 내 속의 어떤 나를 살리고 어떤 나를 죽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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