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큰 관심을 갖고 공부한 것은 선전(propaganda)이었다. 소통의 외양을 한 일방통행의 한국 사회를 고민해서였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현대까지의 선전의 역사를, 뉴미디어가 선전에 미치는 영향력을, 선전이 확산되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맥락 등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선전은 결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었다. 선전은 이미 우리가 알거나 체감한 것을 재확인하고 증폭한다. 둘째, 선전은 직접적이다. 선전을 매개하는 항들이 많을수록 선전의 효과는 급감한다. 셋째, 선전의 효과는 단기간에 평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평가해야 한다. 비록 단기적으로는 부정될지언정 선전은 무의식에 남아 오랜 시간 영향을 미친다.
전 역사를 통해 가장 탁월한 선전전을 펼쳤다고 평가받는 나치의 예를 살펴보자. 당시 뉴미디어였던 라디오는 나치가 효과적으로 선전을 확산·유포할 수 있었던 핵심 매체였다. 나치 정권은 한 채널만 수신 가능한 저렴한 ‘국민 라디오(Volksempf?nger)’를 보급하였다. 식당, 공장, 공공장소에서 의무적으로 방송케 함으로써 일방적이고 직접적인 선전의 메시지를 전파하였다. 특히나 라디오는 히틀러의 격정적인 연설에 적합한 매체였다. 신문의 글은 라디오의 말이 얻는 정서적 반응과 거리가 멀었다.

지난 월요일 출근길의 버스에서 접한 이명박 대통령의 정례 라디오 연설에서 나치의 라디오 선전을 떠올린 것은 단지 나의 최근 관심사가 선전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방비의 일상 속에 불쑥 위정자가 끼어들어 일방적이고 직접적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은 소통보다는 선전에 가깝다. 이것이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난 10월부터 반복적으로 되풀이되어왔다는 데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향후 어떤 위정자든 같은 방식으로 제약 없이 선전전을 펼칠 관성과 전례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매개자가 되어야 할 언론은 제 역할을 상실하였다. 언론은 차라리 위정자를 보좌해 방송이 잘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김비서’가 되어버렸다.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문제였다. 연설을 통해 유난히 강조한 위기는 이를 빌미로 비판을 무력화하고 우리 사회를 전체화하려는 시도로 여겨져 불편했다. “전대미문의 세계적인 경제위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속에서 정권에 대한 비판은 “무조건 반대하는 정쟁”으로 치부되고 “국민통합”만이 전면에 부각하였다. 흡사 나치가 라디오를 통해 과장된 승전보를 울려 국민을 호도하듯, 연설문은 우리의 위기 극복을 과장되게 홍보하는데 많은 양을 할애하기도 하였다. 이럴 진데 어찌 2009년의 대한민국에서 과거 나치가 펼쳤던 전체주의의 선전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